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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에 대하여: 김용옥 『동경대전』에 대한 잡상
‘무위’에 대하여: 김용옥 『동경대전』에 대한 잡상
  • 신철하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교수
  • 승인 2021.05.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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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신철하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교수

‘기레기’들에 의해 윤여정의 조연상 스캔들로 소란스럽긴 했지만, 93회 오스카상 시상식의 초점은 정확하게 「노매드랜드」였으며, 그것을 관통하는 화두는 미국식 자본, 미국식 세기의 종말을 세계에 선언하는 데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직접 제작하고 연기한 이 영화에서 주인공 펀(프랜시스 맥도먼드 분)은 두 번의 탈주를 감행한다. 탈주는 그들이 그토록 열망하며 쌓아 올린, 그러나 궁극적으로 사상누각에 불과한 제국 엠파이어(네브라스카, 혹은 사우스다코다, 네바다, 나아가 양키아메리카)로부터의 그것임과 동시에 종말을 향해 급전직하하고 있는 미국식 자본[시스템]에 대한 결별의 사인이다. 그녀의 사인은 무(無)로 향하는 그것이다. 펀의 내밀한 자기 죽이기는 그런 면에서, 그리고 역설적으로 생명의 대긍정을 향한 역동적 근미래 운동이다. 최초 그 땅의 인민들이 희망했던 자연주의를 향한 그 열망은 은밀하게 강렬하면서, 한편 충동적 허무주의를 배면에 깔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자연주의를 향한 리비도와 허무주의는 무위의 본질이다. 노자가 최초에 ‘爲無爲則無不治(무위의 정치)’라고 직시했으며, 최제우와 최시형이 이에 호응하여 ‘曰吾道 無爲而化矣…造化者 無爲而化也(동학의 진리는 무위의 진리다)’, ‘造化 玄妙無爲(조화 현묘무위)’라고 설파한 19세기 최고의 인민 생명운동이었던 무위는 다른 한편, 17세기 소피노자의 ‘신즉자연(Deus sive Natura)’을 통해 기하학적 구성과 논증으로 오늘-여기 최고 최대 생명의 화두로 재소환되고 있다. 스피노자를 정독하는 과정에서 그 심연을 엿본 들뢰즈는 그가 말년에 심혈을 기울여 기획한 『시네마Ⅰ』에서 “정동에서 행동으로 넘어가는 사이(정동-이미지image-affection와 행동-이미지image-action 사이)에 충동-이미지image-symptom가 존재한다. 충동-이미지를 그토록 도달하기 어렵고, 나아가 정의 내리거나 확인하기 어려운 것으로 만드는 것은 그것이 일종의 감정-이미지와 행동-이미지의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충동-이미지는 자연주의의 본질 속에 녹아 있다”는 의미심장한 결론에 도달한다. “신의 섭리는 참으로 자연의 질서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그 함의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충동(이미지)이다.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자연주의에 내재한 근원적 폭력성을 마침내 적출해낸다. 자연주의에 내재한 근원적 세계는 “매우 특수한 폭력의 세계”인데, 그것을 그는 시네마의 충동-이미지로 끌고 들어왔다. 그에 따르면 “충동의 근원적 폭력성은 항상 행위의 상태에 있으나 행동(이미지)에 비해 [그것은] 너무 크다. 파생적 공간 속에서 그에 걸맞을 정도의 크기를 지닌 행동은 없다”고 할 수 있는데, 「노매드랜드」의 펀처럼 스스로 “충동의 폭력성에 사로잡힌 인물은 자신에 대해 전율하며 자기 자신의 충동의 먹이, 희생물이 된다. 그는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그 폭력성에 자신을 맡기게 된다”고 단언한다. 이것이 자연주의의 본질이며 무위가 바로 그 리비도의 핵심을 관통한다.

오세훈과 박형준에 [충동적으로] 몰빵한, 이 땅의 20대 대부분이 보수화돼가고 있는, 그러나 말의 엄밀한 의미에서 부패하고 타락해가는 현실에 비춰보면, 펀의 급진적 체제 밖으로의 탈주는 가히 혁명적이다. 이 땅의 이 시대 의식적 인민들은 이제 20-30대와도 싸워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 땅 나날은 이래저래 심란하다. 그리고 비트코인으로 통칭되는 암호화폐가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시대 무위의 덕성을 상징적으로 함의하는 기표다. 그러나 “암호화폐는 내재적 가치가 없으며, [그것을 산다면] 잃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는 경고한다. 한술 더 떠 제롬 파월 역시 가상화폐는 ‘투기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하는데, 일론 머스크는 “유망하지만 신중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귀띔한다. 한국에서도 이 기류는 크게 변함이 없다.

암호화폐의 이념 바탕에는 강력한 무위의 리비도로 들끓게 하는 충동-이미지가 있다. 그것은 현재의 가치체계를 전복시키거나 근본적으로 해체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망의 세속적 표현으로, 그것의 행동은 날렵하게 기회주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심연에는 현재의 가치와 질서에 대한 전면적 부정과 저항이 잠재돼 있다. 이 땅 2030세대는 거의 여기에 광적으로 열광한다. 그것은 그들에게 거의 마지막 희망을 위한 엑소더스다. 어떤 이론과 기하학적 논리로도 불가능한 이 카오스적 현재태를 읽는 단 하나의 무기가 있다면, ‘무위’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신철하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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