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속성의 미학과 평등한 사회구조
옻골마을, 한개마을, 낙안읍성은 마을에 담긴 정신이 공간에 그대로 드러난다. 성리학적 원칙에 따라 구성된 한개마을에 위치한 재사와 서당, 그리고 화려하지 않은 집들에서 효와 학문을 중시한 선비정신이 읽힌다. 낙안읍성에선 우리 조상들의 도시관을 엿볼 수 있다.
토속성이 강한 성읍마을은 평등한 삶의 조건을 공간미학적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강골마을 역시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토속성의 미학과 평등한 사회구조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눈여겨볼만하다.
2권에서 저자는 보다 사회적인 이슈를 던져줄 수 있는 공간으로 발을 옮겼다. 이름만 들어도 앙증맞은 ‘닭실마을’은 집들마다 서로 조금씩 비켜서 자리했는데, 조망권과 일조권이 전혀 침범되지 않아 현대 주거문화에 던져주는 교훈이 크다. ‘최상’이 아닌 ‘최적’을 추구한 철학은 미래의 건축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전통마을이라 해서 반드시 환경생태학적으로 완벽한 조건을 갖춘 건 아니었다. 외암마을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보자면 ‘白虎가 매우 허한 곳’이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이 뭉쳐 도랑을 내 물길을 텄고, 완경사지를 이용해 집들을 배치함으로써 아늑한 거주지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일제의 통치, 한국전쟁, 새마을운동을 거치면서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항상 위협받았음에도 끝까지 친환경적인 주거공간을 이어온 왕곡마을 역시 친환경적 건축이라는 21세기의 화두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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