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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_ 보살핌의 체험
학이사_ 보살핌의 체험
  • 공병혜 조선대
  • 승인 2004.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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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가 과연 어떻게 보살핌의 예술이 될 수 있는가. 간호가 실천예술이라는 간호학자들의 견해는 간호의 체험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을 일으켰다. 간호행위가 과연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 간호에서의 미적 체험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아름다움의 경험은 건강과 치유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간호는 과연 예술이 될 수 있는가.

이러한 생각들에 깊이 빨려 들어가고 있을 즈음, 나는 남도의 자연의 정취에 흠뻑 젖어있었다. 나는 이곳의 산천을 바라보면서 정말 예술적이란 생각을 하였다. 봉우리들을 잇는 능선과 그 허리자락들, 거기에 부드럽게 안겨있는 마을과 들녘, 사시사철, 시시각각 햇빛과 바람이 어울려져 빚어내는 색깔과 자태들은 마치 마술을 부리듯 펼쳐내는 자연의 기예인 것이다. 이곳의 산들은 멀리서 힘과 권위를 과시하는 거만함이 아니라, 인고의 세월을 거쳐 고통을 정화시킨 겸손한 어머니의 손길처럼 푸근하고 정겹고 친근하기만 하다. 마치 묵묵히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가 우리가 눈짓도 보내도 자신의 온갖 기교를 동원하여 삶의 생기를 불어넣어 위로와 치유의 선물을 보내주는 것 같다.

나는 이 남도의 자연이 베푸는 아름다움의 체험에서 ‘자연은 예술처럼 보일 때 아름답고, 예술은 자연처럼 보일 아름답다’는 칸트 미학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우리가 경험하는 이 자연의 아름다움은 마치 도덕적 심성을 가진 사람에게 도덕적 세계 창조주가 보내는 일종의 신호이며, 은총이라는 것이다. 예술가는 자연이 보내는 이 은총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자연의 기예를 모방하여 마치 자연처럼 보이는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다. 나는 인간에게 베푸는 이 자연의 기예를 간호에서 보살핌의 태도와 연결시켜 보았다. 자연이 보내는 이 치유의 선물처럼 나이팅게일도 간호에서 진정한 보살핌이란 마치 자연적 생명의 치유력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때 난 문득 소록도에서 간호의 체험을 떠올렸다. 작은 사슴들이 평화롭게 뛰노는 섬. 호수처럼 잔잔한 바닷가 저편에서 눈부신 가을 아침 햇살이 병사로 밀려들어오는 날,  밤새 신경통에 시달려서 몰라보도록  찌그러진 얼굴들. 그 얼굴을 오그라져 펴지지 않는 손가락으로 가리면서 치료실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그들의 얼굴조차 쳐다보는 것이 얼마나 민망스럽고 고통스러웠던가. 나균이 너무도 성급히 그들의 얼굴과 팔과 다리로 향하여 점령해 가는 동안, 나에게 절실히 파고들었던 감정은 숙명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엄청난 모순과 자신에 대한 무력감뿐이었다.

그런데 이 순간에 난 칸트의 숭고미를 떠올렸다. 소록도의 자연은 그 맑은 가을 햇살에 눈이 부셨건만,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마치 자연의 그 혜택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처럼 더욱 깊어지는 고통과 절망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그들이 살아온 고통의 무게에 동참하여 감당하기에는 오히려 두려움과 회피하고 싶은 감정에 눌려 있을 때가 많지 않았는가. 그런데 거기서 난 진정으로 이들을 보살피는 꿋꿋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 상호공감하기 어려운 감성적 두려움과 무능력을 극복하고 그들을 돌보는 데 한점의 흔들림이 없이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모습들에서 일종의 자기 극복을 통해 일어나는 존경심 같은 숭고의 감정을 경험했던 것이다. 숭고의 감정은 자기와 다른 타자와의 모순과 차이라는 감성적 고통을 극복하는 도덕적 자긍심에 의해 솟아나는 인간성에 대한 존중의 감정인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아름다움과 숭고의 감정을 일으키는 보살핌의 태도를 어떻게 지닐 수 있는 건가. 결국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간호사의 미적 도덕적 감수성이 계발될 때, 보살핌의 예술이 되는 것인가. 결국 보살핌의 미학은 결국 사람들 사이의 윤리적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인가. 

나는 보살핌의 실천을 위해서 왜 줄 곳 칸트 미학을 떠올렸는지, 왜  칸트가 ‘아름다움은 윤리적 선의 상징’이라고 하였는지 이해할 것 같다. 진정한 보살핌이란 인간자연의 지닌 치유력을 스스로 되찾도록 생명력을 불어넣어줄 뿐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도덕적 가치감정을 회복하게 하는 예술이 아닐까. 오늘날 급속히 기술적으로 전문화되어 메말라가는 의료실무현장에서 우리 학생들에게 바로 간호 예술을 실천할 수 있는 미적 교육이 진정으로 필요하지 않을 까. 쉴러는 연극 무대는 진정한 도덕교육의 장소라고 했다. 인간 보살핌에 대한 서사적 이야기, 탁월한 보살핌을 실천한 위인들의 이야기와 연극과 영화감상, 문학작품, 무엇보다 자연의 체험을 통한 자연의 치유의 기예를 배울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미적 교육의 장소가 아닐까.

이때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다. 내가 보살핌의 생생한 체험을 이론적 틀에다 덮어씌워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판단 중지가 필요하다. 나의 그 본래의 원초적인 보살핌의 체험으로 돌아가 보자.    

공병혜/조선대·간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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