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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_국토연구원 '산맥체계 재정립' 주장놓고 학계논란
쟁점_국토연구원 '산맥체계 재정립' 주장놓고 학계논란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5.02.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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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차이에서 비롯…지질구조 학제적 검토 필요

지난 연말 국토연구 GIS연구센터(센터장 김영표)에서 ‘한반도 산맥체계 재정립 연구’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이래 한국산맥지도에 대한 새로운 재정립과 해석을 놓고 학계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특히 국토연구원 측과 대한지리학계 측이 산맥의 개념을 놓고 대립해 해결의 실마리를 못찾는 실정이다.

2백5십여 쪽에 달하는 보고서는 김영표 박사 주도로 3명의 연구원이 1년간 수행한 것이다. 주요 요지는 ‘산맥이란 산지에서 일정한 규모를 가진 산봉우리가 선상으로 길게 연속돼 있는 지형’으로 ‘이 개념에 따라 산맥지도를 새로 그려야 한다’는 것. 이를테면 우리가 아는 차령산맥은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산맥이며, 거꾸로 교과서에 없는 수많은 산맥들은 ‘실체’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다소 충격적 주장이다.

논쟁의 경과와 대립구도

보고서가 발표되자 대한지리학회(회장 이정록)는 지난 1월 17일 반박 성명서를 내고 국토연구원 측에 공개토론회를 갖자고 제의했다. 또한 월간 ‘과학동아’ 2월호에 김영표 박사의 보고서 요약글과 대한지리학회 소속 손일 부산대 교수(지도학)의 반론글이 나란히 게재됐다.

현재까지 언론을 통해 논의돼온 형국은 국토연구원의 새로운 주장과 근거가 제기되고 이에 대해 지리학계가 반론하거나 이들의 일부 견해가 뒤따라 붙는 식이었다. 지리학계에서는 “국토연구원이 민족주의 이념이나 정서를 앞세우고 있다”, 국토연구원 측은 “지리학계가 과학적인 검토를 비전문가적 견해로 단정 짓는다”라며 서로의 견해를 배척하고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 논쟁은 ‘한반도 산맥지도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라는 새로운 학술적인 기획테마로 설정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학계 내부의 다양한 견해가 요구된다. 지난 2월 15일 한국지형학회 동계학술대회에서는 이 논쟁과 관련해 박수진 서울대 교수(토양지리)와 손일 교수가 ‘新산경표론’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국토연구원 보고서를 비판했다. “유역을 구성하는 산지의 능선을 이은 산줄기는 지형학적 산맥과는 별개로 다뤄져야 할 대상”이라며 “산맥 개념을 분명히 하기 위해 한반도 유역분수계의 특성과 유역능선의 공간적인 분포를 정량화한 뒤, 한반도의 유역특성을 대표할 수 있는 ‘유역능선도’” 개념을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한반도 전체를 대상으로 한 유역분수계의 특성을 분석한 연구가 전무하다는 것은 지형학자들의 역할이 부족했다”라는 점을 증명한다고 자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양측에서 제기하는 주장들은 각기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논쟁의 초입에서 ‘산맥’개념에 대한 서로 합의할 수 없는 정의를 내놓기 때문이다. 김주환 동국대 교수(지형학)는 “전혀 합당치도 않은 비전문가들의 문제제기에 답할 필요성도 못느낀다”라고 잘라 말한다.

산맥은 지형형성 작용을 통해 정의되는 게 기본상식인데 ‘산의 규모’와 ‘산지의 연속성’으로 개념짓는다는 건 얼토당토않다는 ‘지질학적’ 설명이다. 박승필 전남대 교수(지형학) 역시 국토연구원이 “지형형성 작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분류기준으로는 사용하지 못한다는 게 논리적 모순”이라며,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됐다”고 비판한다. 이도원 서울대 교수(사회생태)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산맥이란 용어의 생성배경을 살피는 게 논쟁에 우선돼야 한다”라고 하면서도 “굳이 분수계와 산맥을 혼동할 필요가 없다”라며 지리학계 산맥개념에 손을 들었다. 특히 몇가지 점을 따져 들어 “국토연구원이 대동여지도에서 ‘당위적 산맥’을 끌어내려는 태도에 문제점이 있다”라고 지적한다. 대한지리학회는 성명서에서 국토연구원의 산맥개념은 ‘분수계’를 혼동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지리학적 상식과 사전적 정의의 대립

이에 대해 김영표 박사는 “지리학계의 반론이 재고할 가치도 없다”라며 맞서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산맥개념이 옳다는 주장에 대해 두 가지 근거를 내세운다. 우선 보고서에서도 밝혔듯이 브리태니커, 옥스퍼드 백과사전만 참조해봐도 ‘규모’와 ‘연속성’이 산맥의 판단기준이라는 것. 나아가 산맥은 “같은 지질학적 특성을 가질 필요가 없다”라는 게 세계 보편적인 기준이라는 것이다.

지리학계가 산맥개념의 형성요인을 중시하는 ‘지리학적 상식’을 내세운다면, 김영표 박사 측은 “일반적인 상식”에서 생각하자는 쪽이다. 즉 지형학적 형성요인보다는 현재 가시적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산줄기가 ‘실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땅속’ 기준이냐 ‘땅위’ 기준이냐는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다. 왜냐하면 지금 존재하는 산맥이라도 침식을 받아서 언제든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지리학계 의견이다.

개념논쟁을 제쳐둔다면 본 논쟁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갈린다. 양보경 성신여대 교수(역사지리)는 “국토연구원의 수치표고 모델, 인공위성 영상자료, 지리정보체계 등 새로운 도구와 방법이 학문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 좋은 예”라고 본다. 최병두 대구대 교수(인문지리학)는 “논쟁을 떠나 이번 기회를 계기로 현재의 지질구조를 체계적으로 점검해볼 필요성도 있다”라고 말한다.

사실 ‘산경표’의 백두대간 발견 이래 산맥논쟁은 끊이질 않았다. 학계에서는 1백여년전에 한반도 산맥지도 근간을 세운 고토 분지로의 것을 수정보완해오긴 했으나 “체계적으로 이뤄진 적은 없다”라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근래 지리학계에서 가장 새로운 주장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권혁재 고려대 교수(지형학)의 ‘한국의 산맥’(대한지리학회지, 2000)의 것이다. 지리교육학회의 구자용 상명대 교수(지리정보시스템), 박승규 춘천교대 교수(지리교육) 등은 “많은 학자들이 권 교수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라며 “8차교과서 개정에서 고려해볼 사항”이라고 말한다. 권 교수는 논문에서 “지리교과서의 산맥이 불합리하게 설정됐다”라고 지적하며 “잘못된 산맥을 없애고 대신 하천을 뚜렷하게 그려넣어도 좋은 지도가 된다”라고 주장한다. 현재 지형에 적합하게 수정·보완하자는 것이다. 국토연구원 보고서는 이에 대해 “과학적 분석기법이 뒷받침 되지 않은 지리교과과정을 간편히 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한계를 지적한다.

2백미터 이상을 산으로 본 것은 자의적

개념은 법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므로 ‘관점’ 차이에 매몰될 위험성이 다분하다. 보통 개념은 과학적인 근거가 뒷받침 되지만 ‘어디서부터’,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는 역사사회적인 동의 아래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교수(환경지리)는 “국토연구원이 참조한 출처자료가 틀린 것은 아니다”라며 “산맥은 결국 사회적 동의가 뒷받침 되는 관습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쪽 주장이 맞고 틀리고로 전면 부정될 순 없다는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국토연구원 주장을 ‘새로운 하나의 견해’로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현재 지리학계의 견해는 ‘산맥과 분수계를 구분하자’는 쪽으로 그와 같은 문제를 정리한 입장이다. 또한 국토연구원의 분석기법은 과학적인 도구들을 사용했어도 분석과 적용에 있어 ‘작위적’, ‘인위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는데, 이를테면 고도 200m 이상의 산지를 산맥으로 규정한 것, 산맥 구분 근거를 ‘산의 규모’와 ‘산지의 연속성’으로 제시해두고도 이를 영상장료에 적용해 산맥을 추출하지 않은 것, 그럼으로써 결국 지리학계에서 그동안 말해온 분수계를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 산맥지도를 제시하고 이를 토대로 ‘산맥 혁명’을 일으키려는 것은 아무리 과학적 기자재들을 활용하고 있다 하더라도 학문적인 방법으로 수행된 작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토론이 필요한 것일 테다.  

학계 역시 비판을 면치 못할 지점들이 있다. 권혁재 교수가 지적했듯 “지리학계는 산맥논쟁에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학계에서 나서서 검토해야 할 현행 산맥지도나 지리교과서 개정에 소홀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학계가 외부에서 제기되는 논쟁에 적절히 개입하지 않는다면 사회적으로 혼동되는 지리학적 지식과 정보에 대한 책임은 결국 현실과 유리된 학문에 돌아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일반인들이 받아들이는 산맥개념이 지질학적 형성요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면, 이부분에 있어서도 지리교육이나 정보제공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기에 이를 위한 학술적 심포지엄이 필요하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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