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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들, 총장항명 이유
서울대 교수들, 총장항명 이유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1.05.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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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29 17:41:06
"서울대는 그동안 지켜왔던 학문의 대학이란 기본 이념조차 흔들리는 위기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기초 학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채 시장원리를 중시하는 운영방침에 따라 대학의 이념과 본질이 손상되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대 기초학문분야의 교수들은 대학총장의 대학운영 마인드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서울대 인문대·사회대·자연대 교수 3백55명이 이기준 총장을 향해 던진 이 집단 성명서는 일부의 해석처럼 기초학문에 대한 지원 촉구로 해석하기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성명서 채택에 동참한 인문대 유 아무개 교수는 “그것은 오히려 흔들리는 서울대의 정체성에 대한 우려의 표현이요, 문제제기”라고 말했다. 같은 인문대 김 아무개 교수 역시 “이 총장이 들어선 이후 대학이 너무 실용적이고, 도구적 지식의 제공에 집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초학문 교수들의 집단적인 반발을 촉구시킨 계기는 이른바 ‘교직원 수첩사태’였다. 서울대 교직원수첩은 전통적으로 학문하는 대학의 위상과 역할을 살려 인문대, 사회대, 자연대를 맨 앞에 세웠다. 하지만 올해 발간된 수첩은 공학적 마인드를 도입해 ‘가 나 다’ 순서로 편성, 간호대학을 가장 앞세운 것이다. 3개 대학 학장은 학장회의를 통해 잇따라 문제를 지적했지만 오히려 화살은 되돌아 왔다. “뭐 그런 것 가지고 쫀쫀하게 문제를 삼느냐.”

어린아이도 아닌 교수들이 여기에 발끈한 것은 그것이 곧 서울대의 현실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단순히 단과대학의 표기 순서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 지향하는 기본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전임 선우중호 총장에 이어 공과계열에서 연달아 총장을 맡으면서 서울대 내부의 운영은 급속하게 경영학·공학적 마인드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송기호 교수(국사학과)는 최근 서울대학보인 ‘대학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서울대 도서관엔 국내 신문들이 없다. 인터넷이면 모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2개월만 보관하고 폐기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잡지 구독을 대폭 줄이고, 심지어는 교수들마저 구간 서고에 들어갈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며 공학적 마인드에 흠씬 젖은 대학의 모습을 질타했다.

현재 대학의 집행부를 맡고 있는 교수들만 보더라도 기초학문 분야의 교수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번 교수들의 집단성명은 단순한 항명을 넘어 서울대가 정말 제대로 된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는가 하는 정체성의 물음이라고 볼 수 있다.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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