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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13] 불편함은 곧 불행인가?
[한민의 문화등반 13] 불편함은 곧 불행인가?
  • 한민
  • 승인 2021.05.24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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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행복은 매우 자주 긍정적 정서로 정의된다. 불편함은 긍정적 정서라 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불편을 느끼는 것은 불행하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일상의 불편한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행복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부정적 감정이라고 무조건 거부하다보면 부정적 감정을 통해 행복에 이르는 길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창작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예술가는 불행한가? 널리 통용되는 행복의 정의에 따르면 그렇다. 불안, 초조, 우울, 좌절, 절망... 그렇게 불행한 사람이 없다. 예술가들이 겪는 창작의 고통을 초조함이라는 말로 다 형용할 수 있을까. 

자신을 쥐어짜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은 괴로운 일이다. 흔히 통용되는 행복의 개념으로는 대단히 불행한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일들을 하는가? 창작의 결과물을 보기 위해서? 지옥불 같은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던 음악가는 곡이 완성되는 순간 천국을 맛본다. 해방감과 성취감, 자부심이 뒤섞인 짜릿한 감정일 것이다. 

그러나 행복연구들은 성취는 지속적인 행복을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쾌감은 곧 사라지고 허무감이 찾아온다. 예술가들이 곧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는 이유는 또 다른 성취를 위해서일까? 창작의 욕구를 성취만을 위한 것이라 볼 수는 없다. 창작의 욕구는 자기실현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매슬로우에 따르면 자기실현의 욕구란 보다 나은 존재가 되려는 욕구이며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는 이들에게는 좀처럼 발견할 수 없는 욕구다. 이들은 존재의 실현을 위해 자신을 유혹하는 안정과 평온을 거부하고 어쩌면 고통의 연속일 수 있는 길을 기꺼이 선택한다. 

뭔가 있어보이고 아름다운 어감과는 달리, 자기실현의 과정은 꽃길이라 부르기 어렵다. 피를 말리고 잠못 드는 밤이 계속되고 때로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마음에 없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자기실현을 향해 가는 이들은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가란 직업은 자신이 발견한 자기의 모습이며 창작은 그가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하도록 하는 일이다. 따라서 예술가들의 창작은 자기실현 이전에 존재의 증명이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삶을 불행하다 말할 수 있을까.

학생, 학자(대학원생)의 불편함도 마찬가지다. 다들 경험이 있으시겠지만 공부를 즐겁게 하기는 힘든 노릇이다. 고통은 모르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학자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하며, 그 과정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를 증명(실현)한다. 

선택의 여지는 있다. 모르는 게 약이라 했다. 모르는 채로 있으면 편안한 상태로 머물게 된다. 행복이 긍정적 정서라면 무엇이든 모르는 채로 있는 편이 훨씬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학자들은 알기로 마음먹었기에 고통으로 가득한 이 길을 걷는다.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들도 그렇다. 시민이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는 현대사회의 주체다.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 늘 즐겁기만 할 수는 없다. 시민들은 때로는 괴롭고 고통스럽게 우리 사회의 현실을 목도해야 하며 때로는 분열과 갈등과 직면해야 한다.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피를 흘려야 한다. 쌓여있는 쓰레기를 치우고 썩은 살을 도려내는 일은 불편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동반한다. 당장 편하자고 쓰레기를 방치하고 곪아가는 상처를 덮어놓는다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뻔하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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