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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교수기획위 구성돼야…학술기관으로 대우 필요
자발적 교수기획위 구성돼야…학술기관으로 대우 필요
  • 최철규 기자
  • 승인 2004.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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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진단_학술출판의 발전을 모색한다: ④ 대학출판부, 활로가 필요하다

대학출판부는 대학내 학문 인적 자원들의 학술 아이디어와 연구 성과를 ‘출판’이라는 형식을 통해 학계와 사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발간 자체만으로 의의를 갖는 학술서를 출판한다는 점에서 대학출판부는 학술출판의 독특한 패러다임을 구성한다. 그러나 현재는 재정 확보와 전문 출판 인력 구성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학술출판의 본령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대학출판부와 비교해 볼 때 현실은 더욱더 초라해 보인다.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MIT, 하버드 등의 대학출판부들이 대학의 얼굴을 자처하며 학문의 세계화를 이끌어 가고 있음에 반해, 국내 대학출판부들은 국내시장에서도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학술후진국으로서 자생학문의 기틀을 마련하고, 나아가 세계무대에 국내 학문을 알리기 위해서는 대학출판부의 강화가 무엇보다도 필요하지만, 현재의 대학출판부에게는 과도한 이상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름만 대학출판부…전문출판인력 시급

무엇보다도 경영자유화를 명분으로 시장경쟁 원리에 입각한 독립채산제로 대학출판부를 운영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 대학 당국의 인식이 문제다. 협소한 학술서 시장의 특징에 둔감한 것이다. 서울대를 비롯한 연세대나 고려대 등의 주요 대학 출판부들이 별도의 지원없이 기존에 출간한 도서나 강의 교재 판매 수익, 우수학술도서 지원 등을 통해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맞추고 있을 뿐, 적극적인 학술기획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연세대 이인구 출판원장은 “신간을 내면서 당장의 효과를 생각하기 보다는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지방대의 경우 대학출판부의 위상과 기능 부실은 더욱 심각하다.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충북대출판부는 매년 대학당국에 예산 심사를 신청해서 지원을 받는다. 그러나 이마저도 대학 재정에 따라 가변적이다. 조직도 출판부장 외에 임시 계약직원 1명이 있을 뿐인데, 대학내 출판부의 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전북대출판부는 내부사정으로 인해 올해서야 겨우 ISBN에 등록하고 출판부장을 임명했다. 그렇다고 서서히 대학출판부로서의 위상을 정립해 나가는 것도 아니다. 출판뿐만 아니라 인쇄업까지 겸하기 위해 ‘산학협력단’소속으로 위상을 전환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김상근 부산대 출판과장은 “대학이 대학출판부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뚜렷한 관점과 지원책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한다. 지방대의 경우, 신입생 충원이나 졸업생 취업 문제만을 통해 대학 홍보에만 관심을 둘 뿐, 활발한 대학출판부의 활동을 통해 학문을 통한 대학 이미지 제고에는 무관심하다는 것. 김상근 과장은 “전반적으로 열악한 조건에서 시장성 확보도 쉽지 않으니 학술출판에 대해 출판부가 자체적으로 뚜렷한 정책을 갖기도 어렵다”라고 덧붙인다.

기획과 제작,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전문출판 인력을 구성하지 못하는 대학출판부의 인적구성도 학술출판을 부실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대부분의 경우 4~5명으로 출판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의뢰받은 원고를 편집, 교정하는 수준에 불과하니 ‘출판’보다는 ‘인쇄’에 더 가깝다. 

문제는 인력의 전문성이다. 총28명의 인원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있는 서울대출판부도 막상 출판의 전문성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다. 서울대출판부가 인쇄업부터 시작을 했는데, 당시의 인력이 현재의 출판 업무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세대출판부도 총5명의 직원으로 운영이 되고 있는데, 이중 3명이 임시계약직에 해당하니 전문 출판 업무를 안정적으로 수행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일부 대학에서는 교수들로 구성된 출판위원회가 나름대로 편집권을 행사하며 출판의 틀을 잡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간행신청서를 심사하는 수준에 불과하며 독자적인 출판기획을 세우지는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출판 관계자는 “솔직히 말만 위원회일 뿐 적극적으로 출판부에 관심을 갖거나 책임감을 갖는 교수는 거의 없다”라고 지적한다. 교수들이 2년 임기제로 출판위원직을 떠맡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

주홍균 건국대출판부장은 출판부장도 전문출판인으로 과감히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재정이 빈약한 대학출판부로서는 출판부장과 대학의 관심과 지원 의지가 운영의 핵심인데, 임기제 순환보직 교수의 경우 전문성이 떨어지고 출판부에 대한 애정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대학출판부를 모두 출판전문인으로 구성해 책임경영토록 하지만, 학술서를 소화해줄 시장구조가 일본보다 크게 빈약한 우리는 학술적 감당범위가 넓고 경험이 있는 교수 한두명이 출판부를 맡아서 지속적으로 경영하는 방안이 강구될 수 있을 것이다. 이광래 강원대 교수에 의해 강원대출판부가 한때 컸던 것은 좋은 사례다.

대학운영제에 해당하지만 전국적 규모의 공모를 통해 저자를 확보하는 등 과감한 투자와 기획을 하는 경성대의 사례는 주목해볼만하다. 다양한 전공 교수 9명으로 구성된 ‘기획위원회’가 도서 기획과 선정에 적극 참여해 운영을 리드하는가 하면, 총장과의 직접 대면을 통해 예산을 따내기도 한다. 전영갑 출판부장은 “출판부장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 위원회의 주도로 활발하게 이뤄지며, 이를 통해 출판부 운영에 대한 책임의식도 높아졌다”라고 평가한다.

“대학출판역량, 대학평가에 반영돼야”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 외에도 대학출판부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또 하나의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교수 사회의 문제다. 교수사회가 논문 중심의 업적평가 체제로 공고화됨에 따라 역량 있는 저자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더 어렵다는 것. 교수들의 입장에서는 그나마 시장성을 기대할 만한 전국구 출판사들이나 서울대출판부처럼 인지도가 높은 곳을 기웃거리기 마련이다. 

고심끝에 이대출판부는 2년 전부터 교내 교수나 강사를 우선 대상으로 하는 파격적인 출판저술지원책을 마련했다. 1천만원 정도의 출판 저술비를 지원하는 것인데, 이마저도 수월하지 않다. 작년까지는 연간 5명 정도를 선정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쓸만한 원고가 없어 1명을 선정하는 것에 그쳤다. 이마저도 기본적인 수익을 확보하고 출판부장의 열성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시도다.

일각에서는 공동출판 방안을 제시한다. 각 출판부들의 장점을 살리는 역할분담을 통해 컨소시엄을 구성하자는 것이다. 현재는 ‘한국대학출판부협회’가 전국도서관에 대학출판부의 신간도서목록을 보내거나 1년에 한번 정도 중앙 일간지에 합동광고를 실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 구체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지방대학 출판부의 경우 ‘지방’의 특성을 학술의 틀 안으로 소화하는 기획을 모색해 볼 수 있다. 송정숙 부산대 교수(서지학)는 “대학이 기본적으로 지역과 연계된 학문 공동체이기 때문에 지방색을 반영하고 또 활용할 여지가 크다”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계명대출판부는 젊고 새로운 시각을 지향하는 ‘계명 영남학 총서’를 준비하고 있다. 역으로, 이대출판부는 ‘세계’를 기획의 타겟으로 정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겨냥해서 ‘우리문화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총서를 주제별로 국문판 100종, 영문판 100종씩 출간할 계획인데, 대학출판부의 보기 드문 시도라는 점에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궁극적으로 대학출판부 관계자들은 대학출판부 활성화를 위해서는 대학과 정부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권영자 서울대출판과장은 “발전기금이나 동창회비 등의 재원을 활용한 간접 재정 지원도 적극적으로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한다. 주홍균 과장은 “대학도서관과 마찬가지로 대학출판부의 학술출판 역량도 대학평가에 반영돼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양적평가와 질적 평가를 함게 가져가되 그를 위한 기반은 마련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대학 당국은 대학출판부를 성격상 수익사업으로 분류할 뿐, 도서관처럼 학술전문기관으로 인정하지를 않는다. ㄱ 대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교내 교수조차도 대학출판부를 외면하는데, 이는 디자인이나 영업에 전문성이 없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문제의 원인을 대학출판부 자체에서 찾고 있을 뿐이다.

남석순 김포대 교수(출판학)는 “정부가 대학의 국제경쟁력 지수에는 민감하면서 정작 세계적인 대학들의 생존 방법에는 무지하다”라고 비판한다. 지명도만 볼 뿐, 그 일등공신인 대학출판부의 역할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지식강국은 결국 책을 수출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며, 그를 위해선 교수인력을 적극 활용해 대학출판부를 해외 시장을 향해 뛰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철규 기자 hisfuf@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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