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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은 물에 들기 전 무릎을 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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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원
  • 승인 2021.06.25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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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지음 | 책나물 | 184쪽

 

편집자 딸이 만든 엄마의 첫 책! 

엄마, 아줌마, 혹은 이름 없는 여성… 

이제는 ‘시인’이라는 호칭을 스스로의 이름 앞에 붙여보는 

한 사람의 삶이 오롯이 담긴 첫 시집

 

오래전부터 엄마는 문학소녀였고, 시를 써왔어요. 엄마에게 ‘시’라는 존재가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해주는 신앙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엄마의 시를 책으로 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는 꽤 오래되었어요. 편집자라는 직업을 알기 전부터 생각했지요.

그럼에도 막상 편집자가 되고 나서 수많은 책을 만들면서도 정작 엄마의 책을 만들지는 못했어요. 딸이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동안 엄마는 언제나처럼 시 쓰기를 계속했지요. 여러 크고 작은 백일장에서 수상하고, 신춘문예 최종심에 오르기도 여러 번이었어요. 2020년 드디어 「숲의 잠상」으로 “자신만의 어법으로 어머니 대지의 숭고한 슬픔을 처연하게 노래하고 있다.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 뿌리의 표정’까지도 살펴보는 화자의 시선이 믿음직했다.”는 평을 받으며 직지신인문학상을 수상해 등단을 했어요.

‘더는 미룰 수 없다, 지금이다.’ 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한 권 한 권 정성스럽게 만들고 싶다!’ 하는 마음이 겹쳐져 저는 1인출판사 ‘책나물’을 시작했고, 첫 책으로 이렇게 엄마의 시집을 출간합니다. 1인출판사 책나물의 시작, 김정숙이라는 한 시인의 첫 발걸음을 함께해줄 독자님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이번 시집에 수록된 작품은 모두 87편으로 기존의 다른 시집들에 비해 많은 편입니다. 수십 년 세월 동안 쓰인 수많은 시들 중에서 엄선해 저마다의 색깔에 맞춰 구성하다 보니 많은 시들을 선보이게 되었네요.

시집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성으로서의 삶이 묻어나는 시들을 볼 수 있는 ‘1부. 단단한 어둠을 날마다 긁었다’, 어린 시절과 부모에 대한 기억을 담아낸 ‘2부. 햇볕바라기하며 발돋움하던 시절’, 자연을 소재로 한 시들을 모은 ‘3부. 나무의 발등 아래 내 마음도 한 줌’, 자연 넘어 사람과 세상으로 시선이 향한 ‘4부. 내가 한낮일 때 당신은 저녁이었지요’, 마지막 ‘5부. 얼룩도 시가 될까요, 물었다’에서는 시인으로서의 마음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습니다.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시에 매달리는지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엄마 역시 제가 어떤 마음으로 무엇에 매달리며 살아가는지 알지 못했을 테죠. 이 시집을 편집하면서 엄마와 딸은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었어요. 엄마의 시에는 엄마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시장 좌판에서 물건을 파는 노모,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존재, 수십 년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하고 있는 남편과의 관계, 딸들에 대한 사랑, 고단한 삶의 힘겨움, 자연이 주는 위로, 시 쓰기의 즐거움과 괴로움 등이 녹아 있는 겁니다. 그리하여 이 책의 끝에 이르러서는 ‘엄마’가 아니라 ‘김정숙’이라는 이름으로 서 있는 한 시인의 잔잔하고도 단단한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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