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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 낯선 윤리의 출현
문화비평 : 낯선 윤리의 출현
  • 이택광 부산대
  • 승인 2004.12.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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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 부산대·비평이론

대학수학능력시험 부정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어른 뺨치는 십대들의 조직 범죄라는 표현을 넘어서서 사건은 이제 지역감정이라는 해묵은 뱀파이어를 호출하고 있는 지경이다. 심층에 잠복한 본질을 불러내는 이런 현상들. 그래서 이 사건은 한국사회의 겉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내부를 드러내는 내시경이다.

이번 사건은 휴대폰이라는 첨단 이동통신기술의 발전 없이 가능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나의 메시지에 대한 힌트가 여기에 숨어있다. 이동통신은 시공간의 거리를 소멸시켜버림으로써 개별적 시공간을 하나로 통합시킨다. 이번 사건에 가담한 당사자들은 이런 통신기술의 특성을 지금 한국사회의 어떤 계층보다 민감하게 감지하고 있는 세대들이었다. 일분에 손가락 하나로 3백타를 거뜬히 친다는 이야기는 이제 전설 축에도 끼지 못한다. 경찰 발표가 밝히듯이 이들에게 이번 거사를 실행에 옮기도록 만든 건 누구보다 능숙하게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이 자신감 넘치는 손가락의 위력이야말로 이번 사건을 가능하게 한 하나의 매트릭스였던 거다.

그러나 이런 기술이 아무런 매개없이 곧바로 수능부정을 발생시키는 건 아니다. 시험장에서 휴대폰을 소지하지 못하게 한다거나 수능 시간대에 시험장이 위치한 지역의 송수신 전파를 차단하는 방식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활용하는 인간의 조직력이다. 이번 사건에 숨겨진 또 다른 메시지가 바로 이거다. 십대들은 특정 기술을 입체적으로 조직함으로써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고자 했다. 호텔에 작전방을 설치하고, 선수와 도우미, 관객으로 이어지는 긴밀한 연락망을 구축해서 시험부정을 조직적으로 시도한 건 이런 효과를 현실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들이 잘 알고 있었다는 걸 뜻한다.

대체로 경찰수사나 언론보도의 초점이 이런 문제들에 쏠려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경찰과 언론은 부정행위 가담자들이 얼마나 능숙하게 기술을 활용했고 얼마나 치밀하게 조직적 범행을 계획했는지를 우리들에게 알리려고 열심이다. 물론 이런 열성을 중심축으로 이들의 부정행위에 대한 한국사회 특유의 잔인한 군중재판과 이에 대응하는 온정주의가 소란스럽게 회전하고 있는 건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런 소란의 와중에서도 이번 사건을 '구조'의 차원에서 볼 것을 주문하는 진지한 주장도 있다. 부정행위에 가담한 학생들을 부조리한 입시제도의 희생양으로 보는 시선이 이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더 이상 이런 시선이 전제하는 '순수한 희생양'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번 수능부정사건은 철부지 십대들의 불장난이 아니다. 누가 보더라도 이번 수능부정사건은 어른들 뺨치게 세상물정을 잘 알고 있는 '아이어른들'의 치밀한 작전이었다. 이들을 '철부지'로 만드는 건 어른들의 판타지다. 이미 우리들이 함부로 순진한 학생들이라고 부를 그 존재들은 사라지고 없다. 십대들의 배반은 이런 판타지를 뚫고 출현한 생경한 외설성이다. 지금 한국사회가 참담해하는 건 바로 이 외설성 때문이다. 이 외설성이 드러내는 건 후안무치한 가담자들의 부도덕성이 아니다. 오히려 이 사건이 말려 들어가 있는 그 지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옥도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부정행위 가담자들에게 아무런 윤리적 거리낌이 없었다는 사실에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들은 자기들만의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금전적 대가보다 "친구의 부탁"으로 이번 일에 가담했다는 진술이 이를 뒷받침한다. 말하자면 이들은 친구들 간의 윤리를 위해 세상의 윤리를 위반한 것이다. 이건 흔하디 흔한 어른들의 부정행위와 다른 차원에서 작동한다. 정작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할 건 바로 이렇게 자기들만의 윤리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내면세계다. 이들을 '범죄자'나 '희생양'으로 간편하게 대상화시키는 건 이들 자신의 미래로 보나 우리 사회 전체로 보나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경찰의 발표나 언론보도에서 공히 사건 가담자들의 목소리가 깨끗이 소거되어 있다는 건 이 긴박한 외설성마저 외면하려는 기제가 여전히 한국사회에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걸 증거하는 것이어서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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