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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지식 없으면 꿀벙어리 된다
전문지식 없으면 꿀벙어리 된다
  • 조회환 한국외대
  • 승인 2005.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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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_외국어교육 개선의 문제

세계화의 조류 속에서 영어 등 외국어교육은 날로 양질화되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리만큼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필자는 중국어를 배우고 가르쳤던 경험을 바탕으로 외국어교육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점검하고자 한다.


첫째, 외국어문 학계에서는 학문 분류에서의 오류 내지 파행을 시정해야 되겠다. 이를테면 ‘語文’이라는 말에서, ‘語’는 ‘口語’(입말) 또는 ‘입으로 하는 말’(spoken language)이고 ‘文’은 ‘文章’(글말) 또는 ‘문자로 하는 말’(written language)을 뜻한다. ‘입말’과 ‘글말’은 똑같이 ‘말’일 뿐이다. 따라서  ‘語文=말’이고 ‘語文學’은 ‘語文(말)의 學’ 즉 ‘입말과 글말에 관한 학문’일 뿐 결코 ‘語學과 文學’이 아님으로 ‘어학과 문학’이라는 2분법이나 양자 구도의 관행은 잘못된 것이다.

외국어 학습목적은 전문지식 습득  
따라서 ‘중국어’는 ‘중어·중국철학과’, ‘중어·중국예술과’등 인문과학과는 물론이고 ‘중어·중국외교학과’, ‘중어·중국경제학과’ 등 사회과학과도 밀착구도를 형성하면서 모든 중국학의 기초 겸 도구가 되는 것이며 똑같은 이유로 대학의 중국어문 학과에서는, 요구가 있고 또 여건만 허락한다면, 중국의 인문과학분야와 사회과학분야를 다양하게 교수할 수 있어야 될 것이다.     


모든 언어가 그렇듯이 외국어의 질적 수준을 최대한 단순화시켜 구분한다면 크게 두 단계(계층)로 나눌 수 있다. 실생활에서 평이하고 잡다하게 사용하는 기본생활어와 전문업종이나 교육·연수·연구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전문지식어(또는 학문어)가 그것이다. 그런데 외국어문을 대학 4년간이나 공부하는 주 목적은 그것을 도구 삼아 더 나은 직업이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데 도움을 받자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외국어의 ‘능통’이나 ‘유창함’을 강조하지만 외형상의 ‘유창함’에 감탄하여 거기에 사로잡힐 뿐 그 ‘유창함’ 속의 ‘질’이나 ‘내용’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 같다.


그런데 제아무리 유창해도 특정 전문지식으로 일하거나 토론하는 ‘바로 그 위치나 그 자리’에서는 ‘아는 것’(知識)이 없으니 말 한마디 못하는 벙어리가 되고 만다. 반면에 그 분야의 지식이 있는 사람은 설령 외형상 ‘유창’하지는 못해도 할 말을 다하고 할 일을 다 하게 되는 것이며 이 점이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어문교육 4개년 가운데 전반기에는 기본 생활어 능력을 갖추는 데 주력하더라도, 후반기에는 외국어문을 통한 ‘전문분야 지식습득’에 도움이 될 교과목의 교육이 필요하다. 이 단계가 곧 더욱 ‘질 높은 외국어’의 단계(제2단계)임과 동시에 이제야 비로소 전문분야를 연구하고 토론할 수 있는 ‘학문 언어’ 즉 ‘중국학 등 외국학의 어떤 전문분야 연구’의 단계로 진입한 셈이다.


이 제2단계에서부터 학생은 자신의 직업이나 전문직을 수행하는   필요할 연구  야를 선택·수강하여야 된다. 또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건, 꼭 학술분야가 아니더라도, 그 나름대로 세계에 자랑할 만하거나, 최고로 盡善盡美하거나 또는 가장 특이한, 그 무엇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자연물이거나 인조물 일 수도 있고, 과학적이거나 종교적인 것 일수도 있으며, 사상적이거나 제도적인 것일 수도 있다. 바로 그것을 그 나라 어문으로 배워서 전문지식  유자가 될 때, 아니면 적어도 그 내력이라도 알고 있을 때, 비로소 사회적 수요에도 부응하고 새로운 가치의 창조에도 공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중국정치와 경제를 내용으로 한 교재개발 
이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각 外國語文 학과마다 다양한 전공교수들을 초빙하는 것이다. 다만 여러 가지 형편상 당장은 불가능한 경우 불가피하게 기존의 어문 교수들이 학생에게 선택의 여지를 더 넓히기 위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필요한 새 분야를 개척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사실 대다수 어문분야 전공 교수 가운데는 자기의 전공이 아닌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의 어떤 분야를 충분히 지도할 수 있거나 또는 적어도 단순한 번역만이라도 지도할 수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학생들의 ‘현실적 발전’을 위해서 철학이나 경제학, 법학 등 필요한 교과목을 설정하여, 해당 전공교수를 초빙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지도하는데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필자는 ‘중국정치’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중국어과에 재직하는 동안 어학과 문학만 강조하던 지난 시기에 교과목의 다양화 내지 언어의 내실화를 기하기 위하여 새로운 교과목을 개발하는 데 노력한 경험이 있다(물론 지금은 각 교과목 교수가 거의 모두 충원됨). 대체로 필자는 부족할망정 사회과학적 소양이 있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좀더 쉬웠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새 분야를 개척할 때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름대로의 노력 끝에 필자는 기존의 ‘中國事情’의 교과내용을 개선했고 ‘中國政治原講’을 개발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힘들지는 않았으나 ‘中國經濟’와 ‘中國法制’를 개발 및 강의할 때는 상당히 힘들었다. 따라서 우선 내용이 평이하고 만만한 교재를 선택 또는 편집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다음의 문제는 능력이 닿는 데까지 예습을 하여 학생들에게 읽혀주고 번역해주는 것이었다. 아마 1차적인 효과에서 필자의 지도효과는 겨우 C학점 내지 D학점 수준에서 만족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과제를 부과하면 그들은 스스로의 흥미와 열정으로 숙제를 완성함으로써 2차적으로 대략 B학점 수준의 실력을 쌓게 되었다.


그런데 효과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성적과 지식을 가지고 입사시험이나 석사과정 진학시험 또는 해외대학 유학과정에서는 면접관 또는 심사관에게 대단한 프리미엄 작용을 하여 3차적으로 그 학생은 A학점의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이었으며 실제로 입사 후에도 업무수행 능률이 그만큼 더 높았다고 한다.


바야흐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어문학계의 풍토에 더욱 신선하고 다양한 생기를 불어넣기를 바라는 요청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는 당연한 요청이며 피할 수 없는 대세이다. 부디 어문학계의 교육내용에 탁 트인 다양성과 실속 있는 알맹이가 가득 채워지기를 기원한다.


조회환    한국외대 명예교수·중국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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