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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대학의 협력, 가르치지 말고 먼저 배워야 한다.
지역과 대학의 협력, 가르치지 말고 먼저 배워야 한다.
  • 양진오
  • 승인 2021.05.26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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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오의 거리의 대학 ⑫

“지역대학보다 먼저 지학협력을 이끈 지역 활동가들의 노고를 배워야 한다. 
이게 북성로대학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배운 경험이다.”

지학협력이 대학교육을 혁신하는 최선의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지학협력을 한자로 쓰면 이렇다. 지학협력(地學協力). 어떤 뜻인가? 지학협력은 표면적으로는 지역과 대학의 협력을 뜻한다. 본질적으로는 지자체가 대학혁신의 주체로 나서는 방안을 말한다. 지자체와 대학의 운명 공동체적 관계를 고려하면 지학협력은 지역과 지역대학의 위기를 타개할 합리적 방안일 수 있다. 그런데 지학협력을 말하기에 앞서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최근 지방소멸을 예고하는 언론매체가 한둘이 아니다. 언론매체마다 지방소멸을 시대의 대세처럼 거론한다. 언론매체들은 또 이렇게 주장한다. 지학협력으로 지방소멸을 막아야 한다고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어떤 전제일까? 바로 지역을 깊게 배워야 하는 전제가 요청된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가르치려 드는 교수들

대학 밖에서 그리 환영받질 못하는 교수들이 있다. 심하면 먹물이나 꼰대로 불리기도 한다. 물론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왜 존경받는 교수가 없을까? 대학 안팎에서 존경받는 교수가 더러 있겠다. 그분들을 제외하고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대학 밖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교수들은 누구일까? 일일이 거론하기는 어렵지만 대개 이런 공통점이 있기는 하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가르치려 드는 교수들이 대개 환영받질 못하는 거 같다. 

자, 다시 지학협력을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지학협력이 불가피해 보이기는 한다. 특히 지역 학령인구의 감소, 청년세대의 수도권 유출 등 가중되는 위기에 직면한 지역대학으로서는 지학협력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럴수록 정도를 걸어야 한다. 어떤 정도인가? 지학협력을 이끈 활동가들의 노고를 먼저 배워야 한다. 지학협력을 말하기 이전에 지역을 배워야 한다는 거다. 달리 말하자면 지역대학보다 먼저 지학협력을 이끈 지역 활동가들의 노고를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이게 북성로대학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배운 경험이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대구 원도심에는 여러 유형의 사회적기업과 단체가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북성로대학 가까이에 인문학 기반 예비사회적기업 대구 하루가 있다. 대구 원도심에 대구 하루만 있는 게 아니다. 독립영화 전용관 오오극장이 있다. 대구 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에서 만든 희움위안부역사관도 있다. 지속 가능한 여행을 꿈꾸는 플라이 투게더가 있다. 거론하자면 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이들 외에도 대구 원도심에 진출한 사회적기업과 단체가 많다. 그런데 결론을 말하면 이렇다. 다들 힘들다. 대구여서 힘들고 2020년 대구를 기습한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힘들다. 아니 본래 이런 일이 힘든 거다. 왜 그리 힘이 들까?

대구 하루만 하더라도 그렇다. 인문학 기반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출발한 대구 하루(대표 박승주)는 일본어, 일본문화 북카페로 특화된 공간이다. 식민지 시대 근대건축물을 리노베이션한 대구 하루의 외형과 내부 구조는 대단히 ‘모던’하다. 대구 하루는 모던한 장소성을 배경으로 시민 인문학 강좌를 매년 기획, 운영해 왔다. 2020년 가을에는 와디즈 펀딩으로 ‘대구 원도심을 걷다’라는 주제의 인문학 강좌를 기획하기도 했다. 나는 ‘구상과 이중섭의 백 년 우정’이라는 제목의 강좌로 대구 하루가 기획한 펀딩에 참여했다. 그런데 이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다. 강좌 기획과 홍보, 그 진행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대구 하루에서 진행된 ‘대구읽기모임’. ‘대구읽기모임’은 식민지 대구 근대를 공부하는 지역 연구자들의 모임이다. 지난 3월 26일 촬영. 사진=양진오
대구 하루에서 진행된 ‘대구읽기모임’. ‘대구읽기모임’은 식민지 대구 근대를 공부하는 지역 연구자들의 모임이다. 지난 3월 26일 촬영. 사진=양진오

지역 활동가들에게 먼저 배워야 한다

그러면 나는 지학협력을 한답시고 대구 하루를 상대로 컨설팅을 해야 할까? 아니면 이런 저런 사업을 해보자고 사업 제안서를 들이밀어야 할까? 그런 게 아닐 게다. 먼저 해야 하는 건 어려운 환경에서도 시민 인문학 강좌의 비전을 포기하지 않는 대구 하루를 인정하고 응원하는 거다. 지역대학의 인문학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열린 마음으로 대구 하루의 존재를 인정하고 응원해야 한다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이런 거다. 지학협력을 이끈 활동가들의 노고를 먼저 배워야 한다는 거다.  

이런 사례도 있었다. 북성로대학 인근에 플라이 투게더(대표 서욱경)가 있다. 공정여행을 추구하는 예비사회적기업이다. 코로나19 때문에 2020년에 고생이 컸다. 그러면 플라이 투게더가 문을 닫아야 하나. 플라이 투게더가 문을 닫지 않았다.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예전처럼 모객하여 해외로 나갈 수는 없다. 대신 대구 원도심 골목 투어로 여행 방식을 변경했다. 변경해도 그냥 변경한 게 아니다. 드로잉 투어 방식으로 변경한 거다. 죽으란 법은 없었다. 나는 어떻게 응원했을까? 플라이 투게더 대표가 대구 원도심 골목을 여러 차례 답사했다. 그렇게 발품을 팔더니 골목 하나하나가 채색할 수 있는 밑그림으로 탄생했다. 나는 펀딩 사이트에 탑재된 드로잉 키트를 샀다. 플라이 투게더 대표의 요청에 따라 홍보 촬영에 동행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친구가 되어 주었다.

플라이 투게더의 내부 장면. 플라이 투게더를 방문한 학생들에게 건물의 특징을 서욱경 대표가 설명하고 있다. 2020년 10월 20일 촬영. 사진=양진오
플라이 투게더에서 제작한 드로잉 투어 키트의 일부(2020년 10월 23일 촬영). 대구 원도심 골목의 풍경을 채색하는 방식의 드로잉 키트이다. 2020년 10월 23일 촬영. 사진=양진오

지역대학이 힘들다고 한다. 문 닫을 지역대학이 속출할 거라 한다. 그런데 지역대학보다 먼저 지학협력을 이끈 활동가들에게 이런 말은 엄살로 들릴 수 있다. 정말 힘든 이들이 있다. 지친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내가 뭘 가르칠 수 있을까? 인문학은 이런 겁니다, 여행은 이런 겁니다. 우스운 얘기다. 난 지학협력의 활동가들에게 더 배워야 하는 거다. 그렇게 해서 먹물과 꼰대 티를 확실히 털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나는 지학협력을 나와 지역을 살리는 배움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양진오 대구대 교수·한국어문학과
한국 현대문학과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다. 대구 원도심에 인문학 기반 커뮤니티 공간 ‘북성로 대학’을 만들어 스토리텔링 창작, 인문학 강연 및 답사, 청년 창업 컨설팅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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