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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소용돌이 발언
[대학정론]소용돌이 발언
  • 논설위원
  • 승인 2001.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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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17 13:55:17


김대중 대통령은 7일 “우리 대학 교육이 너무 낙후돼 있다”면서 “실력 없는 교수는 퇴출돼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돼 교수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김 대통령은 한완상 교육부총리를 비롯한 교육 관계 장관들과의 간담회에서 “논문 하나도 국제 권위 잡지에 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10년, 20년 전에 만든 노트 가지고 (강의를) 해나가는 교육하는 일이 계속되는데 어떻게 우리 교육이 발전하겠는가”고 비판하면서 “교수가 실력이 없으니까 학생 눈치나 보고 학점을 적당히 준다. 그러니까 학생들도 학점을 적당히 따는데, 실력없는 학생의 졸업을 어렵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현재 우리 대학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의 일단을 지적하면서 학벌과 학력 위주의 사회 풍토를 실력 위주의 사회 풍토로 바꾸어야 한다는 뜻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같은 대통령의 진의가 자칫 대학교육의 병폐가 무능한 대학교수 때문이라는 일방적인 매도로 곡해되는 사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실력 없는 교수 퇴출해야”라는 신문 기사의 자극적인 표제가 일반 국민들에게는 대학교수들의 대다수는 낡은 강의 노트나 읽으면서 학생 눈치나 보는, 실력 없고 소신 없는 자들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책과 씨름하며 강단을 묵묵히 지키며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는 교수들이 실제로는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몇해 전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이 촌지 받는 교사들을 교단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다음 초중등 학교의 교육 현장이 황폐화되고 공교육의 기반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된 전례를 상기하면, 이번 대통령의 발언이 대학 교육의 현장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가장 진보적이고 개혁적이라는 장관이 교육 현장의 부조리를 척결하겠다는 ‘순수한’ 의도에서 한 발언이 결과적으로 양식 있는 교사들에게 좌절감을 안기고 집단적인 퇴진운동까지 촉발시킨 것을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무능한 교수, 게으른 대학생은 분명 대학 사회에서 몰아내야 할 병폐지만 그러한 병폐를 치유하는 방법은 무능한 교수, 게으른 대학생을 골라 퇴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실력 있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대학사회의 분위기를 주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흙탕물을 정화하려면 흙먼지를 걸러내기보다는 맑은 물이 계속 흘러들도록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대학가에서 실력 있고 양심적인 교수들이 잇달아 재임용에서 탈락되는 사태야말로 정말 대학교육의 발전을 저해하는 병폐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대통령의 발언을 빌미 삼아 부패·족벌 사학에서 실력 있고 양심적인 교수들을 무능교수로 몰아 퇴출시킨다면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교육개혁의 진의와는 상관없이 대학가의 병폐를 치유하기보다는 오히려 고질적인 병폐를 악화시킬 지도 모른다.
김 대통령의 교육개혁 의지에 흔쾌하게 박수를 보내기보다는 부작용과 역작용에 대한 우려가 앞서는 것 자체가 우리 대학가의 현실임을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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