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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속사정’을 아십니까
식물의 ‘속사정’을 아십니까
  • 정민기
  • 승인 2021.07.0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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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식물이라는 우주 | 안희경 지음 | 시공사 | 552쪽

현직 연구자가 전하는 식물학의 최전선 지식
발아부터 개화까지, 우주처럼 넓은 식물의 세계

필자가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 책의 저자가 운영하는 블로그 ‘초록으로 본 세상’에 올라온 한 게시물 때문이었다. 저자는 영국에서 식물학을 연구하는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밟고 있으며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저자가 지난해 10월 중순에 게시물은 식물에 관련된 부정확한 실험 결과와 이를 부풀려 보도한 국내 언론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가 비판하는 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토종 상추는 사람과 교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료 상추의 죽음에도 반응한다고 한다. 똑같은 상추에게 일반 사람의 입김을 불었을 때 나오는 화학물질과 동료 상추를 20분간 씹어먹은 사람의 입김을 불었을 때 나오는 화학물질을 비교해보니 후자에서 더 많은 화학물질이 나왔다는 것이 근거였다.

저자는 기사에 나온 논문을 찾아 살펴보니 실험 세팅이 엉성하게 구성됐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정확하지 않은 대조군을 설정했을 뿐만 아니라 논문 자체에 내적 오류가 있던 것이다. 영국에서 식물학을 연구하는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밟고 있는 저자의 날카로운 비판에 필자는 솔직히 반했다. 그리고 ‘나중에 이 블로그 운영자 분이 책을 내시면 꼭 읽어봐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약 6개월 후 저자는 『식물이라는 우주』를 출간했다. 필자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읽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자극적인 내용으로 눈길을 끄는 일반 책들과는 다르다. 식물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전달한다. 조금 지루하고 어려울지는 몰라도 저자는 식물학계에서 합의를 이루고 여러 과학자에게 검증된 진짜 과학 지식을 전달한다.

자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종의 식물이 존재한다. 이를 모두 연구하기에 과학자들은 시간과 인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생물학에서는 ‘모델 생물’을 정해서 연구의 효율을 높인다. 식물학에서 쓰이는 모델 생물은 바로 ‘애기 장대’다. 꽃을 빨리 피우고 많은 씨앗이 맺힐 뿐만 아니라 실험실 안에서 키우기 적당한 길이와 생명력을 갖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채택됐다.

이 책은 애기 장대에게 인위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여러 환경 조건을 변화시켜가며 관찰한 연구를 담고 있다. 작은 씨앗이 발아되는 과정부터 꽃을 피우고 햇빛과 빗물에 반응하는 식물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아주 구체적으로 다룬다.

이 책은 식물학자들이 어떻게 연구를 진행하는지 알아보기 좋은 책이다. 식물이 호르몬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고 꽃을 피우는지 알기 위해서는 식물이라는 드넓은 우주를 전략적으로 탐색해야 한다. 우리는 그 연구 결과들을 손쉽게 접하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고된 실험의 연속이었을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현직 연구원이 쓴 책답게 이 책은 식물학의 최신 연구 흐름을 잘 반영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전문 용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책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가면서 용어를 잘 정리해두지 않으면 후반부에 가서 어떤 내용인지 독파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생물학 배경지식이 없는 경우라면, 쉽게 설명된 입문서와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 

정민기 기자 bonsens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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