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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기초로 한 한국인류학과의 성과…심층서술법의 과제 남겨
경험 기초로 한 한국인류학과의 성과…심층서술법의 과제 남겨
  • 김창민 전주대
  • 승인 2004.12.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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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서평_ ‘문화와 역사 연구를 위한 질적 연구 방법론’(윤택림 지음, 아르케 刊, 2004, 272쪽)

이 책은 질적 연구방법을 교과서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질적 연구방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론을 소개하고 실제 적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저서들이 부족한 현실에서, 그리고 기왕에 소개된 대부분의 책들이 번역서임에 비추어 이 책은 한국의 인류학자가 자신의 연구 성과와 연구 경험을 토대로 저술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질적 연구방법을 이론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질적 연구방법의 필요성과 의의, 현지연구와 문화기술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부는 질적 연구방법을 이용한 자료 수집 방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참여관찰, 심층면접, 초점 집단 연구, 생애사 등을 소개하고 이렇게 수집한 자료를 해석하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다. 3부는 질적 연구방법과 관련한 중요한 쟁점들로 구성되어 있다. 연구자와 제보자의 관계, 연구자의 정체성, 그리고 윤리적 문제 등 질적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논쟁점들이 소개되고 있다. 마지막 4부에서는 질적 연구방법의 새로운 적용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현대 문화 연구, 역사 연구, 여성 연구 등에서 질적 연구가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를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질적 연구 방법을 소개하는 교과서로서의 체계에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질적 연구방법을 개념적이고 이론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경우나, 이 방법을 조사·연구에 직접 적용하고자 하는 경우 모두 이 책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마지막 4부는 기존의 논문을 이 책의 편제에 맞도록 편집하여 첨부한 부분으로서 앞부분의 서술방식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질적 연구방법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의도를 살리면서 교과서에 부합한 방식의 글쓰기가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질적 연구 방법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이 책은 몇 가지 점에서 논쟁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 우선 이 책에서는 질적 연구에 대한 구체적 방법과 논쟁점들은 충실히 소개하고 있지만 저자의 관점과 주장은 나타나 있지 않다. 이는 이 책이 교과서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질적 연구와 관련된 많은 주제들을 소개하고 논의하는 것에 충실한 것이 저자의 주장과 관점을 드러내는 데는 한계로 작용한 셈이다.

비서구 학자로서의 인식론적 검토 부족

이 책은 질적 연구방법과 관련하여 주체와 객체에 대한 논의를 가능하게 한다.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질적 연구방법론 책들은 대부분 비서구 사회를 연구하는 서구권 학자들을 위한 것이다. 이는 인류학이 비서구 사회에 대한 서구 사회의 연구라는 전통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비서구 사회에 속한 학자가 쓴 것으로서 이는 서구권 학자가 쓴 것과는 주체와 객체의 관계에서 차별성을 보일 수밖에 없다. 서구학자는 비서구 사회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우월한 입장에 있고 이 것이 연구 과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반면 비서구 학자가 비서구 사회를 연구하는 과정에는 이러한 정치 관계가 성립하기 어렵다. 또한 타문화를 연구하는 것과 자기 문화를 연구하는 것은 인식론적으로 서로 다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비서구 학자들을 위한 질적 연구의 방법론과 인식론은 서구 학자들이 취하는 것과 다르게 정리돼야만 한다. 이 책은 한국 인류학자가 한국의 사회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쓴 것이지만, 이러한 인식론과 방법론 그리고 주체와 객체 사이의 관계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다음으로 지적할 수 있는 이 책의 한계는 질적 연구방법과 민족지(ethnography, 통상 민속지 또는 문화기술지라고도 함)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질적 연구방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민족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질적 연구방법은 문화에 대한 심층적이고 해석적인 연구를 지향하며 이를 통해 문화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게 된다. 질적 연구방법은 단순히 질적인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 자료를 해석함으로써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 돼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저자는 질적 자료 수집 방법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것을 민족지로 연결시키는 과정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조사방법론이 아니라 연구방법론을 지향한다면, 민족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연구자가 어떻게 자료를 재구성하고 해석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결국 한국 사회에서 질적 연구방법론이 유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론에 의한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는 부족하다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사회학, 역사학, 여성학 등의 분야에서 질적 연구 방법이 도입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질적 연구 방법은 양적 연구 방법에 대한 보완적인 수준에서 활용되고 있는 정도다. 인류학적 현지연구가 요구하는 1년 이상의 장기 참여관찰과 문화의 심층적 서술로 구성된 민족지 생산이 없이 질적인 자료만 수집한 연구는 온전한 질적 연구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남성편향적 연구방법 교정 효과

이러한 몇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주목할만한 성과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여성 연구자의 입장이 잘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서구에서 발간된 질적 연구방법론이나 참여관찰 방법론 교재들조차 남성 연구자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책은 여성 인류학자와 그의 동료들이 현지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어떤 인식론적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실제적인 문제에 봉착하고 그것을 극복하였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여성 연구자들의 입장과 관점을 분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질적 연구방법에서 남성 편향적인 시각을 일정 정도 교정한 성과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른 하나의 성과는 이 책이 한국 인류학자들의 연구 성과와 현지 연구 경험을 많이 담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교재들이 서구 학자들의 연구 성과와 경험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음에 비해, 이 책은 한국 인류학자들의 연구 성과와 경험을 중심으로 질적 연구 방법을 논의함으로써 한국문화를 연구하려는 한국 학자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책의 한계들이 발전적으로 극복되고, 성과는 확대 재생산 돼 한국의 사회과학계에서 질적 연구 방법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김창민/전주대·문화인류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환금작물에 대한 제주농민의 문화적 저항’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보의 친족조직과 친족집단간 관계’, ‘문화적 지역활성화의 개념과 방향’ 등의 논문이, ‘환금작물과 제주농민문화’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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