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4:00 (금)
우리대학 명강의: 신복룡 건국대 교수(정치외교학)의 ‘한국 분단사’
우리대학 명강의: 신복룡 건국대 교수(정치외교학)의 ‘한국 분단사’
  • 김철현
  • 승인 2005.01.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로운 사실과 학자적 식견에 큰 호응…“교수 열정에 뭉클”

 

김철현 (건국대·행정학 4학년)

수강신청 기간이 되면 학생들은 수업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분주해진다. 모든 학생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학생들이 ‘편하게’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는 과목을 찾아 헤매인다. 취업을 위해서는 학점관리가 가장 중요한 일이니 안타깝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결코 쉬운 수업이 아니면서도, 그렇다고 성적을 잘 주지도 않는 강좌인데도 수강 신청 기간이면 제일 먼저 정원이 채워지는 수업이 있다. 바로 신복룡 교수님의 ‘한국 분단사’수업이 그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수 년전 신복룡 교수님의 ‘한국 정치사’ 수업을 처음 들었을 때 만족스러운 성적을 받지 못했었지만, 복학 첫 학기 수강과목을 선택할 때 주저없이 신청한 과목이 바로 신복룡 교수님 수업이었다.

평범해 보이는 수업에 학생들이 몰리는 이유

신복룡 교수님의 수업은 다른 교수님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칠판과 분필이 수업에 필요한 기자재의 전부일 정도로 전통적인 강의식 방법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하지만 강의실은 요즘 대학 강의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배움의 열기로 가득 차 있다. 출석을 거의 확인하지 않지만 강의실은 늘 빈 자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수업에 조금 늦는 날이면 수강생 외에도 청강생들로 가득 찬 강의실은 빈 자리를 찾기 힘들어 곤혹스러울 때가 있을 정도다. 또 학생들은 교수님의 강의를 한 자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매 수업마다 집중한다.

정년을 앞둔 노교수의 강의, 취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강의 주제, 출석을 확인하지 않는 자유스러운 분위기. 이런 사실들로만 생각해보면 많은 학생들이 이렇게 진지하게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왜 그럴까.

신복룡 교수님의 높은 수업 참여도와 집중도의 비밀은 교수님의 ‘강의 내용에 묻어나는 식지 않은 열정’ 때문이다. 이는 첫 수업부터 확인할 수 있다. 수업 첫 시간, 교수님은 한국 분단사 연구가 활기를 띠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을 했다. 미국의 대학이나 연구소, 도서관 등에 보관되고 있는 수많은 1차 사료들을 국내 연구자들이 지치지 않는 집념으로 복사해 왔기 때문에 분단사 연구가 활성화될 수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신복룡 교수님 역시 수많은 1차 사료를 오랜 시간동안 복사했어야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한국 현대사, 그 중에서도 분단이라는 민족의 아픔을 재조명하고 복원한다는 학문적 목표로, 국내에서는 잘 보존되지 않고 있는 사료를 얻기 위해서 먼 이국땅에서 복사라는 단순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 열정을 첫 수업부터 느낄 수 있었다.

수업의 내용은 과연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만큼 한국의 분단에 대한 자세한 정황과 새로운 견해,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수많은 1차 사료들로 채워져 있었다. 강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이 평소 우리가 쉽게 알고 있던 내용들과 다른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해방 후 신탁 통치 논의 과정을 설명하시면서 찬탁과 반탁의 논리를 함부로 재단하고 규정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반탁이 우국이고 찬탁이 매국이었기 때문에 찬탁을 주장했던 당시 좌익을 매도해도 된다는 단순 논리를 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이 흔히 생각하듯 해방정국의 김구 선생의 활동이 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만한 것은 아니라는, 낯선 사실을 전해주기도 했다. 맹목적인 김구주의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신복룡 교수님이 어느 한 쪽으로 경도된 채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해방정국의 좌우갈등을 강의하실 때에는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실에 근거한 내용들만 설명한다. 판단의 몫은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넘긴 채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내용을 설명하면서도 단호하게 학자로서의 견해를 밝히는 것은 빼놓지 않는다.

교수 인생을 담은 강의에 학생 매료

이번 학기 강의 중 신복룡 교수님은 ‘대학교수의 강의는 그의 인생을 담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 때문인지 ‘한국 분단사’ 강좌 역시 그러한 철학이 깊이 느껴졌다. 학문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나누고자 하는 열의가 의자에 편한히 앉아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도 뭉클하게 다가왔다. 또 학생들은 학자로서의 전문적 식견에 매료됐다.

‘한국분단사’ 강의를 들을 때 가장 순수하게 공부하는 학생다움을 느꼈다. 또 역사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과학적 대안이 공존하는 대학다움을 느꼈다. 일주일에 세 시간, 1950년대 해방정국의 김구와 이승만, 박헌영과 여운형, 그리고 김일성을 만나볼 수 있는 ‘한국분단사’ 수업을 후배들에게 또 다시 추천하려고 한다.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