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1:10 (토)
생각하는 이야기_사마천 단상
생각하는 이야기_사마천 단상
  • 김원중 건양대
  • 승인 2004.12.2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래도 하늘은 착한 자의 편이 아닌가…

우리에게 ‘사기열전’으로 더 널리 알려진 사마천의 ‘史記’는 어설픈 소설보다 재밌다. 그 속에는 진시황이나 항우, 유방을 비롯해 왕후장상뿐만 아니라 자객, 광대, 점술가, 상인이라든지 공자, 맹자, 한비자, 노자, 장자 등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그들 누구도 2천년 전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인물들이 아니고, 심지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사기’에 그려진 군상은 우리 인간사에서 대립과 갈등, 도덕과 비도덕, 탐욕과 자선, 우정과 배신 등 양자 선택의 길목에 선 인간이 선택적 갈등에 놓이게 되고 그러한 갈등 자체가 인간이 사는 모습임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사기’라는 대작을 저술한 사마천의 삶은 불행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구 이릉을 변호하려다 한나라 무제에 의해 남성의 생식기를 제거당하는 치욕적 형벌을 받으면서 살다간 그는 스스로를 九牛一毛에 불과하다고 폄하하면서도, 인간사의 불공정한 여러 형태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품는다. 그는 天道의 기본은 권선징악이지만 사회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아 착한 사람이 화를 입고 나쁜 사람이 복을 누리는 世道가 엄존하다고 봤다. 

그리고는 ‘사기열전’의 첫머리 ‘伯夷열전’에서 착한 사람의 전형인 백이와 숙제가 끝내 수양산에서 굶어죽은 것이나, 공자의 제자 顔淵이 淸貧好學하면서도 나이 서른도 안돼 죽은 것을 예시하면서, 이와는 달리  춘추시대 말에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심지어 그들의 간을 회쳐 먹은  도척은 천수를 누렸다는 것을 실례로 들면서, 하는 일이 올바르지 않고 탈법을 일삼는데도 한 평생 호강하다가 부귀가 대대로 이어지는 사람도 있고, 공평하고 바른 길을 가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고 하면서 “만약에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리라고 한다면, 이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하며 한탄했다. 사마천은 자신이 선하게 살아왔는데도 치욕을 받은 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 의사친구가 하는 말이, 병원에 환자가 진단받으러 왔다가 암이나 불치병으로 판명나면 예외 없이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려야 하느냐? 지금까지 착하게 살아왔고 나쁜 일도 한 일이 없었는데…왜 내가…”라고 되뇌이면서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 역정을 회고해 보면서 착하지 않게 살아서 그런 것처럼 울부짖으며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하필이면 당신이…”라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다고 한다.

이러한 심리의 기저에는 분명 하늘이 착한 자의 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서려 있는 것 같다. 티없이 맑고 곱게 살아가야하는 어린 아이들이 불치병이나 난치병에 걸려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하는 경우라든지, 부모가 일하러 나간 사이 불이 나서 세 아이들이 모두 죽은 일 들을 수시로 접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엔 처절하고 생생한 일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거듭해 본다. 그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며 또 가족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오늘날처럼 디지털시대요 국경의 개념마저 사라져 가는 시점, 무한경쟁의 사회, 예측 불가한 현실에서 이런 식의 한탄과 외침은 그저 그렇게 잊혀지기 마련인 남의 얘기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차디찬 시베리아 벌판처럼 삭막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아주 힘들어도 나름대로 불굴의 의지를 보이면서 극복해 나가는 사례가 보도되기라도 하면, 우리 내면에 미라처럼 잠들어 있는 온정은 그들이 삶의 의지를 다시 불태울 수 있을 만큼 강렬한 불길이 되어 되살아나곤 하는 괴력을 발휘하곤 했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나는 내 주위의 나 보다 훨씬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따스한 손길을 뻗치지 않았음을 깊이 뉘우치며 왜 이렇게 바쁘고 여유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 자신에게 아쉬움을 보내게 된다.

우리 모두에게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 단순히 일빙에서 웰빙으로 바꾸는 식의 차원은 아닐 것이고, 정년퇴임해 연금이나 받으면서 한가로운 노년을 맞이하는 단순한 인생 설계의 차원에 머물러서도 아니 될 것이다. 지성인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정말로 하늘을 원망할 만큼 그런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하는 해답을 찾으려 暗中摸索하는 것이 보다 의미 있는 웰빙의 방식일 것이다. 

제 아무리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닥쳐와 감내하기 힘들다 해도 ‘하늘은 착한 자의 편에 서 있으며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여전히 金城湯池처럼 굳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김원중 / 건양대 중문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