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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페미니즘의 시간성 분석
디지털 페미니즘의 시간성 분석
  • 김수아
  • 승인 2021.06.24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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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틀어보기_『제4물결 페미니즘: 정동적 시간성』 프루던스 체임벌린 지음 | 김은주 외 3인 옮김 | 에디투스 | 320쪽

서구 중심적 페미니즘이라는 한계 인식하고
한국적 맥락에서 여성 주체들은 어떤 반복·차이 경험하는지 질문하다

사실 제3물결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아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문을 던질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저자 체임벌린 역시 물결의 은유가 가질 수 있는 한계를 다루면서 물결의 은유가 현세대가 차별화를 위해서 기존의 운동이나 관점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용되는 것을 우려한다. 그래서 저자는 만약 제4물결 페미니즘의 선언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새로운 에너지를 받아들이면서도 고정되지 않은 불확실함과 개방성에 열려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물결은 과거의 것을 대체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모두 연결하는 시간성을 드러내려는 은유이다. 

미투 운동으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났듯, 반응 속도와 실행 속도가 놀라울 만큼 증가했으며, 빠른 시간 내에 전지구적 연대가 가능해지는 등 최근의 페미니즘 운동은 과거와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디지털 페미니즘이라고도 통칭되는 최근의 흐름은 디지털 미디어의 특성을 활용하는 적극적 행동주의의 모습을 강조한다. 그런데 체임벌린은 이와 함께, 위험의 일상화라는 차원 역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한 반발심인 ‘백래시(backlash)’ 역시 인터넷을 통해 빠르고, 광범위하게 가능해진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손가락 기호를 둘러싼 일련의 논란은 논란의 시작점에서부터 해당 기업이나 기관이 반응하기까지의 속도가 그 어떤 사건에서보다 빠르게 나타난 바 있다. 이처럼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 역시 인터넷은 빠르고 거대하게 묶어낸다. 

디지털 미디어로 인한 적극적 행동주의

또한 신자유주의 시대 페미니즘이 능력주의에 기반을 두고 개인의 역량을 강조하는 가운데  불평등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를 놓치는 문제가 존속하고 있음도 짚어야 한다. 전지구적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백인 중심의 목소리들이 더 많이 연결된다. 그러니 과제는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가에 관련된 것이고, 언제나 반복되어온 평등과 차이에 대한 논의를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 나가면서 해결책을 찾아가는 방법들에 대한 것이다. 체임벌린은 미래에 대해서 성급하게 낙관하지 않지만 동시에 비관적이지도 않다. 소셜 미디어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행동주의가 그저 클릭으로 대체되는 문제를 우려하면서 교차성의 문제가 여전히 가장 큰 쟁점임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왜 지금 페미니즘이 가시화되고 있는지, 급진적인 정동의 움직임들이 주체들을 연결하는 과정에 무엇이 있는지를 들여다보아야 함을 주장한다. 

요컨대 제4물결 페미니즘의 주장은 디지털 기술이라는 환경적 조건 속에서 시간성의 문제를 통해 새로이 출현하는 운동 방식과 주체들의 다양성을 포착하려고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의의를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한국의 맥락에서도 ‘제4물결’이라고 부르는 것은 괜찮은 것일까 하는 질문은 남는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페미니즘의 역사가 서구 중심적이라는 한계를 인식하고 우리 한국의 페미니즘을 연대기적으로, 그러나 비선형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면 우리 사회의 맥락에서 여성 주체들의 움직임이 어떤 반복과 차이 속에 놓여있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인터넷의 가장 큰 가능성 중 하나가 아카이빙에 있다면,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모으고 차이의 역동을 드러낼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김수아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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