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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일본지성의 동향
[해외통신] 일본지성의 동향
  • 박홍규/고베대 대학원
  • 승인 2001.05.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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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16 09:01:47

박홍규/고베대 대학원·법학

최근 한국에서는 일본의 일본사 교과서 문제에 관심이 집중돼 있으나 일본은 그렇지 않다. 신문, 잡지, TV, 대학, 시민 차원 등에서도 별 논의가 없다. 논의가 있어도 극히 일부이고 그 논점도 다르다. 예컨대 대체로 우익적인 ‘문예춘추’는 일본사 교과서의 경우 다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중도적인 ‘중앙공론’도 같은 결론에 이르면서도 일본사라고 하는 통사 자체와 교과서 검정제도가 국민·국가의 절대화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한 두 편의 글에 그치고 있고 그밖에는 짧은 논단조차 읽기 어렵다.

지금 한국에서는 우익적인 일본사 교과서의 재수정을 적극 요구하고 있으나 검정 절차가 끝난 지금 그것이 가능할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일선 교사들은 대체로 그 교과서를 환영하지 않고 특히 교원노조에 참여하고 있는 교사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교사들이 교과서를 선택할 수 없고 교육위원회가 결정하므로 우익적 교과서는 다수 채택될 가능성도 있다. 교사들의 희망을 반영하여 채택한다는 원칙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국가의 실질적 강요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우익 교과서 문제는 일본 우파의 요구 중 하나로 불거졌고 그런 요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개헌이다. 일본 우파의 전통은 역사적으로 뿌리깊은 것이기에 여기서 그 모두를 다룰 수는 없으나 적어도 일본제국주의-식민지침략주의의 형성과 직결되어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의 우파는 자민당은 물론 보수당, 자유당, 공명당 그리고 민주당까지 포함된다. 최근 민주당 당수가 한국을 방문하여 자신은 교과서 문제나 개헌 문제에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주장했으나 그는 사실 개헌론을 주장하는 우파의 하나일 뿐이다. 개헌에 명확하게 반대하는 정당은 공산당과 사민당뿐이나, 공산당 역시 비상시의 자위대 활용론을 주장하고 있고, 사민당의 경우 그 전신인 사회당이 안보와 자위대를 용인한 바 있다. 따라서 순수하게 개헌에 반대하는 입장은 보기 어렵다.

소위 지성이라고 할만한 차원에서 개헌 문제를 비롯하여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입장이 적지는 않으나 우익과 비교하면 그 영향력은 확실히 적다. 더구나 지금 논의되고 있는 개헌 논의 중 수상공선제나 새로운 인권의 명기 등은 사실상 헌법 제9조의 군대 보유의 명기를 위한 곁다리에 불과하다. 이는 현재 명백하게 위헌인 군사정책을 합헌화하자는 것이다.

군사정책의 합헌화는 과거 군사침략의 미화와 직결되어 있다. 예컨대 전 일본 수상이었던 나카소네는 소위 ‘위안부’를 스스로 만들었음을 자랑하는 군인 출신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처음으로 공식 참배하고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와 수상공선론을 주장해왔다. 지금 일본 수상인 고이즈미도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우익의 대변자이다. 그와 경쟁하여 실패한 전 수상 하시모토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경제인을 대표하는 경단련 회장 이마이도 다국적기업을 위해 자위대를 해외로 파병하자고 주장한다. 야당이라는 민주당 대표 하토야마도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일본 지성은 그로부터 얼마나 먼 것일까.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일본 헌법의 최대 문제는 천황제이지만 개헌론자도 호헌논자도 그 점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고 있지 않다. 천황의 전쟁책임 문제 이전에 국민주권주의와 인권주의를 표방하는 헌법에 주권의식을 마비시키고 세습제로 차별을 합리화하는 현행 제도 자체가 민주주의에 명백하게 모순되는데도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 점은 신비스럽기도 하다. 어떤 교수는 그것을 일본인이 절대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일본연구자가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 일본을 우리 대학에서도 본격적으로 연구될 필요가 있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일본은 있다, 없다는 식의 논의는 참으로 위험하고 무용하기도 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귀국 즉시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에서 ‘일본법’ 강좌 개설을 요청할 계획이다. 또한 나름으로 ‘위안부’ 문제를 정신사 내지 법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필자가 아는 한 그런 연구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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