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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경제
모두를 위한 경제
  • 이지원
  • 승인 2021.06.17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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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저리 켈리, 테드 하워드 지음 | 홍기빈 옮김 | 학고재 | 300쪽

기업의 사회적 임무를 기반으로 한 경영 설계 전문가로 『주식회사 이데올로기』,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를 쓴 마저리 켈리가, 지역 경제 모델 전문가 테드 하워드와 함께 자본주의의 원칙을 바꾸는 ‘희망’의 로드맵을 펼쳐 보인다. 두 저자는 지구와 문명이 어떤 운명의 길을 걸을지 걱정하는 이들을 위해 『모두를 위한 경제』를 썼다. 지금 막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생생하게 나누기 위해서다. 

 

1% 대 99%, 우리 이야기는 어디에 있을까 

언론의 정치, 경제 기사에서 가장 친근하고 가까운 인물이 누구일까? 익숙하기로 따지자면 이재용, 일론 머스크를 꼽을 만하다. 실상 그들이 사는 곳은 외계나 다름없을 만큼 머나먼 별천지임에도 그렇다. 우리는 기껏해야 그들의 장난질에 놀아나는 개미 주주일 뿐이고, 2년마다 싼 방을 찾아 전전하는 신세에,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에 내몰리는 노동자들이다. 우리에게 간절한 것은 남의 손에 휘둘리지 않는 일자리, 볕 잘 들고 수압 좋은 집, 한탕 돈벼락이 아니라 적더라도 차곡차곡 저축할 수 있는 약간의 여윳돈 정도다. 남 해치는 일 없이, 이왕이면 서로 온기를 나눠가면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더불어. 그런 우리가 앞장서서 일하고, 힘을 모으고, 주인이 되는 방법은 없을까? 

 

정치는 오래전에 민주화되었지만 경제는 한 번도 민주화된 적이 없다 

모두가 간절히 바라면서도 실현되리라는 기대는 엄두도 못 내는 것이 있다. 지구 환경을 해치지 않는 한계 안에서 모두가 고루 잘사는 것이다. 거창한 이야기일까? 위기가 닥치면, 그러니까 지금껏 살아온 세상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순간이 오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이해에도 균열이 간다. 이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내 자리가 어디인지를 설명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공중에 붕 뜬 채로 휩쓸리다 마침내 모든 것이 모호해지는 순간, 공포가 치고 들어온다. 불안과 두려움은 우리끼리 미워하게 만들고 등지게 만든다. 손잡고 머리 맞대 살 길을 의논해야 할 사람들이 비빌 언덕 잃고 흩어져 제풀에 사그라들고 마는 것이다. 익숙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의지와 희망을 갖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똑같은 세상에서 똑같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지만 “이건 아니야!”라고 외치며 우리 안의 균열을 메우는 사람들. 관계 맺고 살아가는 동료, 이웃, 마을, 지역의 안녕이 확보될 때 비로소 나의 안녕이 보장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1%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배척하지 않고 내가 발 디딘 곳을 윤택하게 해주는 경제적 실험에 나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다. 『모두를 위한 경제』를 만들어가는 보석 같은 이들이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물결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의 공동 자산과 모두의 안녕을 현명하게 돌보는 것이 경제의 목표이자, 모든 경제 제도와 경제 활동의 목표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만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좋은 사회란 한 손에는 정치 민주주의를, 다른 한 손에는 경제 민주주의를 놓는 것이다. 

마저리 켈리와 테드 하워드는 협동조합 소유의 일터, 정의에 기초해 정책을 수립하기로 선언한 도시, 윤리적 금융가와 윤리적 투자자, 위기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터전을 구축 중인 공동체와 함께 움직인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람 대접 못 받고 뒷전으로 밀려났던 사람들이 체념과 굴종 대신 ‘우리 모두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보겠다고 분연히 일어섰다. 왕권신수설은 사라졌고, 아파르트헤이트도 무너졌다. 미투 운동으로 남성 권력자들이 수없이 추락하고 있다. 성별 편향을 인식한 여성들이 정당성의 힘으로 단합했듯, 경제 행위의 주체들이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이들은 가장 낮은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위를 향해 움직이고, 중앙의 통제 없이 서로 협력해 조정하며, 시장이 장악한 경제 구조를 민주적으로 만들어 권력을 이동시키고 있다. 

 

보통 사람들의, 보통 사람들에 의한, 보통 사람들을 위한 경제로 가는 길 

앵커 기관과의 협력, 임팩트 투자,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경제 개발, 지역 자산 구축, 직원 소유제, B콥, 공공 은행 등 구체적인 행동으로 공동체의 부를 일구는 일개미들의 실험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건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 여기저기서 따로따로, 동시다발로 길을 닦고 있을 뿐이다. 마저리 켈리와 테드 하워드는 제각각 분투 중인 풀뿌리 개미들을 도와 새로운 지역 경제 구조를 설계하면서, 뿔뿔이 흩어진 조직들을 아우르는 키워드를 찾아냈다. ‘정당성’과 ‘상상력’이 전제된 가운데, 각각의 사례를 아우르는 일관된 가치들이 있었다. 

두 사람은 이 일곱 가지 원칙이 대기업 자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모두를 살리는’ 패러다임임을 확인했다. 그 모형이라 할 ‘클리블랜드-프레스턴 모델’은 물론 완성형이 아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시장 논리로 돌아가는 돈의 흐름을 조금 틂으로써 지역 경제가 되살아나고, 그 효과가 미국에서 영국으로 전해져 고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클리블랜드와 프레스턴 사람들은 이제 지역의 실핏줄을 타고 흐르는 돈이 누구의 주머니로 가는지 잘 안다. 앞장서서 일하고, 힘을 모으고, 끝내 내가 주인이 되고 주인공이 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전혀 다른 모델, 전혀 다른 접근법, 전혀 다른 이념들 

마저리 켈리와 테드 하워드가 하는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상황을 명확하게 보게 만드는 것이다. 이 시점에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고, 그런 일들을 통해 시스템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모두를 위한 경제』는 시민 활동가뿐만 아니라, 보수건 진보건 더 이상 현재 상태가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들을 위한 글이다. 각종 재단, 비영리 병원, 대학, 정부와 비영리 경제 연구소, 임팩트 투자 기관, 진보적인 노동자 소유 기업, 노동조합, 지자체장, 시민 단체 리더 들에게 유용한 안내서다. 현장 중심의 실용적인 자료로 정치학자와 경제학자에게도 유익한 정보가 많다. 

이 책에서 얻는 교훈은 모든 나라에 적용된다. 부자에게 돈을 몰아주고, 공공 영역을 칼질해 팔아넘기고, 금융권의 권력을 강화하는 경제 시스템은 만국 공통인 데다, 장차 이를 대체할 민주적 경제도 마찬가지로 각지에서 움트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를 위한 경제』가 소개하는 작업들은 영웅이나 예언자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지역의 경계를 뛰어넘어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준 사례들을 참고 삼아 이제 우리가 움직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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