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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숍(science shop)으로 소통하자
사이언스 숍(science shop)으로 소통하자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12.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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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과학기술이 국민의 삶과 보다 밀접한 관련을 갖기 위한 한 방편으로 ‘과학상점(Science Shop)’을 설립하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그간 국내 과학기술 대부분이 경제성장에만 초점을 뒀던 것에 반해, 몇몇 교수들과 젊은 예비과학자들, 그리고 시민단체들이 “과학기술과 시민을 연결시킬 가교로서의 과학상점이 필요하다”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과학상점이란 대학 내 실험실이나 연구소가 지역주민들의 수요와 요구에 기초해 사용자 친화적인 연구개발을 수행함으로써 지역사회에서 과학기술과 일반시민을 연결시키는 활동을 하는 대학내 공간을 말한다. 여태껏 ‘산학협동’이란 이름 아래에 강화되어온 대학지식의 자본화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지역주민들을 보다 배려하자는 차원에서 추구되고 있는 사회적 제도다. 

과학민주화를 고민해온 일부 나라에서는 과학상점이 일찍부터 설립·운영돼왔다. 최초로 설립된 곳은 1974년 네덜란드 위트레히트(Utrecht) 대학이다. 당시 위트레히트 화학과 학생들은 과학기술이 베트남전쟁에서 대량살상용 군사무기를 개발하는데 사용되는 것을 보고, ‘인간과 사회를 위한 화학’을 모토로 내걸고 화학상점을 설립했던 것. 이후 네덜란드 내 모든 대학에 과학상점이 설립됐는데, 매년 약 2천여건 정도의 연구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미국은 1990년대 들어 시민사회 주도로 네덜란드식 과학상점을 설립했다. ‘지역기반연구’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는데, 과학지식의 공공성을 회복시키고 있다. 이 외에도 독일, 벨기에, 덴마크, 영국, 아일랜드, 루마니아, 이스라엘 등 전 유럽에서 과학상점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주로 들어오는 연구요청 분야는 환경문제, 건강, 산업보건과 안전, 교육과 육아, 건축, 작업장 문제, 그리고 인문사회과학적 문제 등이다. 예컨대 북아일랜드에 있는 한 과학상점에서는 이전에 가스저장소가 있었던 지역에 주택단지를 개발하려고 하는데 그 지역의 토양이 인체에 어떠한 악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연구해줄 것을 요청받았다. 또 네덜란드의 한 과학상점에서는 집집마다 가솔린 냄새가 심하게 나는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연구해달라는 지역주민들의 요청을 받아 학생자원봉사자들과 석박사과정 학생들이 팀을 이루어 연구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 오래된 주유소의 지하탱크에서 가솔린이 새어나와 하수관을 타고 흘러든 것을 밝혀내기도 하였다.

초창기에는 과학상점에 소속되어 있는 교수들이 직접 나서서 시민들로부터 요청되는 문제에 대한 연구활동을 수행하며, 그 외 젊은 예비과학자들과 대학원생들이 점차 지도역할을 담당해나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국내의 과학연구자들에게 ‘과학상점’이란 제도는 그 이름부터 생소하다.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과학기술사회학)는 “몇몇 시민단체들이 관심을 갖고 있지만, 정작 과학자들은 정보에 어두울 뿐더러 관심이 별로 없다”라며 대학내 연구자들의 인식부족을 지적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지난 7월 발족한 시민참여연구센터에서 과학상점을 설립·운영중이다. 대전지역 젊은 연구자들과 시민들이 만든 것인데, 2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쳤다. 주로 환경, 공공서비스, 보건/의료, 안전/방재, 교육, 여성/육아, 고용/노동, 복지/사회적 약자, 농민/농촌, 주민자치 등의 분야에서 과학기술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초기단계다. 이상동 사무국장은 “무엇보다 대학내 연구자들의 과학기술사용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라며 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이 씨는 “대학연구자들의 지식이 공공적으로 사용되도록 장려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라고 주문했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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