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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부정 대학도 책임있다 2 : 구멍뚫린 대학 학사관리
수능부정 대학도 책임있다 2 : 구멍뚫린 대학 학사관리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4.12.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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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에 흔들리는 학생평가…‘무늬만 전공자’ 양산

수능부정에는 ‘입학만 하면 졸업은 쉽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런 점에서 대학 학사관리의 느슨함이야말로 수능부정의 구조적 원인이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을 ‘걸러내는’ 체는 헐겁기만 하다. 도대체 학사 관리 엄정화를 막는 요인은 무엇일까.

한국 대학은 학습 무자격자를 과감히 자르지 못한다. 낙제점을 받아야 하는 학생임에도 슬쩍 넘어간다. 일종의 온정주의다. “F학점 받을 것을 C학점을 주기도 하는데 이는 어느 대학, 어느 교수에게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닌가”라고 반문하는 ㄷ대 박 아무개 교수의 언급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학사관리 엄정화에 머뭇거리는 대학들

현실을 들먹이며 학사관리 엄정화를 무력화시키려는 학생들의 반발도 큰 원인이다. 지난 달 30일 새로이 선출된 서울대 총학생회는 선거공약으로 ‘학점취소제’를 들고 나왔다. “불필요한 재수강을 막을 수 있다”라고 총학생회 측은 발의배경을 설명했지만 학점경쟁력 확보가 커다란 이유임은 부정할 수 없다.

대학입장에서도 졸업생들이 학점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입사시험에서 낙방하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교육에 대한 원칙과 소신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전 학년 모두 상대평가제를 실시했던 ㄷ대는 몇 년 전부터 학부 1, 2학년만 상대평가제를 실시하고 3, 4학년은 교수재량으로 절대평가제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ㄷ대 졸업생들이 입사시험에서 면접전형은 고사하고 서류전형에서 줄줄이 고배를 마시면서 상대평가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연이어 제기됐기 때문이다. 졸업생들의 취업률이 떨어지는 상황을 묵과할 수 없었던 ㄷ대는 학점을 ‘후하게’ 줄 수 있는 절대평가제를 부분적으로 다시 도입하게 됐다.

신입생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는 지방 소재 대학 입장에서는 ‘학사 관리 엄정화’는 일종의 모험이다. 그렇지 않아도 수도권 대학들이 지역 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상황에서 짧게는 한 학기, 길게는 2년까지 졸업이 늦어지는 대학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대학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상황이 초래된다는 것이다. ㅂ대 양 아무개 교수는 “대학에서 제대로 공부한 학생만 내보내면 결국은 사회에서도 호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되면 신입생들이 오지 않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졸업하기에는 아직 ‘모자란’ 학생들에게까지 졸업장을 줄 수밖에 없다. 지방 소재 ㅅ대 송 아무개 교수의 학과의 경우 졸업대상자 40명 중 10명 정도는 분명히 졸업할 자격이 없는 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졸업사정회의에서 합격으로 처리한다고 한다. 송 교수는 “우리 과의 경우 사범대학에 속해 있기 때문에 졸업하게 되면 교사자격증을 부여하는데, 능력도 안 되는 학생들에게 자격증을 부여하려니 고민스럽다”라고 털어놓는다.

선수과목 폐지 등의 제도들은 ‘무늬만 전공자’를 양산하게 된 원인이 됐다. 1990년대 중반 학부제가 도입되고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이 강화되면서 대부분의 대학들이 선수과목제도를 폐지했는데, 이는 이공계열과 상경계열의 전공 수업 부실화를 가져왔다. 예컨대 동국대 화학 전공의 경우 저학년 때 실험과목을 필수적으로 수강해야 만이 고학년 때 전공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선수과목 폐지로 인해 학생들은 학점 획득이 쉽지 않은 실험 과목을 기피했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3, 4학년 전공수업의 수준을 ‘부실한’ 학생들의 수준에 맞출 수밖에 없었고, 교수들은 실험과목 수강을 설득하고 다녔다.

 

김홍범 동국대 교수(화학과)는 “이공계의 경우 누적된 지식이 많아 1, 2학년 때 학습해야 할 것이 많은데 애초 학부제를 도입할 때 이 점에 대해서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라고 말한다.

전공학점의 감소도 문제다. 현재 학부제를 실시하고 있는 ㅎ대 인문대학의 경우 졸업학점 1백40점 중 최소전공이수학점을 36학점으로 해, 12개의 과목만 수강하면 전공으로 인정하고 있다. 학생들이 이중 전공을 한다고 하더라도 72학점만 이수하면 되므로 졸업학점 절반 정도는 용이하게 학점을 획득할 수 있는 과목으로 찾아 듣는 맹점을 보였다. 결국 이 대학은 최근 교과과정개편에서 졸업학점을 1백30학점으로 축소하는 가운데 전공필수이수학점을 56학점으로 올리기로 했다.

요컨대 온정적인 교육문화, 취업과 학생선발 등의 현실적인 조건, 학부제 도입과정에서 적용된 선수과목 폐지와 전공과목 축소 등의 제도 차원의 문제로 인해 대학의 학사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강의준비 열심히 할 구조 만들어야

대학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수자가 교육에 힘을 쏟을 수 있는 장치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많다. 추영국 원광대 교수(생명공학부)는 “교수가 강의를 열심히 준비하지 않고서는 학점을 엄격히 줄 수 없는 강제적 구조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조치는 교수업적평가 방식의 변화.

 

박순준 동의대 교수(사학과)는 “교육을 잘해봤자 1~2점 차이밖에 나지 않고, 연구업적용서적을 출판해 단번에 업적평가 30점을 받는 현실에서는 대학교육이 정상화될 수 없다”라고 말한다. 박 교수는 학생들에게 비전을 줄 수 있는 교과목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교육방법을 시도할 수 있도록 업적평가방식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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