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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아방강역고』(정약용 지음/정해렴 옮김, 현대실학사刊)
[깊이읽기]『아방강역고』(정약용 지음/정해렴 옮김, 현대실학사刊)
  • 양보경 / 성신여대·역사지리학
  • 승인 2001.05.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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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17 17:49:06

‘아방강역고’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년)이 조선 후기 역사지리학의 성과를 집대성하고 우리나라 역대 강역과 역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집약한 책이다. 조선 후기에 역사학과 지리학의 새로운 흐름으로 부상한 것이 역사지리학의 발달이었다. 조선 전기 이래 각 지방에서 편찬된 각 지역의 지리지인 邑誌의 편찬 등으로 축적된 지역 역사의 축적, 중세사회의 동요와 양란으로 인한 중세 국토 질서의 파괴, 실학의 발달과 맥을 함께 하는 우리나라 역사와 문물에 대한 관심이 역사지리학의 체계적인 정리로 나타났다. 역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자 할 경우 먼저 부딪치는 문제가 역대 국가와 수도의 위치, 영역, 국경, 행정구역 등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방강역고’의 중요성은 이미 위암 張志淵이 1903년 이 책에 임나고, 백두산정계비고 등을 보충해 ‘대한강역고’를 간행한 데서 엿볼 수 있다. ‘대한강역고’는 번역이 있었으나, ‘아방강역고’가 비로소 완역됨으로써 일반인들도 우리나라 역사지리학의 원전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번역과 해설이 정확하며, 인명·서명 해설과 색인이 있어 더욱 편리하다.

17세기 초 韓百謙이 저술한 ‘동국지리지’ 이래 유형원, 신경준, 안정복, 한치윤, 한진서 등으로 대표된 실학의 한 유파는 역사지리학이라 불리는 학문적 전통을 만들어 나갔으며, 정약용은 이를 집대성하해 1811년에 유배중인 강진에서 10권으로 정리하였다. 1833년에는 72세의 나이로 ‘속강역고’ 3권을 추술, 첨부함으로써 역사지리에 대한 관심과 집념을 보여 주었다.

‘아방강역고’는 고조선부터 발해까지 조선의 역사지리를 조선과 중국의 문헌을 망라하여 과학적, 실증적 방법으로 정리하였다. 이 책에서 다산은 기자조선의 강역과 그 역사, 한사군, 삼한, 옥저, 예맥, 말갈, 발해 등의 위치와 역사, 그리고 고구려와 백제의 수도의 위치 및 浿水와 白山의 위치 고증, 조선시대 팔도의 연혁 및 西北路의 역혁을 고증하고 있다. 특히 불명확하게 남아 있던 고대사 특히 삼한, 한사군, 발해 등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우리 민족의 기원으로 東夷(朝鮮族과 韓族)를 중심으로 보되, 여기에 중국의 秦나라 사람, 濊貊系(고구려, 백제, 동예)도 포함시켰다. 이는 말갈, 여진계통과 우리 민족 사이에 선을 그으려는 것이었다. 이런 종족관은 民族史의 체계와도 관련된다. 정약용은 우리나라 고대 역사를 고조선(기자조선)과 삼한의 이원체계로 정립하고, 삼한 가운데 진한과 변한이 신라에 계승되어 정통성을 가지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마한이 삼한의 중심이었음을 강조하고 백제의 역사적 위치를 종전에 비해 부각시켰다. 그러나 발해는 그 종족을 말갈로 봄으로써 우리 역사에서 배제했다.

다산이 역대 각국의 영역을 한반도로 비정한 점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다산은 고조선이 한반도 북부에 있었으며, 고구려도 초기 영역이 압록강 중류 이북 지역이었다고 보았다. 또 발해는 그 영역을 백두산 이동 지역으로 봄으로써 고구려와의 관련성을 부정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고조선의 영역을 만주 지역으로 확장해 보는 견해, 고구려 중심의 역사 인식, 발해사를 우리 역사에 편입하려고 하는 생각 등이 대두되었는데, 다산은 이를 비판한 것이었다. 정약용의 역사지리 인식은 실증주의 역사학의 역사지리고증과 유사하며, 남북 분단 이후 남한의 고대사 체계와 대체로 유사하다. 결국 조선 후기에 대두된 고구려 중심의 역사인식은 민족주의 역사학으로, 정약용의 역사지리 인식은 실증주의 역사학과 남한의 역사학에 계승되었다. 이에 따라 남북한의 고대사와 고대국가의 위치 등은 지금까지 큰 차이가 있으며, 통일되지 않고 있다.

정약용의 역사지리 인식은 그의 개혁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만주지역을 적극적으로 우리 고대사의 무대로 보려는 생각은 17세기의 북벌론에서 출발하였다. 북벌론은 그 명분을 통해 민을 통제하고 사회개혁을 억제하고자 하였다. 총체적인 사회개혁론을 주장한 정약용은 우리 역사의 무대를 만주까지 확정하여 청나라 역사에 매몰시키려는 데 반대한 것이었다. 그는 도덕이나 명분 중심의 역사해석에서 탈피하여 지리·자연환경·기술과 생산력·국가의 부와 같은 현실적인 면에 관심을 지닌 실용주의적 입장을 지녔다.

역사지리학은 과거의 지역을 다루는 학문이지만, 과거를 지향하는 학문은 아니다. 현재와 미래를 위해 바탕이 되는 학문이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독도, 백두산·천지·간도, 녹둔도, 압록강 하구의 섬들, 동해 지명 문제 등 인접국가와 국경 문제를 남겨 놓고 있다. ‘아방강역고’ 번역서 출간을 계기로 역사지리학의 부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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