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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 주가 오를 동안, 오드리탕은 민주주의를 고쳤다
페북 주가 오를 동안, 오드리탕은 민주주의를 고쳤다
  • 정민기
  • 승인 2021.05.26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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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디지털 민주주의와 오드리 탕 | 전병근 지음 | 스리체어스 | 204쪽

대만의 코로나 방역을 성공으로 이끈
최연소 디지털 장관 오드리 탕

길을 가던 사람을 붙잡고 “마크 저커버그가 누군지 아십니까”라고 물어보면 열에 일곱은 “하버드를 중퇴하고 페이스북을 만든 사람”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질문을 조금 바꿔서 “오드리 탕이 누군지 아십니까”라고 물어보자. 어떤 답변이 되돌아올까. 

“네 당연히 알죠. 대만 디지털 장관 아닌가요? 아이큐 만점의 천재 소년, 최연소 장관으로 잘 알려져 있죠. 애플과 벤큐 같은 IT 기업의 주요 사업에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 참여했고, 대만에 민주화의 바람을 일으킨 ‘해바라기 학생 운동’에도 동참했잖아요. 그 이후에 정치계로부터 스카웃을 받고 디지털 장관 자리에 오르면서 대만을 디지털 민주주의의 선두 국가로 이끌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지난 겨울에 대만이 코로나 방역에 성공한 것도 오드리 탕의 역할이 컸다고 하던데, 제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거 맞죠? 긴 단발머리에 무태 안경을 쓰고 TED 강연에 나오셨던 그 분 말씀하시는 거죠?”

오드리 탕의 업무 모습. 사진=픽사베이
오드리 탕의 업무 모습. 사진=픽사베이

자본주의 장막에 가려진 오드리 탕

한국에서 오드리 탕에 대해 이토록 상세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극히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필자도 오드리 탕이라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크 저커버그보다 오드리 탕이 훨씬 중요하고 대단한 사람인 것 같은데 왜 우리는 오드리 탕이라는 이름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가?

오드리 탕이 마크 저커버그보다 훨씬 덜 알려져 있다는 현실은 한국 사회가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체계에 강하게 결탁되어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15살에 창업해서 IBM으로부터 투자를 받을 정도로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오드리 탕은 소위 ‘디지털 제국’의 황제가 되겠다는 꿈 대신 자유, 민주주의, 평등, 공동체 등의 대의를 추구해왔다. IT기업을 창업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키면 큰 주목을 끌었을테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부와 함께 일을 하다보니 대만 밖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유년시절 경험이 이끈 '다원주의'

오드리 탕의 아버지는 대만의 유력 일간지 <차이나 타임스> 편집 부국장을 지낸 기자였다. 그래서 오드리 탕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시사 현안을 통한 토론식 교육을 받았고, 언론의 자유가 얼마나 치열한 투쟁을 통해 쟁취해 낸 것인지 배울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조숙했던 오드리 탕은 정규 교육에 적응하지 못했다. 인터넷과 책을 통해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에 따분함을 느꼈던 것이다. 다행히도 오드리 탕의 부모는 정규 교육을 과감히 포기하고 오드리 탕이 대안적인 실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도와준다. 

오드리 탕은 생물학적으로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24세가 되던 해에 성전환을 택한다. 오드리 탕은 특별한 젠더의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 ‘포스트-젠더’를 지향한다. 사람을 성별로 범주화하는 방식을 벗어나 젠더를 초월한 것이다. 

대만의 최연소 디지털 장관 오드리 탕. 사진=픽사베이
대만의 최연소 디지털 장관 오드리 탕. 사진=픽사베이

민주주의의 최종 목표는 개인의 독특성을 존중

이처럼 오드리 탕은 유년시절부터 모든 사람이 각각 고유한 존재라는 사실을 몸소 느꼈다. 각각의 독특성을 존중하고 발현시킬수록 사회는 더욱 풍성해지고 무한한 다원성의 잠재력이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오드리 탕이 민주주의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다원성의 실현”이다. 그리고 그 해법은 디지털 기술에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 발달로 이제 모든 시민이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오드리 탕은 이 기술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처럼 광고를 통해 소비를 촉진시키는 플랫폼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버 규제 여부와 같은 복잡한 사회 이슈를 해결하는 공공 정책 플랫폼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전세계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약자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평등을 실현할 기술로 기대했지만, 인터넷은 경쟁을 부추기고 같은 성향의 사람들 끼리 뭉치는 부족화 현상을 심화하고 있다. 이는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에 의해 디지털 기술이 설계되고 운영되어 왔기 때문이다. 오드리 탕은 이와 정반대의 길을 개척하는 중이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반영하는 '진화된 민주주의'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주말 간 오드리 탕의 행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이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가벼운 분량과 깔끔한 편집이 가독성을 높였다. 

정민기 기자 bonsense@kyo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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