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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부조리하지만 결국 치유하고 성장한다”
“슬프고 부조리하지만 결국 치유하고 성장한다”
  • 김재호
  • 승인 2021.06.16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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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문학과 영화로 인성을 디자인하다』 안영희 지음 | 계명대학교출판부 | 295쪽

 

예리한 작품 분석과 비교문학 관점 도드라진 책

대학생들과 토론하며 문학과 영화의 효용성을 드러내다

 

문학과 영화의 효용성은 무엇일까? 효용성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어감이 너무 직관적일 수 있다. 허나, 문학과 영화는 우리 삶을 반추하고 한 걸음 더 내딛게 한다. 하지만 이 설명도 조금 부족하다. 문학과 영화는 정말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계명대출판부에서 지난 2월 출간한 『문학과 영화로 인성을 디자인하다』는 문학과 영화의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실제 대학 현장에서 학생들과 토론하며 완성한 책이다. 저자는 안영희 계명대 교수(비교문학)다. 

서문에서 안 교수는 “대학생들이 스스로의 삶을 디자인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라며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주요 이슈들을 다루었기에 일반인들이 읽어도 삶을 디자인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비교와 경쟁에 치여하는 현대인들에게 문학과 영화는 현 사회를 직시하게 만들면서 자존감 회복, 용서와 치유, 공동체 윤리를 깨닫게 한다. 『문학과 영화로 인성을 디자인하다』에는 총 6편의 문학작품과 9편의 영화가 소개된다. 문학을 기반으로 한 영화도 섞여 있어 비교하며 읽기에 수월하다. 

『문학과 영화로 인성을 디자인하다』라는 제목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이 책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인성’이다. 인성은 다른 표현으로 사람의 무늬를 다루는 인문학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가족 이야기부터 역사와 사회문제, 페미니즘과 SF장르까지 다룬다. 인문학은 또 다른 이름으로 인간다움일 것이다. 

인성, 인문학, 인간다움을 관통하는 책

책의 제1부 ‘상처 치유와 자존감 회복’ 제3장에 등장하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2021.03.)은 기자도 영화로 봤다. 울컥하는 장면들이 몇몇 나온다. 영화는 일본판(히로키 류이치 감독, 2017)과 중국판(한 지에 감독, 2017)이 있다. 국내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가장 잘 읽히는 소설가 중 한 명이다. 공대 출신의 작가는 주로 범죄나 스릴러, 미스터리 소설들을 많이 썼다. 그런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는 안 교수가 단 부제처럼 ‘자존감 회복과 치유’를 다루는 판타지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2008년부터 2017년까지 국내 소설 부문 누적 판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보잘것없는 백수 3명이다. 빈집을 털다 도망치던 주인공들은 ‘나미야 잡화점’에 우연히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의 한 문틈에서 과거로부터 온 편지들을 받게 된다. 편지에는 각각의 애닲은 사연들이 담겨 있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고 진심 어린 답장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치유를 받는다. 아니, 답장 해주는 이들 또한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안 교수는 이 작품을 △시공간의 환상성과 기적의 재구성 △편지를 통한 기적과 치유 △판타지와 치유의 경계 허물기로 분석했다. 안 교수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환상성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현대의 삶을 사는 독자들에게 기존체제와 관념의 전복이라는 은밀한 욕망을 충족시켜주고 있다”고 평했다. 물론 “절망을 치유하는 희망의 도구로서 편지를 응용”하면서 말이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존감을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다

제3부 ‘성평등과 페미니즘, 그리고 공존’ 제2장은 조남주 소설가의 『82년생 김지영』(민음사, 2016.06)을 다룬다. 감독은 김도영이고, 주연은 정유미 공유 배우가 맡았다. 가족과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성차별을 다룬 이 작품은 영화와 더불어 큰 인기를 얻었다. 안 교수는 “현재 가장 큰 갈등은 계층 갈등과 젠더 갈등”이라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여력도 능력도 동난 사람들에게 남은 건 생존주의, 과잉 능력주의, 우열의 논리”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안 교수는 이 작품에 대해 “이 소설에서는 김지영이라는 가장 많은 보통의 이름을 통해 매개되는 무수한 여성의 목소리를 담고자 했다”라며 “「82년생 김지영」은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마치 서벌턴(하위 계층) 계급의 여성들이 처한 운명처럼 자기 생각을 펼칠 수 없도록 목소리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고발하는 영화다”라고 평했다. 최근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미투운동은 『82년생 김지영』이 그리고 있는 한국사회를 재현하는 듯하다. 젠더갈등은 더욱 첨예해지지만 타협의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안 교수는 “소설에서 지영(정유미)의 모습이 현실을 직시하며 무거운 삶의 굴레 속에 적응해야 하는 모습이라면, 영화는 역사의 주인공이 지영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라고 적었다. 

『문학과 영화로 인성을 디자인하다』를 읽다보면, 마음이 아리다. 슬프고 부조리한 현실은 사실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그 안에서 버티고, 회복하고, 치유하는 서사이다. 이 책은 그 서사를 매우 예리하면서도 비교문학의 관점에서 다양하게 다룬다. 나만 아픈 게 아니라 주인공 역시 힘들었다는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치유가 되는 듯하다. 그 주인공에겐 한없이 미안하지만 말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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