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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의 ‘승리 신화’ 너머로 잊혀진 5월 투쟁의 패배
6월 항쟁의 ‘승리 신화’ 너머로 잊혀진 5월 투쟁의 패배
  • 박강수
  • 승인 2021.06.04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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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책_『대중과 폭력』
김정한 지음|후마니타스|196쪽

 

고립되고 실패했던 대중운동에 대한 복기

1987년 체제가 아니라 1991년 체제다

 

2018년 공개된 권경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1991, 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1987년 이한열 이후 1991년 김귀정까지 4년 동안 불의한 국가 권력에 저항하다 희생된 사람이 120명에 달한다”. 4년간 120명. 그 절정부에 1991년 5월이 있다. 4월 26일 명지대생 강경대가 백골단의 무도한 진압에 희생됐다. 이로부터 촉발된 대규모 시위와 ‘분신 정국’을 거치면서 11명의 생명이 거리에서 짓밟히거나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바스러졌다. 거듭되는 폭력과 죽음 속에 사람들이 표류한 틈을 타 지배세력은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을 조작하며 역습에 나섰고 야당과 여론이 등을 돌리면서 투쟁도 끝이 났다.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벌어진 일이다.

6월 항쟁의 열기와 직선제 쟁취라는 민주화 서사는 이 앞에서 무색하다. 『대중과 폭력』 개정판 서문에서 저자 김정한은 이렇게 썼다. “1991년 5월 투쟁의 실패라는 시점에서 보면 1987년 6월 항쟁이 민주화의 승리라는 관점은 지나치게 신화화되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6월 항쟁의 승리가 5월 투쟁의 패배로 이어진 것인데, 6월 항쟁은 그 주역이라는 86세대가 제도 정치에서 입신양명할수록 그들과 함께 더욱 신화화되었고 5월 투쟁은 사실상 잊혔다”. 노태우 당선과 3당 합당, 공안 통치로 이어지는 1987년 직후 4년의 기간은 6월 항쟁으로 가속화됐던 민주화의 흐름에 역회전이 걸렸던 시간이다. 이 반동을 막아서고자 온 몸을 내던졌던 5월 투쟁이 실패로 끝나면서 반쪽 짜리 민주화는 한국사회의 기본값이 됐다. 이것이 ‘민주화 신화’의 전말이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1991년의 기억은 한국사회를 재규정하는 단서가 된다. 요컨대 홍기빈은 <경향신문> 기고글에서 “’87년 항쟁의 신화’는 86세대의 ‘자뻑’이 만들어낸 날조된 역사일 뿐”이라고 질타하며 “87년의 혁명이 91년에 어떻게 소멸했는지” 직시해야 한다고 썼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영광스러운 87년의 연속이 아니라 헬조선의 씨앗이 뿌려진 91년의 연속”이고 따라서 지금 우리를 규정하는 힘은 ‘87년 체제’가 아니라 ‘91년 체제’라는 것이다. 이 논점을 이어받아 장석준은 <프레시안> 칼럼에서 “87년의 어정쩡한 승리(?)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1991년의 분명한 패배가 이후 한국 사회의 행로를 결정했다고 평하며 “촛불을 87년의 사이비 승리와 연결하는 서사가 91년이라는 진실의 순간과 대조하며 다음 과제를 채근하는 몸부림을 압도한다”고 개탄했다.

승리가 아니라 실패를 기억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대중과 폭력』은 그 실패의 기억에 대한 최초의 분석서이자 가장 중요한 참고서로 꼽힌다. 당대 현장의 절망을 거리에서 체험한 저자는 1991년 5월 투쟁을 분석한 석사논문을 1998년 책으로 엮었고 30주기인 올 5월 다시 개정판을 냈다. 그는 5월 투쟁이 계급운동도 시민운동도 아닌 ‘대중운동’이었다고 규정하며 폭력과 혼돈에 대한 대중의 양면적 속성이 운동의 급격한 부흥과 가파른 해산을 낳았다고 봤다. ‘폭력과 죽음’이라는 투쟁의 언어가 대표적이다. ‘백골단의 폭력과 청춘들의 죽음’은 시간이 흐르면서 ‘운동권 시위대의 폭력과 동지에 의해 사주된 죽음’으로 의미망이 바뀌었고 대중도 이를 암묵적으로 승인했다. 거듭되는 분신과 죽음에 대한 감정이 분노에서 공포로 옮아갔던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대중의 경향성으로부터 “대중운동이 반드시 진보로 귀결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끌어내면서 “이런 대중운동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지는 못했다”고 분석한다. 1991년 대중운동은 실패했고 이 실패와 함께 1987년의 기세도 사그라졌다. 바로 이때 “헬조선이 시작되었고”(홍기빈), “오랜 지배 세력과 단호히 결별하길 겁내는 민주주의가 고착화”(장석준)됐다고 ‘1991년 체제’에 주목하는 목소리들은 강조한다. 달력을 넘길 때마다 동지의 장례일자를 새겨 넣어야 했던 한 시대의 트라우마 속에 이른바 ‘기득권이 된 민주화 세력’을 반추하는 단서가 깃들어 있는 듯 하다.

 

박강수 기자 pp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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