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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헌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미래 출판, 출판산업의 IT플랫폼 활용에 달렸다”
김태헌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미래 출판, 출판산업의 IT플랫폼 활용에 달렸다”
  • 김재호
  • 승인 2021.06.0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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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개의 단행본 출판사를 회원사로 둔 한국출판인회의

“공공적 성격을 지닌 책, 문화재나 마찬가지”

최근 출판계는 ‘출판표준계약서’, ‘출판유통통합전산망’, ‘저작권법’이 이슈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이 현안들은 출판사, 출판계 관계자, 작가, 대학과 교수, 독자 등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에 지난달 28일, 취임 후 약 3개월이 된 김태헌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을 만나 이슈들을 짚어봤다. 인터뷰 결과, 결국은 과연 ‘책의 본질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인식 차이로 귀결됐다.  

“한 작가가 밤샘 작업한다고 책이 뚝딱 나오는 게 아니다.” 김 회장은 책을 바라보는 관점을 지적하며 이같이 말했다. 책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책이 출판돼 서점에 배포되기 위해선 출판사의 기획, 편집, 디자인, 교정교열, 인쇄, 마케팅의 고된 과정을 겪어야 한다. 공력을 들여 만든 책은 독자들과 비평가들에 의해 선택되고 추천된다. 또는 혹평을 받거나 무관심한 채 사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상식적인 책의 출판 과정은 종종 잊혀진다.  

김태헌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현재 한빛미디어 대표로서 대한출판문화협회 이사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비상임 이사도 맡고 있다.
김 대표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북인스티튜트 원장, 대한출판문화협회 부회장, 한국출판인회의 감사 등을 역임했다. 사진=김재호

김 회장은 ‘균형 있는 공정한 시각, 팩트, 데이터’를 강조했다. 그는 “흔히들 ‘출판사가 갑이다’는 얘기가 많은데, 저자가 슈퍼 갑인 경우도 흔하다”라며 “숫자로는 슈퍼 갑인 저자가 적겠지만, 출판사의 매출로 보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른쪽과 왼쪽을 함께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사실 몇몇 팔리는 도서들에서 남은 수익을 출판사가 다 갖는 것이 아니다. 잘 판매된 수익에서 실패하는 도서 즉, 무명 작가나 새로운 시도에도 투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의 본질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해볼 시점이다. 김 회장은 “책은 택시의 기본 요금, 의료수가처럼 공공성을 띤 문화적 성격을 띤다”라며 “단순히 저렴한 가격이 아니라 적정한 가격으로 공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도서정가제와 직결된다. 지난해 가을 도서정가제는 출판계의 핫 이슈였다. 김 회장은 “도서정가제는 책을 문화 공공재로 간주하도록 만드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설명했다. 

도서정가제는 책 정가의 15% 이내에서만 할인할 수 있도록 범위를 정했다. 그렇지 않으면 책에 대한 박리다매나 과도한 할인 경쟁으로 이어져 출판생태계가 위협을 받는다. 그리고, 독자(소비자)들에게 잘못 알려져 있는 것이 있는데, 도서정가제 전에 30% 할인하던 책을 15%로 할인한다고 해서 그 차액 15%를 출판사가 마진(이익)으로 더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출판사에서 서점으로 공급하는 책의 공급율(혹은 공급 금액)은 이전과 거의 비슷하다. 즉, 출판사의 매출액(수익)은 도서정가제 이전이나 이후나 거의 변화가 없다. 사실 도서정가제로 발생한 마진은 거의 유통(서점)쪽으로 갔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계가 도서정가제를 주장하는 것은 책을 할인 경쟁이 아니라, 책의 가치(콘텐츠)로 평가받고 작은 출판사들이 일정한 룰에 따라 시장 진입을 수월하게 할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통과 공급, 플랫폼의 문제가 연관된다. 김 회장은 “공정한 유통시스템을 만들고 다양하고 좋은 책을 제작하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데 완전 도서정가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출판인으로서의 저자와 출판사가 책임과 권리를 함께 지고 나누는 것이 출판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사진=김재호  

완전 도서정가제는 선택 아닌 필수

‘출판표준계약서’와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은 최근 장강명 작가가 출판사에 책 판매량과 인세에 대해 제대로 통보받지 못했다고 문제 제기를 하면서 논의됐다.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은 저자가 판매현황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언제가 출판업계가 합의하여 시행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김 회장은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은 사실 2017년도 송인서적 부도 이후 출판계가 정부에 제안 요청한 것”이라며 “당시 요청한 것은 물류 개념의 공급 파이프라인을 제대로 만들자였다”고 말했다. 현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을 유의미한 수준으로, 성공적으로 개발하고 운영하는 것이다. 다양한 관점과 이해관계, 성공여부가 불투명한 현시점에서 작가의 인세 현황만 투명해진다는 점만 가지고는 생산적 대안을 마련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그는 “현시점에서는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의 현재 개발상황과 단계적 플랜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투명하게 제시하고 출판사나 서점 등이 여기에 스스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신뢰성과 방향성을 갖춰야 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정부의 ‘출판표준계약서’ 제6조(출판권의 존속기간 등)에는 계약종료 통보 기한 이전에 저자에게 종료에 관한 사항을 고지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1인 독립출판사나 4명∼5명이 일하는 중소출판사들은 일일이 잊지 않고 이런 일들을 챙기기가 현실적으로 힘들다. 김 회장은 “표준계약서는 상호 간의 자율적 합의를 위한 가이드로 제시해야지 강제하면 안 된다”라며 “상호 간의 자율적 합의와 논의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장려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임에도, 정부가 이를 강제하고, 강제 수단으로 세종도서 선정사업 등 지원사업에 배제하는 불이익을 준다는 것은 또 다른 차별과 억압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적 자치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저작권법’ 역시 출판사, 즉 책의 본질과 출판 과정을 돌아보게 한다. 김 회장은 “현재 ‘저작권 전부 개정안’이 국회 소관위에서 심의 중인데, 출판계 입장에선 문제들이 있다”라며 “추가보상청구권, 수업목적 보상 청구권, 공공대출권 등이 보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회장은 ‘한국출판인회의는 다른 출판단체들과 공조해서 출판사와 저자, 이해관계자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번 개정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추가보상청구권은 일명 ‘구름빵’ 사건’으로 제기된 문제인데, 저자가 저작재산권 양도 대가로 받은 보상을 초과하는 현저한 수익 발생하였을 경우, 추가 판매되는 책에 대해 인세를 더 요구할 수 있다는 권리이다. 하지만 “한 권이 책이 출간된 후, 어떤 책이 어떻게 판매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반대로 출판사는 지급한 대가에 비해 수익이 나지 않아 손실을 보는 경우가 있는데 청구 권한이 없다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맞지 않을뿐더러 출판사는 어떤 보상이 있느냐는 말”이다. 수업목적 보상 청구권은 대학에서 교수들이 책 일부분을 쓸 때 저작권 사용료를 작가에게 지급하는 권리다. 이때 출판사는 보상금이 없다. 반대로 저작물에 문제가 생기면 출판사는 책임을 지며 책을 회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김 회장은 “출판인으로서의 저자와 출판사가 책임과 권리를 함께 지고 나누는 것이 출판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공공대출권은 영국,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로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도서를 대여하는 만큼 도서 판매의 기회를 잃게 되어 저작자나 출판사가 손실을 보게되므로 이를 보전하기 위해 일정 금액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특히 전자책 공급이 늘어나면서 이에 대한 문제점은 더욱 불거진다. 책 한 권을 수 만 명 혹은 수십 만 명이 돌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미국의 경우처럼 도서관에서 책 구입 후, 수십 차례 대여가 되면 재구매를 하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출판산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김 회장은 “무엇보다 디지털 환경의 변화와 문화적 격변이 일어나는 현재에 출판산업이 IT 환경에 맞춰 어떻게 변모하느냐, 어떻게 IT 플랫폼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느냐가 미래의 출판을 핵심”이라면서 “출판콘텐츠는 문화 다양성의 핵심이자 콘텐츠의 원천으로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출판사가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한 제도는 부족하다.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김 회장은 “출판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책 읽는 독자가 많아져야 한다”라며 “책을 더 많이 읽게 하기 위해서는 독서경험과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예컨대 학교 교육에 독서 교과를 정규 과목으로 편성하여 독서습관을 만들어주는 거다. 출판계와 교육계가 힘을 모아 혁신적인 시도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향후 한국출판인회의의 비전은? 
“한국출판인회의는 484개의 단행본 출판사를 회원사를 두고 있다. 비중으로 보면 중소형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중소출판사에 대한 지원을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이들이 어떻게 하면 기회의 공정성에서 불이익이나 차별을 받지 않고 출판 활동을 할 수 있는지, 개별 출판사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공동으로 대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등 회원사의 목소리를 반영하고자 노력할 예정이다. 또한, 뉴미디어가 범람하고 있는 지금, 출판 그리고 책이 대한민국 문화산업을 이끄는 원천 아이디어로서, 미래를 선도하는 핵심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것이며, 조직력과 실천력을 갖춘 알찬 단체로서 출판 생태계의 발전을 토대로 우리나라 출판문화가 꽃피울 수 있도록 모든 힘을 기울일 것이다.” 

김태헌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현재 한빛미디어 대표로서 대한출판문화협회 이사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비상임 이사도 맡고 있다. 김 대표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서울북인스티튜트 원장, 대한출판문화협회 부회장, 한국출판인회의 감사 등을 역임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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