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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_創作과 講義
원로칼럼_創作과 講義
  • 이종상 상명대 석좌교수
  • 승인 2005.02.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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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교를 정년 퇴임하고 나서 화실에 틀어박혀 가능하면 두문불출하려고 안간힘을 쓰고있는지가 벌써 햇수로 두 해가 됐다. 그런 요즘의 나에게 전화를 걸어 “뭐하는데 그렇게 바쁘냐!” 며 걸핏하면 핀잔을 주는 친구들이 부쩍 많아졌다는 얘기다.  예나 지금이나 바쁜 건 매한가지인데 이런 말을 이마즉에 와서 왜 자꾸만 들어야 하는 건지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추측컨대,  그렇게 바쁜 척 하던 내가 이제 “정년하여 교단을 떠나서 할일없는 늙은이가 되었는 데 뭐 그렇게 할 게 많다고 여전히 바쁜 척 하느냐”는 얘기로 들렸다면 공연한 자격지심일까. 

하긴, 나 자신도 정년이 되어 교직을 떠나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몽땅 작업에만 투자해 그동안 강의 때문에 못다 그렸던 그림들을 실컷 그려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왔었다. 그래서 정년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이제부터 저는 오로지 그림만 그리는 늦깎이 전업작가로 데뷔해 그동안 밀린 그림들을 열심히 그려 볼 것입니다”라며 자신 있게 대답했었다. 화가가 교수로써 강의준비를 하고 온갖 보직의 잡무까지 수행 하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해 보면 집에 와서 다시 화판 앞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던지…. 그러니 화필을 잡는 시간이 모자라서 재직 중에는 그게 늘 불만이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퇴근하면 휴식이 기다리고 있는 데 반해서 화가 교수들은 퇴근하면 곧바로 또 다른 화실의 출근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많은 강의와 그 숱한 연구활동을 감내하지 못하고 정년 전에 교단을 물러서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년하고 나면 많은 시간을 오로지 창작에만 몽땅 투자하게 될 터이니 오히려 정년이 기다려질만도 하다. 더러 전공이 다른 동갑내기 동창들을 만나면 정년이 돌아오는 것을 어지간히 꺼리고 걱정하는 모습들을 대할 때 마다 속으로 “나는 예술가라서 정년 따위는 내 사전엔 없다”라며 은근히 자부와 위안을 삼은 적도 많았다. 그런데 내가 벌써 정년한지 어느덧 두 해가 되어갈 요즈막에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재직 중에 꿈꿨던 그런 나의 희망들이 하나같이 일장의 춘몽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俗말에 食小多煩이요 無事奔走라고 했던가. 그야말로 챙길 것은 없어도 얼굴 내밀어야 하는 체면치례가 왜 그리 많은지 예나 지금이나 수첩 안에 깨알같이 밖혀 있는 일정표에 매여 살기는 매한가지더란 말이다. 정년 후에도 아직 나를 필요로하는 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은총이며 그 동안 벌어 놓은 인덕의 후광이려니 여겨 내 나름의 위안을 삼으면서 열심히 사회봉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정년이 되면 전업작가로 화실에만 蟄居하며 두문불출 하겠다던 내꿈은 아스라히 멀져만 가는 듯 싶어 슬그머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나 혼자만의 것일 뿐, 막무가내로 부탁해오는 각종 회의행사 참석과 원고, 출연, 강연 등을 피해 갈 길이 없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년 하더니 더 바빠졌다’라고 하겠지만 사실은 내 경우 교수 재직시가 더 그런 봉사가 많았고 더 바빴다. 그러나 교수 재직시에는 어떤 경우라도 강의시간을 방패삼아 적당히 사양하고 선별할 구실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여유롭게 보인 것일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마음에 들지 않는 초대가 왔을 때는 강의시간이나 학사업무를 핑계대고 내 쪽에서 아쉬운 듯 완곡히 거절하는 방법이 통했었다. 재직시에는 안팎으로 그 숱한 강의와 업무, 그리고 사회봉사를 적절하게 조절하면서도 창작활동 또한 집약적으로 잘해 낼 수가 있어 좋았다. 그때는 그런 나의 거절에 ‘학교 강의를 결강하고서라도’ 아니면 ‘수학여행 인솔을 하지말고서라도’ 자기들 초청에 응해달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한국인의 사회인식 저변에는 자녀들의 교육우선주의가 밑바탕에 깔려있음으로해서 강의에 관한 한 신성불가침의 성역이 되어있음을 알수 있다. 이처럼 교육인식이 높은 것 만큼이나 우리는 교수의 학사업무에 한해서 절대절명의 권위를 부여 받고 있음에 늘 감사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한편 왕성한 현역 화가이면서 교수였던 나로서는 강의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화실에서의 창작 작업도 생명처럼 중요한 것이다. 창작이 단순 노동이 아니어서 신바람이 났을 때는 도중에 전화만 받아도 맥이 끊겨 다시 잇지를 못하고 한동안 헤맬 때가 많다. 그래서 가능하면 창작시간을 벌기 위해 교수 재직시처럼 각종 행사에 초청이 오면 창작시간과 겹친다고 핑계가 아닌 泣訴를 해봐도 상대는 들은척도 않고 “그림은 나중에 그리면 된다”라며 막무가내로 불러내려하니 “너는 정년했는데 뭐가 그렇게 바쁘냐?”라고 억울한 핀잔이나 듣고 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지도 모르겠다. 화가에게 소중한 그림 ‘그리기(創作)’가 교수에게 귀중한 학생 ‘가르치기(講義)’보다 노출된 자신을 지켜 줄 방패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재임 중, 학사업무에 시달려 오면서 불만 속에 살았던 그 때가 오히려 얼마나 축복이었는지를 새삼스럽게 요즘 反芻해본다. 후배 교수님들,  그 축복 많이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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