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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고등교육 지원은 국가경쟁력 투자"
바이든 "고등교육 지원은 국가경쟁력 투자"
  • 박강수
  • 승인 2021.05.2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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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 공공성 높이는 미국과 일본

고등교육 구조의 측면에서 한국과 닮은꼴인 국가로 미국과 일본을 꼽아볼 수 있다. 민간 재정 비중이 높고 사립대가 많으며 등록금은 비싼 나라들이다. 비슷한 구조 탓에 비슷한 위기까지 공유된다. 이들 나라는 교육의 양극화와 학령인구 감소, 대학 재정난 등 ‘고등교육의 위기’를 앞서 겪었거나 함께 겪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눈 여겨보지 않을 수 없는 참고 표본이다. 각각의 대응 방식에서는 고등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함께 읽힌다.

 

미국, “고등교육은 계층사다리…무상교육으로 공공성 확대”

 

세계 최고의 등록금이라는 악명을 누려온 미국에서는 ‘무상교육’의 바람이 분다. 지난달 2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 의회 연설에서 ‘미국가족계획(The American Families Plan)’을 발표했다. △3~4세 취학 전 아동을 대상으로 한 2년 무료 교육 △고등학교 졸업생을 위한 커뮤니티칼리지(2년제 공립대학) 무상 교육 △펠그랜트(저소득층 학생들의 주거비와 학비를 보조하는 연방재정 지원금) 지원 확대 등 내용을 담은 정책 구상이다.

소요 재원은 총 1조8천억달러(약 2천30조원)로 3~4세 아동 교육에 2천억달러, 커뮤니티칼리지 무상 교육에 1천90억달러가 쓰인다. 앞서 발표되거나 시행 중인 미국구호계획, 미국일자리계획과 함께 바이든 행정부 국정 대전환의 한 축이다.

 

지난달 28일 미국 의회 합동연설 자리에서 '미국 가족 계획'을 발표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 사진=미국방송공사(ABC) 유튜브 캡처
지난달 28일 미국 의회 합동연설 자리에서 '미국 가족 계획'을 발표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 사진=미국방송공사(ABC) 유튜브 캡처

 

핵심은 교육의 공공성 강화다. 기존 의무교육기간 12년에서 앞 뒤로 2년씩 총 4년이 늘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21세기에 (의무교육) 12년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며 “미국인들은 다가올 새로운 경제의 이득을 나누고 소득을 높이고 능력을 쌓기 위해 추가적인 지원을 받아야 하고 받을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고등교육에 대한 권리를 폭넓게 보장해 계층사다리를 복원하는 일이야말로 국가경쟁력에 대한 투자라는 의미다.

이러한 정치관은 미국가족계획보다 한달 앞서 발표된 2조2천500억달러 규모의 사회인프라 투자 방책인 ‘미국일자리계획’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발표 자리에서 “우리는 중산층을 재건할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계층 이동의 통로 역할을 해온 커뮤니티칼리지에 대해서는 이미 주정부 단위에서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곳이 많다. 대표적으로 테네시주는 2015년에 고등학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커뮤니티칼리지 학비를 면제해줬고 2017년부터는 그 대상을 성인 전체로 확대했다. 이 외에도 오리건 주, 미네소타 주, 뉴욕 주 등이 무상교육을 실시 중이다. 지난 두 번의 미 대선 경선 과정에서도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등 민주당 내 진보 정치인들 주도 아래 ‘공립대학 무상교육’은 주요 공약으로 떠올랐다. 주정부의 정책 실험이 연방 전체의 국정 기조로 수용된 셈이다.

다만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 과세구간 증세 등을 골자로 한 재정 마련 방안은 공화당의 반대에 부딪혔고 “학비 지원보다는 교육기관 수준 개선이 필요하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어 ‘대전환’의 앞길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일본, “경상비 지원 법제화하고, 대형 사립대는 정원 통제”

 

일본 고등교육의 현실은 한국 입장에서 더 공감할만한 구석이 많다. 일본의 전체 대학 중 82.4%(917개 대학, 2018년 기준)가 사립대학이다. 한국은 2020년 기준 86.4%가 사립대다. 대학 등록금 순위에서도 일본과 한국은 나란히 OECD 3위, 4위다. 두 나라 모두 지표만 놓고 봤을 때 고등교육의 책무와 비용이 상당부분 민간에 외주화돼 있다.

저출생∙고령화, 지방소멸의 파도를 먼저 맞은 일본에서는 이미 2006년에 정원을 채우지 못한 대학이 전체 40%에 달하면서 ‘사립대 파산’ 우려가 제기됐다. 사립대 비중이 높고, 사립대 수입의 등록금 의존도가 높으니 학령인구 감소는 대학 재정의 위기로, 나아가 고등교육 전체의 위기로 직결된다. 익숙한 그림이다.

 

2018년 구직 단합대회에서 구호를 외치는 일본의 대학생들. 사진=EPA/연합
2018년 구직 단합대회에서 구호를 외치는 일본의 대학생들. 사진=EPA/연합

 

다만 몇 가지 제도적 차이가 있다. 첫 번째는 ‘사립학교진흥조성법’이다. 1975년 제정돼 이듬해부터 시행된 이 법은 ‘인건비 등 경상비에 대해 사립대학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보조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9년 기준 일본 문부과학성이 사립대학에 지급한 경상비보조금은 총 3천166억엔(약 3조2천700억원)이다. 학교당 3억6천774만엔, 학생 1명당 15만엔 수준의 교부금이다. 대학 수입의 10%를 보조하는 수준이지만 사립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규모 대학(단일단과대, 학과 2~4개 규모)에게는 의미가 크다.

일본 대학 정책 전문가인 정원창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선임연구원은 “한국의 사립대 지원은 목적성이 있고 사업성 위주라 정작 대학이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에서는 도움이 안 된다”며 “사립대에 대한 경상비 지원이 법제화돼 있다는 것은 큰 차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일본 정부는 지난해 팬데믹 위기로 모든 고등교육기관이 원격 수업으로 전환한 이후 대학경영이 악화되자 사학조성지원금 교부 시점을 앞당기는 방식으로 신속한 대응을 했다.

엄격한 정원통제 정책도 병행 중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016년부터 입학정원을 초과한 사립대학에 대해 사학조성금을 깎거나 지원하지 않는 방식의 통제 정책을 시행 중이다. 대학입학자의 4분의1이 도쿄 소재 대학에 집중되고 오사카, 교토, 가나가와 등 대도시권 사립대에 학생이 몰리는 상황에서 나온 타개책이다. 그 결과 사립대의 정원미달 비율은 2016년 44.5%에서 2019년 33%까지 점진적으로 개선됐다.

대학들의 자구책도 눈에 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대학들 사이에 자발적으로 조직된 ‘대학컨소시엄’은 4년제 국공립대부터 사립대, 전문대까지 아우르는 지역별 대학 네트워크로 발전했다. 이 자발적 네트워크는 대학간 공동수업이나 학점교류 등 한정된 대학 자원을 공유해 교육 효율을 높이고, 지역사회와 연계해 연구 성과를 공헌하는 교류의 장으로 기능한다. 한국도 지난해부터 교육부 주도하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 플랫폼’ 사업을 운영 중이다.

다만 같은 사립대 중심 환경이라도 한국과 일본의 고등교육 체계는 다르다. 정원창 선임연구원은 “일본은 거점 국립대와 몇몇 대형 사립대, 그리고 다수의 소규모 지방 사립대로 역할 분배가 분명한데 반해 한국은 국립대보다 수도권 사립대의 위상이 높다”고 차이점을 짚었다. 국가적 연구 역량에 집중하는 국립대와 지역발전 공헌 등을 목표로 한 사립대의 역할이 뚜렷하게 나눠져 있는 일본에서는 맞춤형 정책 지원이 더 용이하다는 것이다.

 

박강수 기자 pp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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