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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 한국고고학회의 문화재청 비판
쟁점 : 한국고고학회의 문화재청 비판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02.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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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주의가 고고학 망친다 … 학술위원회 구성해야

▲‘고양이 세수’ 같은 부실 발굴 및 보고서 작성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고고학회가 나섰다. 사진은 관북리 백제시대 지하저온 창고와 이곳에서 발견된 목곽창고 씨앗. ©
고고학계가 뒤틀린 발굴제도를 바로잡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지난 16일 충남대 박물관에서 한국고고학회(회장 이남규 경북대 교수) 주최로 열린 ‘유적 조사제도 개선과 학술성 제고’의 워크숍에서 학자들이 발굴 주무기관인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현재 우리 발굴제도의 문제는 이익집단인 사설 발굴기관이 정확한 조사보다는 발굴 의뢰 시공업체의 사정에 맞춰주는 식으로 운영해 발굴의 공공성이 실종되는 데 있다. 워크숍에서는 ‘대안’에 논의가 집중됐는데 ‘구제조사와 고고학자의 역할’을 발표한 박순발 충남대 교수는 “학술적 소규모 조사는 대학, 대규모 구제조사는 발굴전문기구”라는 인식을 버리라고 주장했다. 구제조사는 원상변경에 처한 유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요즘 거의 모든 발굴이 구제조사인지라 학술발굴과의 구별이 무의미하다는 것.

국내 25개 발굴기관 조사인력의 기관별, 개인별 편차가 크고, 특히 학술논문 생산 등의 연구력에서 그 격차가 심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조사단장이 비전공자이거나 아니면 퇴임 원로”여서 제대로 된 발굴 지휘가 안될 뿐 아니라, 문화재위원으로 구성된 유명무실한 ‘지도위원회’를 행정적 방패막이로 삼고 있어, 발굴을 학술 성과로 연결시키는 일은커녕 유물 확보도 위태위태하다는 분석도 있다. 게다가 구제조사의 폭증과 그에 따른 자료의 양적 팽창으로 학자들의 현장 방문은 발굴 ‘끝물’에 대략적인 유적과 성격을 관찰하는 것에 그친다.

박 교수의 대안은 ‘학술위원 제도’의 도입이다. 전국 대학 전임교수 60명을 활용해 학술적으로 중요한 유적발굴을 중심으로 조사 참가, 설명회 및 학술검토회 주관, 보고서 작성 및 결과논문 학계 공표를 관철시키자는 것이다.

현재 충청권의 일부 조사기관들이 전공자를 검토위원으로 위촉하고 있는데, 충청지역 일부 문화재위원들이 압력을 가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진다고 한다. 온갖 이유로 조사 허가가 반려되거나 현장실사로 행정적 불이익을 받는 것. 그러니 기관들의 自淨을 통한 개선은 어려워 보인다.

발굴허가를 내주는 문화재청의 매장문화재과는 지난 12월 학계에 비판 여론을 감안해 제도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학계가 주장하는 발굴기관의 ‘공사화’ 혹은 ‘특수법인화’가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조사기관협의체’를 발족시켜 공공성을 담보하자는 제안이다. 그러나 워크샵에서 신경철 부산대 교수는 이를 ‘교묘한 현실회피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협의체’의 인사권한을 문화재청이 가지면서 ‘협의체’로 하여금 조사기관 등록 및 취소, 회원기관 지도·감독·제재, 출토유물보관동 운영, 보존처리소 설치운영 등 문화재청이 담당해야 할 막중한 책무를 넘기겠다는 것은 “관료권한의 확대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동시에, 제반문제에 따른 책임을 ‘협의체’에 떠넘겨 회피하겠다는 일거양득의 관료편의주의”라고 신 교수는 분개하고 있다.

일본 같은 경우는 각 지자체의 교육위원회에서 발굴을 담당해 그 공공성을 중요시 여겨왔다. 그런데 최근 경기침체로 발굴수요가 줄어 정부 산하기관이 폐쇄되고 그 대신 법의 허점을 노린 민간 회사가 생겨나 사회적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정반대로 문화재청이 앞장서 사설 발굴기관의 모형을 제시해 잡다한 기관들의 난립을 부추겼으며, 그로 인한 문제가 심각한 현재의 상황에서도 ‘민원의 신속한 처리’라는 하나의 이유로, 통폐합되어도 시원치 않을 발굴기관들의 확산을 방치하고 있어 학계를 아연실색케 하고 있다.

이번 고고학회 워크숍의 토론결과는 학계 공식문서로 향후 문화재청에 제출될 예정이다. 현재 발굴과 관련된 행정은 문화재청 매장문화재과의 ‘전결’로 처리되고 있다. 지난번 ‘협의체’ 카드를 들고 공청회를 개최한 매장문화재과는 토론현장에서 제기된 학계의 비판과 문제제기를 묵살하고 협의체 강행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학계의 이번 견해마저도 한 부서의 도장 하나에 짓눌리고 마는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초점 : ‘유물나열이 논문인가’, 고고학계 自省論
分析 강화하고, 연구영역 넓혀야

발굴조사가 학문 연구로 승화되지 못하고 생계수단으로 전락하는 현상에 대한 자성론이 일고 있다. 폭증하는 발굴수요를 좇다보면 관련자료 검토와 유물에 대한 해석행위를 열심히 할 수 없는 구조적 현실은 물론 큰 문제다.

또한 최성락 목포대 교수는 고고학이 물질적 자료를 바탕으로 문화를 설명하는 학문이라는 기본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젊은 학자들의 전공이 지나치게 세분돼 유물과 유구별로 설명하다보니 전체적으로 해당 시대 고고학의 특징이나 시기구분, 문화의 변천, 중앙과 지방의 관계, 문헌사와의 관계 등을 제대로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학문내부의 논리적 관행 또한 문제로 지적된다. 김장석 전남대 교수는 선사고고학이 “벼의 상한연대에 집착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다른 집단이나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그것을 선택하고, 그를 통해 사회문화적으로 바뀌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가령 맥도날드가 한국에 상륙해 순식간에 10대들의 문화 아이콘이 돼버린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맥도날드 햄버거를 언제 누가 제일 먼저 먹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상한연대 집착, 신석기와 청동기의 겹침을 인정하지 않는 학계의 연구태도가 신-청 전환기 같은 사회의 대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고 본다.

또한 김 교수는 “외국이론을 배워서 이렇네 저렇네”하는 “빠다고고학”과 “추상적 단어는 고고학과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된장고고학”을 공히 비판하며 오늘날 외국유학파의 임무는 “밀도나 수량 면에서 충분한 이슈를 제기하는 한국 유물들을 통해 고고학 이론을 개발해 외국의 상황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 외에 김 교수는 고고학계에서는 유물의 문양 등이 달라 보이면 일단 나누고, 영향 혹은 유입의 결과로 보거나, 종족의 차이로 보는 관행, 그리고 학계 선학들이 규정해놓은 개념을 진리로 답습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고고학은 역사학이냐 인류학이냐 질문을 받는 등 정체성 문제로 괴로웠지만 이제는 ‘통합과학’으로서의 성격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역사학과 고고학의 상호 오해없는 학술적 인용은 가장 시급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일부 역사학자들의 정력적인 고고학 활동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안승모 원광대 교수는 “아직 학계의 순종주의 때문에 고고학을 한국고고학에 국한시키고 있어 다양성이 부족하다”라고 지적한다. 동·식물고고학, 지질고고학, 고고측정학(archaeometry), 민족지고고학, 수중고고학, 종교고고학 등 테마별로 영역을 넓혀가는 것도 과제다.

최성락 교수는 “모 학회 차원에서 고고학의 학문적 성격, 연구방향, 발굴조사 및 분석방법론, 유물 이용법 등에 대해 앞장 서 논의하는 것으로 활동을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일단 자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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