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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각미록
대의각미록
  • 이지원
  • 승인 2021.06.25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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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정제 지음 | 이형준, 최동철, 박윤미, 김준현 옮김 | b | 478쪽

청 왕조 정통성을 위한 옹정제의 사상투쟁

 

국내에서도 많은 연구의 대상이었고 학설도 다양했던 『대의각미록』이 도서출판 b에서 번역되어 나왔다. 『대의각미록』은 황제와 죄인 사이의 유례없는 대화 기록이 본격적으로 취합되어 만들어진 책이다. 옹정제는 이 책을 지어 한인의 배타적 화이관 해석에 이데올로기 전쟁을 걸고, 이를 통해 왕조의 정통성을 확립하려 하는 한편 민간에 퍼진 황실의 소문을 논박해 자신의 집권의 정당성을 드러내고 있는 책이다. 

옹정제가 『대의각미록』을 쓰게 된 직접적 배경은 증정의 역모 시도다. 말이 역모지 불우한 한인 서생의 해프닝이라고 할 수도 있는 사건이다. 증정 사건의 첫 보고를 받은 옹정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계속된 보고를 통해 주범인 증정과 장희 등이 절강성 학자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 역서에 담긴 정권과 자신에 대한 비난이 알려지지 않은 자료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태에 엄중히 대응하기 시작한다. 옹정제는 이 사건을 “한번 기묘하게 처리해보겠다(一番奇料理)”며, 이 사건과 관련된 일체 문제에 대해, 자신이 상유를 내려 하나하나 신문하고 때로 논박하며 죄인의 생각을 듣는 과정을 국가 전체에 낱낱이 공개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 최종 결과물이 『대의각미록』이다. 

일개 산골 서생인 증정이 군 실권자 악종기에게 편지를 보내 역모를 권하다가 발각된다. 증정이 악종기에게 편지를 보내겠다는 망상을 느닷없이 실행하기까지 역모를 위한 어떠한 실제적인 일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호남에 파견된 심문관들이 증정의 역모 사건의 내역을 조목조목 취조했을 때 증정은 무슨 소리인지 모를 모호한 말만 들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증정은 피해의식과 과대망상을 오가며 약간의 지식과 여러 부정확한 정보를 결합해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를 그려낸 자에 불과했다. 이 사건은 신속히 불경한 시도를 일벌백계하고 종결하면 간단하게 끝날 일이었다. 그럼에도 증정 사건은 1728년 편지를 악종기에 전한 장희의 체포부터 증정의 사상적 배경으로 지목된 여유량의 최종 처분이 내려진 1733년까지 무려 4년 이상을 끌고 간다. 그 사이 옹정제는 유교적 보편주의에 입각한 천명의 해석과 한인 지식인층에 일반화된 화이관의 반박, 청의 집권의 정당성, 사대부 도통론과의 대결을 준비하여 『대의각미록』을 만든다. 

옹정제에게 증정 사건은 절강학자들의 청조 ‘정통성’에 대한 도전에서 비롯된 문제로 인식되었다. 군 실권자 악종기에게 접근하려 한 증정의 시도는 청조의 한인 권력자와 한인 유생의 결합이란 점에서 연갱요-왕경기 사건의 반복이었고, 더욱이 이 사안은 화이 구분에 대한 이념적(경전적) 해석에 근거한 도전이었다. 또한 황실의 가족관계에 근거한 현 황제의 집권 정당성에 대한 비난(예컨대 선황 강희제를 시해했다는 등)은 그간 민간에 횡행했던 청조에 대한 막연한 유언비어들과는 성격이 달랐다. 이참에 옹정제는 증정 사건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부정적인 소문을 정리하고 청 왕조 집권의 정당성을 드러내는 데 이용한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옹정제의 아들 건륭제는 전국에 배포된 『대의각미록』을 회수하고 금서로 지정한다. 

『대의각미록』은 1729년 증정 사안에 관한 황제의 상유와 항혁록을 통해 증정을 신문하는 데 이용했던 문서, 그리고 증정의 진술들로 이루어져 있다. 총 4권이고 판각본으로 509쪽에 달하는 분량으로 출간되었다. 1730년 전국 각 지역에 배포되면서 지역 관학에서 정기적으로 선강이 이루어졌다. 

『대의각미록』 1권은 종족적, 지역적 차별을 담은 화이관의 부조리를 지적하고, 여유량이 상징하는 한인의 사상을 반박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책 전체의 총론에 해당한다. 2권은 1729년 4월 중순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증정의 『지신록』, 『지기록』 등에 대한 옹정제의 질문이 주요 내용이다. 제3권은 형부시랑 항혁록과 부도통 해란이 증정에게 옹정제와 관련된 유언비어의 출처를 추가 신문하는 내용, 황제의 교화 과정, 증정에 대한 처결을 내각에 묻고, 옹정제가 사면을 관철시키는 과정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제4권은 크게 여유량의 사상에 대한 비판과 증정의 회개라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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