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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학계흐름② ― ‘이슬람부흥운동’
해외학계흐름② ― ‘이슬람부흥운동’
  • 한양대·중동사
  • 승인 2001.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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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18 14:25:31
/ 한양대·중동사

20세기 내내 지속된 서구와 이슬람의 화해할 수 없는 가치관의 충돌은 이슬람 지식인들에게 말할 수 없는 좌절과 고뇌를 안겨주었다. 수많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랍 지성계를 압도하는 오늘날의 화두는 이슬람부흥운동이다. 그러나 그 방향은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실용적인 노선으로 접어들었다.

옛영광, 공격적 근대화

19세기말 이후 이슬람 부흥운동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에 대항한 총체운동으로 반외세, 반세속을 공통분모로 이슬람의 정통성과 이슬람권을 보호·발전시키자는 근본 취지를 담고 있었다. 20세기 이슬람 개혁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으며, 후대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이는 이란 출신의 자말루딘 아프가니였다. 그는 이슬람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유럽의 새로운 문물을 수용하는 이론적 당위성을 정립한 인물이었다.

그의 제자 무함마드 압두는 아프가니와는 달리 이슬람 신학의 영역에 이성을 끌어들여 이슬람과 과학을 자유롭게 접목했다. 압두의 사상에 영향을 미친 마울라나 마우두디는 세속정권에 대한 신의 주권을 강조하면서, 이슬람 급진주의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마우두디는 교육을 통해 수많은 지적엘리트를 양성하고, 지성실천이라는 과제에 신선한 지적 충격을 주었다.

반면, 1928년 이집트의 하산 알 반나는 이슬람식 생활양식에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이론을 적용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그 대안으로 그는 도덕과 윤리의 틀로 이슬람 정신을 강화하기 위해 ‘무슬림형제단’ 운동을 시작했다.

이처럼 전통적 이슬람 부흥론자들은 서구화와 근대화를 명확히 구분하면서 근대화를 전면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근대적 발전들이 종교의 소외화, 세속화, 전통적 가족개념의 몰락, 성도덕의 문란과 같은 현상을 동반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특히 신의 섭리보다 인간의 이성이 우위에 서는 이념적 혼란에 대해서는 단호한 반대입장을 취한다.

이 시기의 행동철학은 서구의 도전을 회피하여 과거 전통이나 영광 속으로 숨어드는 것도, 상대의 문물을 모방하여 소화하는 것도 아닌 강력하고도 공격적인 자기 확신을 고취시키는 것이었다.

신원리주의라 불리는 이슬람부흥운동이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 것은 1990년대였다. 소련연방의 붕괴와 걸프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의 이슬람권 지배력 강화 등이 기폭제가 되었다. 무너진 사회주의의 축을 이슬람이 대신하리라는 기대와 함께, 노골화된 서구의 침략에 대한 이슬람세계의 단결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슬람 부흥운동은 이슬람식 전통과 현대화 사이의 모순과 갈등을 합리적이고 조화롭게 극복하려는 지적고뇌의 표현이고,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나아가 서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갈등보다는 협력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함께 확산된다.

이 시점에 등장한 학자들의 특징은 전통보수세력과 별도로 이슬람 좌파적 성향을 띠고 있다. 아델 후세인 압델 아지즈, 알 비스리, 무니르 세피크 등이 대표적이다. 이슬람 좌파로 대학생과 젊은 지성계에 커다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하산 한피는 철학과 신학과 혁명의 조화로운 통일을 통해 이슬람의 변혁을 지향했다. 이슬람의 해방 신학과 라틴 아메리카식 신학의 토착화를 강조함으로써 맑시스트와 좌파 지식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파라즈 푸다흐는 시민사회의 성숙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이슬람 법의 전면적인 철폐를 주장했다.

후세인 아민은 폭력성향을 띤 급진적 이슬람운동을 피에 굶주린 야만적인 행동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그들이 이슬람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상황의 근절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그는 개방적이고 서구화된 이슬람 모델을 주창하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혁신적인 코란의 재해석 기치를 들고 나온 학자들도 없지 않았다. 샤흐루르와 아부 자이드가 대표적이다. 샤흐루르는 한피의 해방신학의 입장보다 훨씬 급진적인 코란의 재해석을 꾀했다. 아부 자이드도 새로운 방법론과 문학비평의 이론틀을 가지고 코란을 해석해 나갔다. 그들은 전통보수주의자들의 여성관에 일침을 가했고, 이자 없는 이슬람은행제도와 경제운용 방식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당연히 보수진영으로부터 극렬한 비판을 받았지만, 이집트와 튀니지 등지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가는 추세에 있다.

서구 오리엔탈리스트는 이슬람의 지성이 이제는 중세의 환상을 벗고, 서구 지성의 품으로 돌아와주기를 바란다. 서구와 이슬람이 극단적으로 대결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이슬람 지성계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서구와 이슬람은 특히 19세기말에서 20세기에 이르는 동안 서로가 극단적인 소모적 논쟁을 즐겨왔으며, 서로 다른 패러다임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지적 적대감만 키워왔던 경향이 있었다. 그러는 과정에 역설적으로 서로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되었고, 이제 두 세계의 간격이 무척 좁혀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에 서구이해 깊어진 역설

더 이상 서구와 이슬람 세계는 별개가 아니다. 이슬람 세계는 좋든 싫든 서구의 제도를 받아들였고, 서구의 앞선 과학과 기술에 우선 순위를 두었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체제를 경험했고,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서구식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다. 문제는 아직도 이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지적 대안이 정리되지 않아 이슬람 개발도상국들은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이미 전통과 문화로 굳어진 이슬람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인간의 영적 측면을 깡그리 폐기처분하지 않으면서도 서구식 발전모델을 가질 수는 없을까? 이것이 오늘날 아랍 지성계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의문이고 무거운 과제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이슬람의 가치정립을 힘겹게 모색하고 있다. 이것이 20세기초부터 지속돼 왔던 이슬람 부흥운동의 새로운 방향성으로 연결되고 있다. 지금 전 이슬람세계에 번지고 있는 지적혁명의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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