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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인격체' 세상...인문학이 없다면
'전자 인격체' 세상...인문학이 없다면
  • 이중원
  • 승인 2021.06.2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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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이중원 논설위원(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
"인공지능 시대, 인문학이 필요하다"

 

이중원 논설위원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
이중원 논설위원 /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

2016년 5월 31일, 유럽의회의 법률위원회에서는 로봇에 관한 민법 규정 초안을 만들면서 가장 정교한 자율형 로봇의 잠재적인 법적 상태를 전자 인격체(electronic persons)로 기술하고 권리와 의무가 뒤따름을 처음으로 강조하였다. 정교하게 자율적인 결정을 내리고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미래의 로봇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많은 논란으로 결의안만 통과되고 아직 입법화되지는 못한 상태다. 그럼에도 이는 인공지능 로봇의 등장으로 비롯된 책임, 안전, 노동 시장의 변화와 같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쟁점들을 공식화했다는 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로봇의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동시에 자율주행차를 비롯한 자율형 로봇과 관련한 사고가 증가하면서, 그 책임 문제와 관련하여 인공지능 로봇에게 회사 법인처럼 법인격을 부여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논의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주지하다시피 인공지능 시대에 살고 있다. 아직은 제한된 영역에 국한돼 있지만 인간의 지적능력을 뛰어넘는 자율적인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인간의 육체적 활동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 활동까지 대신해 주고 있다. 또한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형 군사로봇, 자율주행차, 인간 돌봄 로봇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며 직접 대화를 나누면서 인간과 감성적으로 교류하는, 자기 주도의 학습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율적인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개발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인공지능 시대에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가 과거와 다르게 변화할 것이라 예상해 볼 수 있다. 기계가 더 이상 인간에 의해 수동적으로 작동하는 도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이지만) 인간처럼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적인 행위자가 되는 시대, 더 나아가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으로 간주됐던 능력들(감성, 이성, 자율성 등)이 언젠가는 인간이 아닌 기계에서도 구현 가능한 시대가 올 것이라 예측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인공지능의 등장은 우리가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성찰적 질문들을 던져 주고 있다. 전자 인격체에 대한 언급에서 보았듯이 이러한 기계들을 어떤 존재자로 규정할 것인가, 이러한 존재자들의 등장으로 인간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달라진 생활세계에서 어떤 윤리적·법적·사회적 문제들이 새로이 발생할 것인가, 인간은 이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이러한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정체성에는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 등등. 먼 미래에는 인간과 기계의 탈경계화로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면서 궁극적으로 휴머니즘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현재 또는 미래의 인공지능 시대에는 인간의 존재적 가치와 의미가 진정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고민하는 성찰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인문학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흐름들, 곧 대학에서 휴머니즘과 관련한 인문 학과들의 축소, 인문학 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의 감소, 그로 인한 인문학 분야의 학문후속세대 양성의 어려움 등은 미래 사회에 대한 암울한 자화상을 떠올리게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문학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

이중원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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