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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분업하는 공간·노동, 착취는 언제 끝나나
끊임없이 분업하는 공간·노동, 착취는 언제 끝나나
  • 김재호
  • 승인 2021.05.28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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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경제지리학개론』 대니 맥키넌, 앤드루 컴버스 지음 | 박경환, 권상철, 이재열 옮김 | 사회평론아카데미 | 544쪽

이주민 노동자들의 사망은 계속되고
초국가적 엘리트들은 자본을 확장한다

2009년 7월, 중국의 청년 선단용(25세)이 12층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아이폰4 시제품 분실에 대한 책임을 추궁받았다. 선단용은 폭스콘에서 일했다. 폭스콘은 대만 기업으로서 중국 선전(Shenzhen)의 대규모 산업단지로 자리잡았다. 애플은 선전의 롱화공장에 조립라인을 교체해 생산속도를 높이라고 요구했다. 근로자 안전과 작업 규정이 무시돼 결국 한 청년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선단용이 중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일했더라면 어땠을까.  

폭스콘은 약 40만 명을 고용하여 애플, 델, 삼성 등 글로벌 기업에 전자제품 계약생산을 하는 업체다. 청년층 이주자가 대부분인 폭스콘의 노동자들은 시급 1달러를 받으며 하루 10시간씩 근무했다. 이 책의 공저자들은 “극단적 테일러리즘의 업무속도, 저성과자에 대한 동료간 비난도 포함된다”(263쪽)고 밝혔다. 이 때문에 자살시도 18건, 14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글로벌화와 지역경제의 파탄, 이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과 환경위기. 이를 집약하는 학술용어는 ‘경제지리학’이다. 좀 더 구체적으론 ‘지리정치경제학’이라 부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장소(공간)’이다. 옮긴이들은 이 책의 장점에 대해 “금융위기와 긴축의 정치, 노동의 재구조화, 탈글로벌화, 포스트신자유주의적 발전, 에너지 전환, 대안경제(지리)운동 오늘날의 중요한 현안을 풍부한 사례와 함께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이라고 서문에 적었다. 

장소가 가져오는 정치경제학적 변화

세계은행은 각국의 노동자 7분의 1이 이주민이라고 예측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땅이 넓은 나라는 시골에서 도시로의 장소 이동은 흔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에도 2019년 5월 기준, 15세 이상 국내 상주 외국인은 약 132만 명이다. 이들 중 약 86만 명이 취업자이다. 이주민은 이제 국가경제를 이끌어가는 데 필수노동력이다. 이들은 여전히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 업종에서 일한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포천의 한 여성 이주노동자는 영하 18도 한파 속에서 사망했다. 난방이 제대로 안 된 비닐하우스에서 지내다 참변을 당한 것이다.

국제노동조합연망에 따르면, 2020년 카타르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네팔과 인도의 이주노동자 1천200명이 죽었다고 보고했다. 2013년까지 월드컵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사망한 숫자다. 공저자들은 “상당한 임기응변, 창의력, 용기를 필요로 하는 국제 노동 이주는 노동자 행위성의 증가로 볼 수 있지만, 이주 노동자는 글로벌 경제에서 지속적으로 착취당하는 집단”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자 행위성은 계급과 장소의 측면에서 극단적으로 갈린다. 런던, 뉴욕, 도쿄, 파리 등을 자유롭게 오가며 글로벌 금융과 경영을 이끄는 초국가적 자본가 엘리트집단이 존재한다. 이들에게 공간은 자본의 확장성 수단으로 간주된다. 초국가적 엘리트뿐만 아니라 학자, 과학자, 컨설턴트, 변호사 등 고숙련 노동자들 역시 공간적 특권을 지닌다. 대부분의 이주민 노동자들에게 공간은 생존이다. 공간이 누구에겐 죽음의 장소로, 또 다른 누구에겐 돈벌이의 수단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갈수록 노동은 공간분업한다. 공저자들은 “노동의 공간분업은 생산과정의 여러 부분이 그에 적합한 여러 지역에 위치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신국제 노동분업이 발생한다. 선진국은 주로 경영전략 수립, 연구개발 등에 집중한다. 저임금 국가는 일상화 된 제조와 조립의 과정에 머문다. 

그렇다고 너무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책에는 대안경제공간이 제시된다. 두 명의 페미니스트 지리학자인 캐서린 깁슨 웨스턴시드니대 교수(사회와 문화 연구소)와 줄리 그레이엄(1945∼2010)은 필명 ‘깁슨-그레이엄’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자본 중심적인 경제 계급 관계를 벗어나 언어, 담론, 젠더, 인종, 정체성 등을 아우르는 다양성 경제 개념을 제시한다. 자본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깁슨-그레이엄 역시 장소가 자본중심적 경제관계를 형성해 간다며, 반자본중심적인 ‘공동체경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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