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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대학개혁 제1탄: 일본
세계의 대학개혁 제1탄: 일본
  • 이향철 광운대
  • 승인 2005.02.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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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학에 폭탄이 떨어졌다”…“동아시아 대학모델 수정”


 

▲이향철 광운대 교수 ©
이향철 광운대 교수(일본학)

일본의 국립대는 1990년대에 들어선 이래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커다란 구조변동을 겪고 있다. 특히 2004년은 국립대학의 특별사법인으로의 이행, 법과대학원을 중심으로 하는 전문직대학원의 출범, 인증평가라는 새로운 대학평가제도의 도입 등 그동안 10년 넘게 끌어오던 대학개혁 논의가 일제히 구체적인 제도화의 단계를 맞이하게 됐다는 점에서 고등교육 관계자에게 획기적인 해로 각인될 것이다.

메이지 초기에 제도가 이식돼 1백20년의 星霜을 넘기고 있는 대학사 가운데 패전 후의 점령개혁으로 이루어진 미국형 대중대학 도입을 훨씬 넘어서는 최대 규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중세 유럽대학을 기원으로 하는 대학제도가 그 장구한 역사 가운데 몇 세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거대한 세계사적 변동을 미국이나 영국보다 10년 정도 늦게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메이지 시기 이래 최대 대학 구조변동

그동안 국가 행정기관의 일부였던 국립대는 각기 독립된 법인격을 부여받아 예산과 조직 등을 자기책임 아래 운영하게 됐다. 그리고 총장을 이사장으로 하는 이사회라는 민간기업적인 발상을 도입해 톱매니저먼트를 실현했으며, 총장을 선출하는 ‘총장선출회의’나 경영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는 ‘경영협의회’를 신설해 여기에 외부전문가를 참여시키게 됐다. 유유자적한 직장생활을 보내면서 노후의 안락을 꿈꿔 오던 교직원들은 졸지에 국가공무원으로서의 프라이드와 특권을 반납하고 특수법인의 직원으로 편입돼 총장의 탄력적인 인사운영의 지배 하에 놓이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처럼 국립대의 법인화로 대학의 관리운영체제가 크게 바뀌고 교직원의 신분과 인사,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연구·교육 활동도 심대한 영향을 받게 됐다. 오랫동안 일본에서 이상적인 모델로 자리를 잡아왔던 국립대가 이미 법인격을 갖고 있는 사립대에 조직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인 만큼 사립대를 포함해 일본의 고등교육시스템 전체의 근본적인 변혁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2차대전 이후 대학대중화가 급격히 진행된 독일에서 대학개혁 작업에 참여했던 사회학자 헬무트 쉘스키는 오랜 역사를 통해 대학 스스로의 노력이나 자각에 의해 대학제도가 전면적으로 개혁된 적은 없고 오로지 외부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일본의 대학개혁도 대중화, 시장화, 세계화라는 외부적인 계기에 의해 문제가 촉발되고 논의가 전개돼 온 경위가 있지만 국립대 관계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여기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거나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립대의 중추적인 관리조직 강화와 설치형태 개혁 문제는 30여년전 대중화된 학생들의 반란인 대학분쟁을 계기로 표출됐다. 그 후 1980년대에는 규제완화·구조개혁노선으로, 다시 그로부터 10년 후에는 중앙정부개혁의 추진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에서 특수법인화 문제나 독립행정법인화 문제 등으로 모습을 바꾸면서 등장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국립대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대학개혁 논의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노력을 게을리 하고 줄곧 바깥에 서 있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대학분쟁을 산고로 탄생한 중앙교육위원회 답신에 대해 냉소주의로 일관했으며 전국의 대학에서 이를 정책지침이나 개혁의 청사진으로 활용했다는 흔적을 남기고 있지 않다.

1986년에 나온 임시교육심의회의 답신에서는 대학인이 고등교육개혁 문제를 남의 일로 생각하지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과 책임을 절실하게 인식하고 사회의 기대와 신뢰를 저버리지 않기를 강력히 요청한다며 의례적인 자주개혁노선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서글프게도 국립대 관계자들이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를 이야기하면서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은 국가의 전면적인 보호를 받아 경쟁과 긴장감 없는 직장생활을 보내고 안락한 노후생활을 꿈꿀 수 있는 국가공무원의 신분이었다.

1999년 말에 국립대학협회가 강경하게 반대해 온 국립대 법인화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은 공무원 신분을 유지한 채 독립행정법인으로 이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정부의 방침전환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방침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 © 일러스트: 수경

 

국립대학법인의 출범은 대학개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을 의미한다는 측면에서 앞으로 일본 고등교육 관계자에게 미칠 파장은 가늠하기 어렵다. 제3자 평가라는 일본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제도가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대학의 설치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대신에 교육연구실적을 제3자 평가기관을 통해 평가·인증하고 그 결과를 대학의 자원배분에 확실히 반영해 나가며 나아가 재무내용·교육연구 등의 정보를 널리 공개함으로써 우수한 학생의 획득과 연계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국립대학법인법에 6년을 기간으로 하는 교육연구·업무운영·재무내용·자기평가·정보발신 등에 관한 중기목표·중기계획을 제출하게 한 것은 바로 이를 위한 포석이다. 결과에 따라 이미 2001년 6월 토오야마 아츠코 문부과학상이 제시한 국립대의 대담한 재편·통합과 국립대 수의 대폭적인 삭감으로 이어지지 말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일본의 대학에 어마어마한 폭탄이 투하됐다”라는 나가오 마코토 前 교토대 총장의 발언은 고등교육 관계자의 충격을 웅변하고 남음이 있다.

“동아시아 고등교육 모델 한계 드러내”

일본의 국립대 법인화는 고등교육의 동아시아모델의 한계와 궤도수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국을 위시한 다른 동아시아국가의 고등교육개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커밍스가 ‘사학교육제국’이라고 했듯이 이들 지역의 고등교육은 국공립섹트에 비해 사학섹트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고등교육의 궁극적인 수혜자는 국가라는 이념에 서서 거의 모든 대학의 설립형태가 국립·주립이고 압도적인 다수의 학생이 여기에 다니고 있는 서구대학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동아시아국가에서는 고등교육에 투입되는 공적 비용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만 아니라 그것도 피라미드형 계층구조의 정점을 차지하는 소수의 국립대에 중점적으로 투입되고 있다. 교육 투자의 총액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공립·사립을 가릴 것 없이 정점을 확대하고 정점과 저변의 격차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모든 자원을 전략적으로 배분함으로써 고등교육의 피라미드형 계층구조의 경사를 완화하고 다원화를 추구하는 노력이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결국 일본정부가 교육 당국의 주장을 꺾고 내각에서 고립시켜가면서 고등교육의 동아시아모델에 내린 처방전은 국립대의 특별사법인화, 민간기업적 경영관리수법의 도입, 외부전문가 참여의 제도화를 통한 내부자 지배의 견제, 교직원의 국가공무원 신분·특권의 박탈 및 총장의 탄력적 인사운영, 교육연구 실적에 대한 제3자 평가와 그 결과에 따른 차등적·경쟁적 자원배분이라는 거친 외과적 수술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일본 히토츠바시대에서 ‘근대 일본의 국가금융-우편저금/예금부자금의 고찰’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교육혁신위원회으로부터 ‘국립대학 개혁 기초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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