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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서평:『인지심리학』(이정모, 아카넷, 2001)
본격서평:『인지심리학』(이정모, 아카넷, 2001)
  • 이재호 중앙대
  • 승인 2004.11.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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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철학으로 '인지' 탐색…탈데카르트적 비판 적절한가

이재호 / 중앙대 심리학

이 책은 인지심리학을 전공한 평자조차 인지심리학의 넓이와 깊이의 극한이 어느 정도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며, 나아가 얼마나 많은 학문 영역에 연계되었으며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연계될 가능성이 있는 지를 새삼 깨닫게했다. 인지 이론이 어디서 흘러왔고 어디로 흘러갈 지에 대한 과거와 미래의 흐름도를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인지’가 인지심리학의 구도에서 벗어나 인지과학의 조망틀에서 재조명되어야 하는 새 지평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피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과학이론이나 과학철학이 일반 학문의 의의와 방향을 제공하는 것에 반해 인지 이론과 결과들이 역으로 인식론, 과학이론, 및 과학사에 끼친 영향력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의는 이 책의 백미다.

가장 돋보이는 이 책의 특징은 첫째, 어떻게 인지심리학이 형성되어 온 지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기술한 부분이다. 평자도 처음 듣는 심리학 관련 학자에서부터 아마 철학에서도 자주 언급되지 않는 생소한 철학자들로부터 인지심리학과 인지과학의 연원을 찾아내고 있다. 혹시 이 책이 인지심리학이 아니라 심리학 전반이나 과학 이론의 역사를 다룬 책으로 의심될 수 있다.

둘째는 인지심리학의 개념적 기초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인지심리학의 이론과 발견이 무엇이며 다른 학문과의 연결되는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인지심리학적 연구 이론과 그 방법의 배경에 대한 논의는 일반 심리학과 과학의 방법론의 수준을 넘어선다. 이 부분만 정리하여도 한 권의 두터운 책이 만들어질 수 있을 정도다. 더욱이 인지심리학이 심리학에 안주하는 학문 영역의 역할을 넘어서서 인지과학의 중심에서 상하좌우 학문을 연계하는 역할 기능에 대한 저자의 논리적 연결, 주장 및 논의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다.

셋째는 미래에 대한 인지심리학의 조망이다.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인지의 연구를 개관하고 논의하는 과정만으로도 이 책의 사명은 다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기존의 인지심리학이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지 못함에 안타까워하면서 마음과 인지에 대한 개념적 재구성을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다. 인지심리학과 인지과학의 틀의 재구성 방향에 대한 저자의 통찰과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전통적으로 철학이나 심리학에서는 인간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유기체로 보았지만 실제는 다르다. 그 이유는 합리적 사고는 무한한 시공간의 제약을 모두 고려해야 하지만 실제 인간은 정보처리적 제약을 만족하기는 불가능하며, 인간의 합리성을 이상적이고 탈맥락적으로 규정한 결과이기에 현실적이고 맥락적인 제약을 고려한 준거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하게 주장하였다. 이미 뇌 수준에서도 뇌를 구성하는 복잡한 뉴런의 연결은 개인의 대뇌에 고립되지 않고 개인과 개인의 사회적 연결로 구성되어 있는 분산적이고 확산적인 인지가 존재한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저자는 전통의 마음과 인지 개념이 우물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제는 마음과 인지의 개념을 그것이 진화하고 지금도 작용하고 있는 세상 속에 던져 놓고 그것의 근원적 합목적성과 생태학적 의미와 활용가능성을 논의할 것을 주장했다.

인지심리학은 사고의 추리나 판단이외에도 지각과 주의, 기억과 언어와 같은 주요 영역들이 있다. 이들 영역 또한 사고의 추리와 판단의 합리성의 비판에 비견되는 새로운 재구성적 틀에서의 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언어의 처리에 관한 이론들에서도 이해와 표상의 완결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적절성과 불완전성을 강조하는 주장이 있다. 이들 견해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인지, 의식, 사회, 문화의 제약이 완전하게 표상되기보다는 그들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계속적으로 갱신되는 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지의 하위 영역 각각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가 추가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가 데카르트의 마음, 인지를 넘어서서, 지각원리에 바탕한 스피노자적 마음, 인지로의 재개념화의 필요성을 언급하였지만 이 작업이 세부 하위 인지영역과 연관하여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시사가 부족하다. 이 작업은 앞으로의 국내외의 인지심리학, 인지과학의 과제로 남는다고 본다.

인간의 인지는 의식적 수준에서 외현적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암묵적인 수준에서도 작동하기도 한다. 인간의 사고나 언어에서 불충분한 인지처리의 특성이 의식적 인지의 한계로 인한 비합리성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전통적 합리성 논리에 의한 판단인 것이다. 특히 이 책에서 지적한 인지의 개인성, 탈맥락성, 고립성, 추상성 등에 대한 탈데카르트적 비판은 서구 인지에 적용되지만 동양 특히 한국인의 인지에 일반화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 된다. 한국인의 인지는 이미 탈개인성, 맥락성, 관계성, 실제성 등에 근거한 인지가 아닐까. 특히 사고의 합리성의 준거를 살펴본다면 서구의 인지에 대한 대안은 이미 우리의 문화 인지에는 암묵적으로 내재된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이 책의 마지막에 인지의 ‘밖으로 끌음’과 ‘상황적 재구성’은 우리 문화의 인지를 조명함으로써 해답을 찾을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동서양의 인지에 대한 추가적 논의가 기대된다.

과연 ‘인지’란 무엇인가. 이 책은 인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저자는 이 책의 구성과 기술 자체가 저자의 인지이며 독자에게 제공된 인지라고 말하고 있다. 이 단권의 책으로 그 많은 인지 연관 내용을 담고 있기에 너무나 힘들게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더 이상의 후속 편이 있을 수 있을까하는 염려도 뒤따른다. 노드롭 프라이가 그의 대작 ‘비평의 해부’ 안에 서양 고금의 문학을 ‘원형‘이라는 하나의 틀 안에 담고자 하면서 ’도전적 서론’으로 시작하여 ‘잠정적 결론’으로 마무리했듯이 저자는 ‘인지’라는 커다란 주제에 대한 전통적 관점을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구성하자는 도전의 장정을 준비하는 그 서론을 제공했다고 본다. 그가 제시한 논의들이 ‘인지’라는 주제와 관련 있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통합될 때에야 이 책이 의도한 결론이 완성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고려대에서 '시간경과에 따른 대명사 참조해결과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 'The advantage of first mention in Korean: The temporal contributions of syntactic, semantic, and pragmatic factors' 등이 있고, '인지심리학의 제 문제2' 등의 저서가 있다.

 

저자 이정모 성균관대 교수(1944~)

이정모 교수는 서울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캐나다 퀸스 대학에서 ‘정보처리 깊이: 확산적 정보처리, 통합적 정보처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교수의 관심 분야는 의식과 학습 및 기억, 교육 심리학, 인지공학 등으로까지 확장돼 있으며, ‘한국어 지식의 구조와 활용’, ‘과학교육 혁신을 위한 뇌기반 학습과학 기획’ 연구 등으로 결과를 내고 있다. 또한 원서 위주의 인지심리학 분야에 체계적으로 정리된 교재를 지속적으로 발간함으로써 인지심리학의 대중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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