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速度와 이미지의 도가니
速度와 이미지의 도가니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5.02.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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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죽도록 달린다’(문예진흥원 예술극장, 1.15~2.6)

‘죽도록 달린다’(연출 서재형)는 신예 연출가의 출사표이자 처녀작이라는 이름에 값할 만큼 신선하다. 초반부터 등장인물들이 ‘죽도록 달리며’ 시작되는 이 작품은 동작의 활달함과 음악의 경쾌함, 그리고 갖가지 소리들이 어우러져 관객들의 공감각의 지평을 한껏 넓혀 놓는다.

이야기의 틀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서 빌려왔다. 프랑스 왕비의 시녀 보나쉬를 흠모하는 달타냥이 삼총사의 도움을 받아 영국에서 목걸이를 찾아와 왕비가 위기를 넘기게 된다는 내용. 그러나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왕비는 달타냥을 유혹해 아들을 낳고, 종국에는 왕, 왕비, 달타냥, 시녀 모두가 파멸로 치닫게 된다. 즉 원작의 헤피엔딩을 완전히 뒤집는 충격적인 내용은, 단순한 역전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에 좀더 철저히 다가가기 위한 극적인 연출이라는 점에 공감하게 한다.
‘죽도록 달린다’가 호소력을 지닐 수 있는 다른 층위는 그것의 형식미에 있다. 연출가 서재형은 이른바 ‘활동이미지극’이란 실험적 타이틀을 내걸었다. 현대 연극의 계보를 비틀어서 이어나가는 로버트 윌슨의 ‘이미지 연극’을 확장시킨 개념으로, 이미지들과 시청각적 효과들이 충분히 느껴지도록 ‘감각’의 예술을 만들어나간다는 의미다.

이 연극은 ‘삼총사’의 캐릭터를 구현할 6명의 배우, 그리고 무대 천장 부근에 걸터앉아 타악기로 소리효과를 내는 그룹 ‘공명’, 그리고 대나무를 대각선으로 내려친 것처럼 기울어져 배우들이 올라설 때마다 불안한 위치를 드러내는 독특한 무대장치의 하모니 속에서 그 형식미를 획득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시간 30분 동안 자기 대사를 한마디씩 던지면서 죽도록 달리는 배우들, 그들의 동선이 만들어내는 이미지, 그 이미지 위로 공포스럽게, 혹은 은밀하고 잔인하게 쏟아져 내려오는 타악기의 소리가 모두 모여서 ‘죽도록 달린다’만의 공감각적 이미지를 완성하는 것이다. 관객들은 이 속도의 도가니 속으로 흡수되었다가 내뱉어지면서 정서와 감각의 리듬을 만끽할 수 있다.

독특한 감상을 전해준 서재형의 이 연극은 지난해 초연된 이후 문예진흥원으로부터 주목받을만한 작품으로 선정돼 올해 리바이벌되고 있는 것이다. 실험극이 자칫 범하기 쉬운 생경함이나 작위성을 색채와 움직임, 그리고 소리에 대한 타고난 감각으로 잘 소화해낸 이 연극에 한가지 아쉬운 점을 덧붙인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결말을 내기 위해 이야기성이 강화된다는 것. 인물들의 운명이 결정되면서 형식의 안정감이 다소 흩어지는 것은 앞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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