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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현대미술의 죽음
[學而思] 현대미술의 죽음
  • (심상용/동덕여대·조형예술학)
  • 승인 2001.05.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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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15 18:29:47
미술은 적어도 지난 한 세기의 얼마간 가열찬 응전의 역사를 추진했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조건들에 반응하고 적응해 온 이 역사는 유기체로서 자신의 자율성을 인식하면서 가능했었다. 그 인식에 의해 미술은 하나의 유기체로 ‘살’ 수 있었고, 자신의 독립적인 역사를 꾸릴 수 있었다. 모든 유기적 체계는 구분과 소통의 변증법적 존재다. 변동이 발생했을 때 살아있는 체계는 적응의 메커니즘을 동원한다. 조건들을 호흡하고 소화해내는 각성의 총체적 과정에 의해 생명이 존속되게끔 하는 것이다. 전 세기의 미술이 그랬었다는 이 흥미로운 접근은, 그러나 그에 따른 어떤 불가피한 귀결을 수용해야 한다. 살아왔다면 죽을 수 있다는 유기체의 본질!
모던 미술은 소속-황실이나 귀족 같은-의 상실, 사진과 산업기술의 발달과 일자리의 박탈, 애호가 층의 해체 등, 급진적 변동에 대한 적응과정에서 비롯되었다. 변동 속에서 미술은 고도의 긴장과 각성을 동반하는 ‘자율성’의 이념을 구축할 수 있었고, 이 존속의 기제를 통해 자신을 외부조건들과 대립, 격리시켰다. 그리고 체계유지의 그 견고한 보호막에 의해 막대한 에너지로 스스로를 추동하는 자기응집 방식을 성숙시켜나갈 수 있었다. 그것은 구분과 소통의, 고도의 균형을 요구하는 과정이었다. 미술은 완전하게 독립적인 유기체이길 원했고, 또 조건들에 저항했지만 그것은 이미 시대를 사는 증거였다(유기체의 반동, 대립은 적응의 한 양식이다). 적어도 이 적응과 반동의 시기 동안 미술은 하나의 유기체로서 청년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던 미술의 활력은 곧 소모되고, ‘덧없는 미술’의 시대가 도래했다. 해마다 새 화가와 새 활로의 등장을 찬양해대는 자기 도취적이고 히스테릭한 연례행사들에 의존하고, 단기효과를 노린 전략적 창작의 풍토가 만연하면서, 대중과 시장을 떠나서는 결코 다른 무엇일 수 없는 미술의 시대. 하긴 모던 이후의 미술도 유기적 적응의 면모를 띠고 있긴 하다(더 이상 이전 같지 않은 조건들에 대한 인식을 동반하고 있다). 이를테면, 덧없는 미술은 덧없는 시대의 반영이었다. 그러나 반영은 각성이 아니다. 아니면, 스스로 자신의 유기체를 부정하는 각성이던가. 어떻든, 여전히 각성의 이름으로 추진된 ‘모든 억압된 것들의 복구’는 사실상 유기적 체계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에 문호를 활짝 열었을 때, 구분과 소통의 상호과정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고, 호흡과 소화의 존속기능은 무의미해졌던 것이다. 유기체는 스스로를 조건들로부터 격리시키는- 그 격리에 의해 소통이 비롯되는-, 그 확고한 격리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던 이후의 미술은 그 무작위적이고 무조건적인 개방에 의해 유기체의 한계를 넘어섰다.
유기체로서의 자의식으로부터 가능했던 미술의 종말! 그러나 모든 유기체에서-그것이 생물이건 아니건- 전체의 생명이 파괴되더라도, 부분들은 잠시 더 존속할 수 있다. 예컨대 스스로를 각성시키거나 긴장시킬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상태인 뇌사, 아니면 일체의 중추신경계가 그 기능을 멈춘 후에도 손가락이 까닥거리거나 안면근육의 수축이 지속되는 말초신경의 자율적 작동. 지금은 이 사망 이후를 둘러싸고, 이를테면 안락사 같은 어떤 임상학적인 논쟁들이 오고가는 중이다.
이론 현대미술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살아있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한 때 살았던 것으로서 정령처럼 불려나오는 방식에 의해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미술관과 갤러리와 컬랙터와 주말마다 미술관을 찾는 제도와 추천의 관습 속에서 중추신경의 기능정지는 교묘하게 은폐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부활은, 즉 유기체의 복원은 가능할까? 그러나 다시 구분의 보호막을 복구하는 일, 즉 일단 훼손된 내부의 질서를 다시 재건하는 일은 유기체라면 가능하지 않다. 죽은 에너지의 재에너지화는 불가하다. 물론 이종교배된 새로운 변종과 그 체계의 역사가 진행되어갈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것이 이미 자신의 유기적 체계를 마감한 현대미술을 슬쩍 문지르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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