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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51] 권리를 구걸하는 대신, 부자들과 전쟁을 벌이자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51] 권리를 구걸하는 대신, 부자들과 전쟁을 벌이자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1.07.06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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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자코브

2021년 초부터 방영되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의 미스터리 드라마 「뤼팽」의 주인공은 흑인 이민 출신인 아산 디오프(오마르 시 분)로 인종주의를 묘하게 뒤틀고 있다. 그는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잡히기 전에 선물로 받은 아르센 뤼팽 소설책을 읽고 뤼팽을 본받아 괴도가 되어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청소부 같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변장으로 루브르 박물관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걸이를 훔친다.

 

넷플릭스 드라마 '뤼팽'
넷플릭스 드라마 '뤼팽'

 

나는 어려서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했다. 지금은 그때처럼 찾아서 읽지는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좋아한다. 그러니 반세기 이상 변함없이 열심히 읽는 소설은 추리소설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오로지 두뇌 플레이에만 집중하는 코난 도일(Arthur Ignatius Conan Doyle, 1859~1931)의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추리보다 그와 대적하는 모리스 르블랑(Maurice Marie Émile Leblanc, 1864~1941)이 쓴 아르센 뤼팽(Arsène Lupin)의 모험추리를 좋아한다. 사실 코난 도일의 홈즈는 19세기 초엽 영국에 등장한 사회적 추리물을 싫어한 지배층에 의해 만들어진 비사회적 두뇌 플레이용이었고,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 1890~1970)의 할머니 탐정도 그 뒤를 이은 것들이었다. 게다가 홈즈가 쫓는 범죄자 중에는 영국 식민지에서 온 원주민 등이 많아 그 소설에는 영국 문학 특유의 제국주의 냄새도 짙다.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는 “그의 헤라클레스와 같은 힘, 교활한 용기, 프랑스적 지성”에 매혹 당했다고 하며 뤼팽을 찬양했다. 20세기 지성을 대표한다는 사르트르도 그러하니 (따라서 그의 어렵다는 실존주의란 것도 그렇고 그런 게 아닌가) 아이들이 뤼팽을 좋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 뤼팽을 만든 탓으로 르블랑은 프랑스에서 ‘국민작가’로 불린다고도 한다.  내가 아나키즘에 대해 흥미를 느낀 것도 초등학교 초년 시절에 읽은 뤼팽 때문일지 모른다.

 

뤼팽의 모티브는 아나키스트

 

뤼팽의 여러 모델 중 하나인 알렉산더 자코브(Alexandre Jacob, 1879-1954) 혹은 마리우스 자코브(Marius Jacob)는 프랑스의 아나키스트다. 1879년 마르세유 노동계급 가정에서 태어난 자코브는 열두 살에 견습 선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긴 항해를 포함한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4년 뒤 건강이 나빠져 견습 조판공으로도 일하며 아나키스트 모임에 참석한다. 그러다 17세에 사소한 절도행위로 체포되어 6개월 징역과 벌금형을 선고 받은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절도를 계속 저지르면서 탈옥도 경험한다. 이어 1900년에는 ‘밤의 노동자들’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정한다. 즉 “경찰에게서 자신의 삶과 자유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살인 하지 말 것. 오직 정치가, 판사, 군인, 사제와 같은 사회의 기생충에게서만 훔치고 건축가, 의사, 예술가 등의 유용한 직업을 대상으로 하지 말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훔쳐낸 돈의 일부는 아나키스트적 활동과 관계된 것에 투자한다는 것”이었다.

 

알렉산더 자코브(Alexandre Jacob, 1879-1954). 사진=위키피디아
알렉산더 자코브(Alexandre Jacob, 1879-1954). 사진=위키피디아

 

그래서 로슈포르에서 절도를 하다가 그 집이 저명한 작가인 피에르 로티의 집인 것을 알고서는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아무것도 훔치지 않고 도주하기도 하고, 빚을 많이 진 사람의 집에서 훔치려다가 그만두기도 했다. 1899년에는 경찰관을 가장하여 전당포를 습격하고 1900년에서 1903년 사이 2명에서 4명으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활동하며 파리를 중심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등에서 150번 가량 빈집을 털고 호텔 등을 불질렀으나 1903년에 구속되고 종신 강제 노동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법정에서의 진술인 「나는 왜 빈집털이범이었는가?」가 유명하다. 그 진술에서 그는 자신이 빈집털이범이고 호텔방화범이면서 “권력 하수인들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를 옹호했다”고 하면서 “나를 판단 할 수 있는 누군가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용서나 순종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싫어하고 경멸하는 사람들에게 구걸하지 않는다. 당신들은 나보다 더 강하다. 원하는 대로 처분하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왜 빈집털이범이었는가?

 

“도둑질은 모든 사람이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취하는 욕구다. 인생은 도둑질과 학살일 뿐이다. 식물과 동물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잡아먹는다. 하나는 다른 것의 먹이로만 태어난다. 문명의 정도 또는 인간이 이룬 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또한 이 법의 지배를 받으며 죽음의 고통 속에서만 벗어날 수 있다. 그는 자신을 먹여 살리기 위해 식물과 짐승을 모두 죽인다. 그는 만족할 줄 모른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보장하는 영양소를 제외하고는 공기, 물, 빛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음식물을 나누기 위해 두 사람이 서로 죽이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내가 알기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은 그것 없이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가장 귀중한 물건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음식물을 훔친다. 그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할까? 당연히 아니다! 당신들은 도둑질과 노동을 구별한다. 그러나 더 많이 일할수록 수입이 줄어든다. 모든 것을 생산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대담한 사람만이 권력을 잡고 그들의 착취를 합법화하기 위해 분주하다. 그래서 노동계급과 자본계급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당신들은 내가 다른 것이 될 수 있는지 묻지 않고 나에게 법을 엄격하게 적용한다. 부자가 도둑이 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팔과 뇌만 소유한 나는 자신의 보호를 위해 다르게 처신해야만 했다. 사회는 나에게 일, 구걸 또는 절도라는 세 가지 존재 수단만을 부여했다. 그러나 약간의 월급을 위해 피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싫었다. 매춘에 굴복하는 것이 싫었다. 구걸은 타락이며 모든 존엄성의 부정이다. 권리는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취하는 것이다. 절도는 배상이고 소유권의 회복이다. 내가 가진 권리를 구걸하는 대신, 나는 부자들과의 전쟁을 벌이고 그들의 물건을 공격함으로써 반란을 일으켜 적과 맞서 싸우는 것을 선호했다. 나의 도둑질은 욕심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과 권리의 문제였다. 나는 자유, 독립성,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존하는 것을 선호했다. 나는 도둑질을 당하는 것보다 도둑질 하는 것을 선호했다. 물론 나는 다른 사람의 노동의 결실을 폭력적이고 계략적으로 빼앗는 행위를 비난한다. 그래서 가난한 자의 재화를 도둑질하는 부자와 전쟁을 벌였다. 나도 절도가 추방된 사회에서 살고 싶다. 나는 혁명적 아나키스트로 혁명을 일으켰다.“

 

절도와 범죄를 계급논리로 정당화하다

 

이러한 자코브의 주장에는 당시 엘리제 르클뤼나 세바스티안 포르, 또는 장 그라브와 같은 아나키스들이 재산의 부도덕성을 강조하며 도둑질을 정당화한 경향을 반영한다. 당시에는 아나키스트로 도둑질을 한 자들이 많았다.

2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 뒤 1929년 강제 노동형이 금지되면서 석방되어 행상인으로 살았던 마리우스 자코브는 아나키스트 죄수인 사코와 반제티를 위한 국제적 지원 노력과 함께 스페인에서 사형당할 운명이었던 두루티를 위해 활동했다. 1936년에는 스페인의 CNT를 도우려 바르셀로나로 갔지만, 스페인에서의 투쟁은 희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프랑스로 돌아와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다가 1954년 자살했다.

 

외젠 비도크(Eugène François Vidocq, 1775~1857). 사진=위키피디아
외젠 비도크(Eugène François Vidocq, 1775~1857). 사진=위키피디아

 

뤼팽의 모델로는 외젠 비도크(1775~1857)도 있다. 셜록 홈즈의 모델이기도 한 그는 역사상 최초의 사립탐정이며, 프랑스 경찰의 실질적인 창시자가 됐다. 평생 무려 2만여 명에 가까운 범죄자를 체포했다는 그는 잠복수사, 범죄기록 등을 처음으로 시도했지만, 탈영병으로 감옥에 들어가 10년간 프랑스의 거의 모든 교도소에서 탈옥과 옥살이를 거듭했던 전과 때문에 그의 업적이 한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위조라는 혐의가 있는 네 권의 회고록은 애드거 앨런 포우, 아더 코난 도일, 에밀 가보리오 등에 영향을 미쳐 근대 추리소설의 기초를 세우게 했다. 또 빅토르 위고가 쓴 『레미제라블』이나 뒤마의 『몽테그리스토 백작』의 주인공들, 그리고 오노레 발자크의 연작소설 『인간희극』에 등장하는 천재 범죄자 보트랭도 비도크를 모델로 했다. 프로이트는 그의 심리수사를 논문으로 냈으며, 조반니 자코모는 비도크의 뛰어났던 외모와 수많은 연애경험을 배경으로 카사노바를 그렸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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