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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유목인: 뉴욕의 문화지리학
도시의 유목인: 뉴욕의 문화지리학
  • 김재호
  • 승인 2021.06.24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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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주 지음 | 도서출판 동인 | 332쪽

지리비평으로 만나는 뉴욕과 유목인

뉴욕은 매력적인 도시다.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도시, 패션의 도시, 예술의 도시, 쇼핑의 도시, 화려한 유흥의 도시답게, 뉴욕은 수없이 많은 문학․문화 텍스트의 배경이 되었다. 무엇보다 뉴욕이 매력적인 이유는, 이민의 나라 미국에서 오랫동안 관문 역할을 해왔던 도시답게 다양한 인종․종교․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섞여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한 도시에 “섞여” 산다고 해서 그들이 진정 “섞여” 지내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소위 “동네”라고 하는 생활권이 계급과 인종의 선을 따라 분포해있고,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지척에 살면서도 동네 사이에 보이지 않는 행동반경의 경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이 도덕적 결함이 되는 사회에서, 굳이 불편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부동산 가격이 알아서 “두 개의 도시”를 분리․통제한다. 이 책은 뉴욕, 맨해튼에서 이 “두 개의 도시”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 경계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 와중에 거주취약계층의 사람들이 어디로 어떻게 움직여 갔는지, 그것이 문학과 문화 텍스트를 경유해 어떻게 실재와 상상의 지형이 서로를 바꾸어 가는지에 주목한다.

저자는 지리비평이라 부르는 문학 연구와 문화지리학의 학제간적 접근을 통해 지도를 통해서만은 볼 수 없는 욕망의 궤적을 따라 뉴욕과 그 교외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이 책은 이미 나있는 길로 갈 수 없고 사회가 정한 규칙대로 살 수 없어서 머물면 안 되는 장소에 머무는 사람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며 가야 하는 사람들, 사회와 법과 제도로부터 때로는 도망치고 때로는 맞서 싸우며 자기의 장소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들을 “유목인”이라 부른다. 자유롭게 들판을 떠도는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이미지와는 아무 상관없는 이 “유목인”들은 돈 없이는 즉각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자본주의 도시 뉴욕에서 제 한 몸 누일 자리를 찾기 위해, 생존을 위해,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길을 찾는다. 이들의 흔적을 좇아 도시와 유목, 존재와 환대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는 것이 이 책의 취지라고 할 수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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