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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부정 대학도 책임있다 3: 학사관리 엄정화의 조건
수능부정 대학도 책임있다 3: 학사관리 엄정화의 조건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4.12.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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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관리’ 대학평가 항목에…"학점실명제 도입 필요"


대학의 학사관리 엄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시장은 더 이상 ‘뻥튀기’된 대졸자를 믿지 않은 채 나름의 비책으로 신입사원 선발에 나서고 있다. 취업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먹이며 학생들의 학점을 부풀리는 행위는 이제 대학교육에 대한 악화된 인식만을 고착시킬 뿐이다.


‘부실한’ 대졸자 양산을 멈추는 일은 사회의 인식이 변화하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대학이 팔을 걷어 부치고 달려들어야 할 일이다. “대학이 검증된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기업은 대학간판을 보고 선발할 수밖에 없다”라는 어느 기업 연수원 관계자의 말은 왜 대학이 먼저 나설 수밖에 없는지 잘 설명해준다.

대학명성에도 학사관리 엄격한 하버드대

그런 점에서 하버드대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2002년 하버드대는 2001년 학부생 성적의 절반이 A학점 또는 A 마이너스였다고 밝혀 ‘학점 부풀리기’ 논란에 휩싸였는데, 이 대학 교수들은 A학점 기준과 우등졸업생 자격 요건을 강화하는 것으로 논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하버드대라는 간판에 안주할 수 있음에도 대학 명성에 버금가는 학생을 배출하기 위해 학사관리를 더욱 강화한 것이다.


씁쓸하게도 한국대학에서는 하버드대와 같은 ‘자존심’은 찾아볼 수 없다. 온정주의적 교육문화와 학생선발·학생취업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학사관리 엄정화에 머뭇거리기만 한다. 결국 대학정신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율’을 훼손하고서라도 엄격한 학사관리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ㅊ대의 어느 교수는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현재의 강의평가 문제점이 먼저 해결돼야 하겠지만 대학 성적증명서에 교수의 이름을 넣는 방법도 고려해 볼만 하다”라는 것이다. 현재 대학 졸업생이 발급받는 성적증명서에는 수강과목과 학점만이 표기되는데 여기에 교수자의 이름을 넣자는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를 얻게 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난 10월 20일 중앙대에서 전국 1백20여개 대학 입학처·실장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대입제도 개선을 위한 전국 대학 입학처장 회의’다. 당시 회의에서 입학처장들은 고등학교의 내신 성적 부풀리기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내신 성적표에 교사의 이름을 적기하는 방식이 도입돼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의견을 모았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의 내신성적 부풀리기만큼 대학의 ‘학점 부풀리기’가 만연돼 있는 상황에서 이 제도가 대학에 적용되기 시작하면 학점을 후하게 주는 고질적인 병폐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상대평가제든 절대평가제든 어떠한 평가제도를 도입하든지 학점이 뻥튀기되고 있는 현실에서는 학사관리를 엄격히 하는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교수 개인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학 차원에서 ‘학사관리 엄정화’에 강력한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김영석 경상대 교수(사회교육학부)는 “졸업률이 낮은 대학일수록 가산점을 주는 제도도 검토해봐야 한다”라고 제안한다. 예컨대 대학평가에서 연구역량만을 평가지표로 삼을 것이 아니라 학사관리를 얼마만큼 엄격히 하는 지도 중요 평가항목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 제도를 모든 대학이 실시할 경우 사립대학의 반발이 심할 것이 충분히 예상되므로 국립대학만이라도 이러한 평가지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한다.

대학서열화 철폐 병행돼야

학사관리를 엄격히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도 학생들에게는 대학 4년간의 학업이 커다란 발전을 가져오는 요소가 될 것이라는 비전을 심어줘야 한다. 4년 동안 혹독한 학업과정을 거쳐도 비전이 없다면 학생 개인으로서는 그러한 과정을 감내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박순준 동의대 교수(사학과)는 “전공에 대한 비전이 있다면 교수가 아무리 혹독하게 평가하고 몰아쳐도 학생들이 아무 말 없이 따라온다”라고 말하고, “엄격한 학사관리와 학생중심의 교과과정 개발이 병행돼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모든 조치들이 대학서열화 철폐가 병행되지 않고서는 고식지계가 될 뿐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정진상 경상대 교수(사회학과)는 “사회의 평가기준이 학교의 성적이 아니라 대학서열에 따른 졸업장 자체가 되고 있기 때문에 교수 개인이나 대학이 학사관리를 엄격히 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라고 말한다. 대학서열이 인생서열과 직결된 상태에서는 상대평가제 등의 학사관리 엄정화 시도가 이루어지고 교육적인 경쟁 틀을 만들어도 결국 실패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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