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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45] “개인주의자는 ‘현재주의자’다”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45] “개인주의자는 ‘현재주의자’다”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1.05.25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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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아르망

한 라이너의 친구로 활동한 에밀 아르망(Émile Armand, 1872~1962)은 그들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자신들의 생각을 사회주의적 아나키즘과 구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이 혁명을 기다리는 것은 대중이 의식과 의지를 얻기를 기다리고 혁명이 올 때까지 자유의 향유를 지연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비판한 그는 현재 자신의 조건 하에서 생활하고, 일상생활에서 사회적 조건에 반발하며, 그들이 공유하는 가치와 욕구에 따라 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옹호했다. 그에 의하면 개인주의자는 ‘현재주의자’로서 “그는 나쁜 추론과 비논리 없이는 자신의 존재 또는 소유를 희생하여 즉시 즐기지 않을 것의 상태를 희생하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에밀 아르망(Émile Armand, 1872~1962)
에밀 아르망(Émile Armand, 1872~1962)

 

파리 코뮌 참가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구세군을 통해 기독교를 받아 들였으나 곧 무신론자가 되었고 20대에 장 그라브(Jean Grave)와 세바스티앙 포르(Sébastien Faure, 1858~1942)가 각각 편집한 잡지를 통해 아나키즘을 접하고, 톨스토이(Leo Tolstoy), 터커(Benjamin Tucker), 휘트먼(Walt Whitman),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영향을 받았다. 여러 잡지를 통해 아나키스트, 평화주의자, 반군사주의자로 활동하면서 그는 여러 번 투옥되었다.

아르망은 로버트 오언(Robert Owen), 특히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와 같은 사상가들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 사상과 실천을 활성화 시켰으며 자유로운 사랑과 개인적 탐구의 자유에 대한 그의 관점과도 연결시켰다. 그리고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의 영향으로 그는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방식과 욕구에 따라 살기 위해 사회적 관습, 도그마 및 합의에 대한 에고이스트적 거부를 수용했다. 그는 아나키즘을 삶과 실천의 방식으로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그는 "그러므로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는 자신의 견해를 공유하고 권위주의가 추방된 상태가 확립 될 수 있게 해주는 다른 개인들에게 자신의 정신을 영속시키기 위해 자신을 재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활동’이라고 부를 자신을 재생산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욕망이고 의지다“라고 했다.

 

“강요된 연대는 무가치하다”

 

그의 사회이론은 다음과 같다. 국가라는 중개자를 통해 지배 계급은 문화, 도덕 및 경제적 조건에 대한 자신의 견해만이 대중에게 침투 할 수 있도록 한다. 그들은 누구도 처벌의 고통 때문에 위반할 수 없는 시민 도그마의 형태로 자신의 견해를 설정한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통치 기간 동안 종교 교리에 도전하는 것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받았으며, 교회의 일반 형태인 국가가 국가의 종교적 형태였던 교회를 대체했다. 그러나 교회와 국가의 목적은 항상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 진정한 신자나 완전한 시민이라는 교리나 법의 노예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아나키스트는 자유가 없이 연대가 부과될 때, 더 이상 권리나 의무에 대한 의문이 없이 계약이 강제될 때에는 가치가 없다고 답한다. 그 강압은 그를 행정관, 입법자, 판사, 경찰의 모습으로만 알고 있는 소위 사회라는 것에 그를 연결하는 유대에서 그를 풀어 준다. 그는 그의 일상적인 관계의 연대만을 지지한다. 허구적이고 강요된 연대는 무가치한 연대이다.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그는 자신과 친밀한 사람들을 더 잘 찾고, 파트의 한 사람이 그것을 원할 때는 언제든 연대나 만남을 끊거나 방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서로 자유롭게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이 규칙을 우정, 사랑, 성적 만남 및 경제 거래에 적용한다. 그는 상호주의의 윤리를 고수하고, 이를 자신의 가치를 선전하는 주된 이유로 보는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를 통해 자신의 자기실현의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본다.

그의 성적 자유에 대한 생각은 푸리에의 네 가지 운동 이론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프루동 같은 일부 청교도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경멸된 것이었다. 푸리에는 인간이 항상 조화롭게 움직이는 뚜렷한 성적인 우주의 패턴을 따라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모든 사람이, 모든 형태의 사랑을 허용하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를 격려하는 여러 번의 만남에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의 세계의 새로운 조직을 제안했다. 이러한 쾌락주의적 개인주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더욱 생생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즉 삶이 제공하는 여러 감각에 더 개방적이기 위한 것이다. “삶의 행복! 삶은 전통적인 존재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람, 산업주의와 상업주의의 지옥을 피하는 사람, 골목과 술집의 악취를 거부하는 사람에게 아름답다. 존경의 제한, ‘그들이 말할 것’에 대한 두려움에 신경 쓰지 않고 그것을 공개하는 사람에게 인생은 아름답다. 개인주의는 묘지의 개인주의나 슬픔과 그림자, 고통과 상처의 개인주의가 아니다. 개인주의는 우리 안팎에서 행복의 창조자이다. 우리는 추구자, 발견자, 실현자로서의 잠재력 덕분에 가능한 한 어디에서나 행복을 찾고 싶다.”

 

“모든 사랑은 자발적 결합의 형성”

 

아르망은 쾌락을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 좋거나 나쁜 것, 유용하거나 해로운 것, 유리하거나 불편한 것으로 분류하지 않고 “내가 인생을 더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유용하다. 나를 싫어하거나 평가 절하하게 만드는 것은 해롭다. 내가 더 온전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즐거움은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줄이게 하는 불쾌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 열정을 판단하는 데 동의하는 한 내 자신이 노예라고 느낀다. 내가 정말로 열정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열정을 구체화하고 내 육체를 정정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아르망은 자유로운 사랑의 중요한 선전가였다. 그는 자유로운 사랑, 자연주의 그리고 그가 동지애(la camaraderie amoureuse)라고 부른 다자간 연애를 옹호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여기에 성적인 결합과 가족, 저기에 자유 또는 난잡함"을 찾을 수 있는 섹스와 사랑 문제에서 다원주의를 옹호했다. 그는 막연한 자유 사랑뿐 아니라 복수 파트너도 옹호했으며, 이를 ‘복수의 사랑’이라고 불렀다. 만년에 그는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파트너에 대한 강한 감정이 없더라도 ‘사랑’을 하는 것에 대해 비난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동지애는 성이 다른 아나키스트 개인주의자들 사이에 체결된 자유로운 결사 계약 (사전 합의에 따라 취소 될 수 있음)을 수반하며, 성적 위생의 필수 기준을 준수하며, 거절, 파열, 배타주의, 소유욕, 유일성, 속임수, 변덕, 무관심, 들뜸, 타인에 대한 경시, 매춘과 같은 사랑의 경험의 특정한 위험으로부터 다른 계약 당사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Alexandra Kollontai, 1872~1952)
알렉산드라 콜론타이(Alexandra Kollontai, 1872~1952)
소련의 사회주의 노동운동가이자 정치인, 자유연애론 등을 주장하며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복리후생 운동 등을 펼쳤다.

 

만년에 그는 개인주의의 목표 중에서 순수한 성적 목적의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또는 그 모든 것의 조합을 위한 자발적 결합의 형성을 설명했다. 나아가 개인의 성을 변경할 권리를 지지하고 금지된 쾌락, 비순응 주의적 사랑(개인적으로 관음증에 대한 경향이 있음) 및 남색을 회복하려는 의지를 밝혔다. 이로 인해 그는 육체적 폭력을 배제하면서 ‘성적 비순응자’라고 부르는 것을 더욱 확대했다. 그는 알렉산드러 콜론타이(Alexandra Kollontai)와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와 같은 사람들의 저술을 번역하고 실제의 성적 경험을 통해 동지애를 실행하는 자유연애협회를 설립했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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