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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닭의 살이
[신년특집] 닭의 살이
  • 권오길 강원대
  • 승인 2004.12.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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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몸 속에는 시계가 있다

▲권오길 / 강원대 생명과학부 ©
막힘없이 흘러가는 물같은 세월을 어이하여 사람들은 토막 내서 올해는 무슨 해다, 오늘이 몇 월 며칠이다 따져드는 것일까. 제 나이도 모르고 마냥 살 수는 없는가. 새해는 닭의 해, 乙酉年이란다. 자기가 쓸려는 물건(꿩)이 없으면 아쉽지만 비슷한 것(닭)으로 대신 쓸 수밖에 없을 적에 ‘꿩 대신 닭’이라 한다. 아마도 여기선 꿩을 한 수 위로 본 모양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原種은 같았으나, 긴긴 세월 진화하면서 이 가지로는 꿩, 저 가지로는 닭으로 변한 것이다. 사람과 원숭이가 같은 조상에서 두 갈래로 나눠진 것이나 다름없다. 꿩은 원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가지고 있는 반면, 닭은 여러 다른 품종들로 바뀌어왔다. 개가 품종이 다양하듯이 말이다. 품종끼리는 교배가 되기에 같은 종인 것이다.  

 

뒤뜰이나 마당 구석에서 놀고 있는 닭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모습이 평화롭기 짝이 없다. 고개 우뚝 세운 수탉 한 마리가 몇 마리의 암놈을 거느리고 지내는 모습이 그렇다는 말이다. 위엄을 자랑하는 수탉놈은 가끔씩 두 날개를 탁탁 부딪치고선 목을 한껏 늘려서 한 곡조 뺀다. 그러다 암탉 곁에 가서는 날개 죽지 짝 벌려 한 다리로 세차게 차면서 빙그르르 암놈을 감고 돈다. 사랑의 표시다. 암놈들은 흙을 파헤치고는 그 안에 들어앉아 다리로 흙을 파 올려 전신에 뒤집어쓰고 있으니 흙 목욕이다. 아마도 그렇게 해서 몸에 기생충이 달라드는 것을 막는 모양이다.  

 

알 낳을 시간이 된 암놈은 꼬꼬 옹알이하면서 알자리 근방을 맴돈다. 둥우리에 날아오른다. 아연 긴장했던 수놈은 멀리 가지 않고 근방에서 서성거린다. 산실에 들어간 부인을 기다리는 심정일터. 한참이 지나면 암놈은 알을 낳고 꼬꾸댁꼭꼭 고함을 지르면서 날아 나온다. 장닭도 맞장구쳐서 목청을 올린다. “잘했다”는 뜻일 듯. 필자는 암놈의 똥구멍 뒤 구석에서 눈만 쏙 내놓고 알 낳기를 기다린다. 둥우리는 물론 짚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알 끝을 바닥에 살짝 대면서 쑥 힘을 줘 알을 낳기에 알이 깨지지 않는다. 공중에서 툭 떨어뜨린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 알이 스무남개 정도 모이면 알 낳기를 중지하고 알을 품게 된다. 이것은 우리 토종 씨암탉이야기다. 양계장 알내기 닭들은 돌연변이 종들이라서 먹이만 잘 주면 쉬지 않고 산란한다. 새끼를 배지 않은 젖소가 젖을 잇달아 쏟아내듯이 말이다. 그런데 ‘달걀’은 ‘닭의 알’이 준말이다. 계란이란 말보다 달걀이란 말을 쓰는 게 더 좋다.   

 

스무 하루를 품은 알에서 병아리가 깨어 나온다. 쪼르르 어미 따라 다니는 병아리떼. 갑자기 솔개가 덮치는 날에는 순식간에 어미품으로 달려 들어가 숨는다. 어미는 죽음을 무릅쓰고 방어한다. 언제나 긴장해 사납기 짝이 없는 어미 닭이다. 저녁때면 어리를 열어서 싸라기를 흩어줘 안으로 끌어들인다. 밤공기 추워지면 어느새 모두가 어미 가슴팍에서 고개만 내밀고 있으니, 놈들에게서 따스한 어머니 품을 그리게 된다. 이렇게 어미가슴에서 자란 병아리라야 나중에 새끼치송을 잘 한다. 사랑도 받아봐야 줄 줄 안다는 말이다.  

 

초저녁에 울어대는 장닭은 그냥 두지 않고 잡아먹는다. 재수 없단다. 새벽닭이 제 시간에 틀림없이 꼬꼬하고 홰를 치면서 운다. 어찌 녀석들이 잠을 자지 않고. 닭의 ‘몸속에 시계가 있어서’ 란다. 다시 말해서 ‘생물시계(biological clock)'라는 것이다. 

 

수탉은 정말 멋쟁이다. 커다란 놈이, 꼿꼿이 우뚝 서있는 벌건 볏에다 현란한 깃털의 배색, 기다란 꽁지깃이 무지개 꼴로 휘어진 것은 물론이고, 다리 아래 끝자락에 길고 끝이 예리한 싸움발톱이 멋을 북돋운다. 그놈도 머리는 ‘새대가리’라 커다란 거울을 제 앞에 놔둬보면 거울 속의 제 놈과 싸움질을 한다. 한양갔다 온 남편이 손거울을 사다 줬더니 부인이 그 속의 여인을 질투해 남편을 닦달한 것이나 뭐가 다를까마는.  

 

닭 가족처럼 화목한 올해가 됐으면 한다. 닭 소 보듯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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