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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돌과 칩거의 거리...점들 사이의 관계의 변화
저돌과 칩거의 거리...점들 사이의 관계의 변화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12.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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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의 맞수를 찾아서-[2]미술

미술계에서 서울대-홍대의 양대산맥은 여전하지만 90년대 이후 그 양상이 조금씩 누그러져 온건 사실이다. 현재 미술계는 거대 봉우리나 작가군들이 대결하는 양상이라기보다는 개개인이 산발적인 형태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개척해나가고 있다. 작가적 역량과 활동, 위치와 평가 등을 고려해볼 때 민정기와 임옥상, 김호득과 김성호가 미술계의 뚜렷한 맞수로 보인다.

민중화가 민정기 vs 임옥상
민정기와 임옥상은 1970~80년대 대표적인 민중 화가였다. 둘다 4·19 20주년에 결성된 모임 ‘현실과 발언’ 동인이었고, 또 ‘문제의 작가’로 꼽혔다. 둘은 대학 때부터 단짝으로 1972년 졸업후 1978년 공동전시회를 여는 등 시대를 함께 겪어왔다.
민정기의 초기작인 ‘세수’, ‘대화’, ‘지하철근로자’ 등은 이른바 ‘이발소그림’으로 불렸는데,  제도권 미술에 대한 차별성을 내세우며 대중적 정서를 빌어 삶을 소박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임옥상의 초기작으론 ‘자화상’을 꼽을 수 있다. 내적인 곳에서 시작된 그의 고민은 사회에 대한 적극적 인식으로 발전해갔다. ‘땅’은 전쟁, 분단, 민중 등의 사회인식과 비판적 관점이 웅장하게 표현됐고, ‘아프리카 현대사’는 세계적 주목을 얻었던 작품이다.  미술평론가 강선학 씨는 “민정기가 한국적 사안을 다뤘다면, 임옥상은 ‘아프리카 현대사’와 같이 세계사적 관점에서 우회적으로 사회를 고발했다는 점에서 시각의 차이가 있다”라고 평한다.

1990년대 민중미술의 쇠락과 함께 민정기와 임옥상은 뚜렷이 다른 길을 걸어갔다. 민정기를 두고 주위 사람들 특히 화가 주재환 씨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내성적 성격”이라며 ‘전형적인 고양이과’라고 덧붙인다. 성격은 작품활동에서도 드러난다. 민중미술운동의 선배 격이던 그가 벌써 십수년 째 양수리 산골에 칩거하면서 풍경을 그리고 있는데, 미술계에선 이를 ‘의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양수리에서 민정기가 화폭에 담아낸 건 주변 풍광들이었다. ‘소나무’에서부터 ‘구곡도’, ‘오대도’까지 이어지는 그의 근작들을 두고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미술평론)는 “풍수지리적, 인문지리적 요소, 유토피아적 열망 등이 뒤엉켜 있다”라고 평하기도 했지만,  “풍경이 주는 의미가 너무 우회적이고 평범한 차원”이라는 평가도 있다.

반면 임옥상은 적극성과 능동성이 밑천인 이른바 ‘저돌형’이다. 성격이 운명을 좌우해서인지, 발로 뛰는 그는 끊임없이 에너지를 분출시키며 사회적인 이슈들을 작품화해왔다. 그는 포탄을 끌어다가 매향리에 설치해 전쟁과 평화라는 이슈를 부각시켰고, ‘민족상생21’이라는 커다란 벽화를 설치해 민족주의 다시 각인시키려 했다. 지난해에는 ‘당신도 예술가’라는 작품으로 어린이과 함께 미술놀이를 했고, 영일, 분원, 연남 초등학교 등에서는 ‘꿈꾸는 별이 뜨는 학교’라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서양화라는 틀에만 갇히지 않고, 사회적 이슈와 새로운 형식이라는 화두를 다양한 방법으로 모색해왔다.

하지만 이같은 그의 작품활동을 두고 미술평론가 김광우 씨는 “갈팡질팡하는 측면이 있다”라는 아쉬움을 나타낸다. 김 씨는 “온갖 이슈를 작품화하지만, 근본적인 의식이나 미학적인 측면에서 뚜렷한 관점이 서있지 못하다”라고 비판한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만큼의 투철한 의식은 읽히지 않는다는 것. 어쨌든 여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민정기와 임옥상 둘은 민중미술운동에서 전환해 자기 세계를 찾아나가는 작가들로 꼽히고 있다.

국화가 김호득 vs 김성호
얼마전 전시회를 마친 김호득 영남대 교수(한국화)의 근작들은 “파격적인 시도”라는 세간의 평가를 얻고 있다. 수백수천의 점을 찍은 작품들은 동양화에서는 보기 드문 시도였다. 김호득과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김성호 씨는 한국화 쪽에서 먹이 아닌 천연채색화로 자연을 매우 사실적으로 세밀히 그려오고 있다.

김호득이 “파격과 실험의 작가”로 유명세를 얻었다 하더라도 먹과 한지라는 전통의 표상에 기대고 있는 반면, 김승호의 그림들은 “서양화도 동양화도 아닌 애매한” 지점에 위치지어진다. 김승호는 “범주화되기 싫어서 경계에 서있다”라고 털어놓는다. 작가가 직접 채집한 색색의 돌들을 모아서 빻아 천연물감을 만들고 이것을 비단 위에 채색함으로써 자연스런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게 한다. 그림의 내용과 구도, 색채로 볼 때 한국화와 서양화 어느 한 범주에 들지 않는 것들이다.

김호득의 초기작들은 꽃 한송이, 돌 하나, 나무 한그루 등을 표현한 것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왕성한 실험의식이 발휘되는 과정에서 그의 그림은 더욱 추상 쪽으로 기울게 된다. 수백, 수천, 수만의 점들을 찍어가면서 완성된 최근작들이 바로 ‘흔들림-문득’, ‘문득-사이’ 연작이다. “점들을 찍어가면 점들 간의 관계가 끊임없이 변하고, 그 변화를 즐긴다”라고 작가는 말하는데, 즉 점들의 밀도 속에서 흔들림을 느끼며, 변화를 느낀다는 말이다. 김호득에게 더욱 추상화된다는 것은 화가들이 대상에 몰입해 본질을 구하는 일반적인 일과 구분된다. 그것은 반복적 이데아로 굳어지는 것을 경계하면서, 화가가 갖는 표현의 권리를 화폭에 일부 위임함으로써 ‘화면의 자율’로 이동하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성호는 십수년 정감 어린 풍경들을 담아내기에 여념 없었다. “과장도 수식도 없이” 소박한 그대로를 말이다. 1990년 즈음의 삭막한 공장과 도시풍경은 간곳없고 농촌의 향토성과 자연스러움이 물씬 배어난다. ‘山有花’란 작품에선 초여름의 시원한 정취와 함께 억새풀이 우거진 야트막한 동산의 고적감이 느껴진다. 양평 월산리 마을에 작업실을 자리잡은지 십년도 더 됐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매년 똑같은 풍경에서 다른 감정들을 느낀다”라는 작가의 말에서 고요한 변화의 율동이 묻어난다.

미술평론가 강선학 씨는 “김호득과 김성호는 전통적 감수성과 현대적 감각을 모두 갖고 있다”라고 공통점을 추려내면서도, 김호득은 “한국화의 현대화라는 과제에 끊임없이 도전한다”라는 점에서, 김성호는 “전통산수화와 서양 풍경화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재미와 특유의  풍경이 드러난다”라는 점에서 구별해 견줘본다. 

둘은 작업환경이나 스타일도 다르다. 김호득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업실에서 술과 씨름을 해왔다면, 김성호는 주로 발품을 판 여행들을 많이 다녔다. 인도, 몽골, 중국, 그리스 등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는데, 그러한 풍경들이 작품대상이 될 뿐 아니라, 그곳들에서 독특한 정서와 느낌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화가 강경구 씨와 오창석 씨가 자주 동행하는 여행 벗들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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