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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장애 대학생 “코로나 끝나도 녹화 강의 계속해주세요”
미국 장애 대학생 “코로나 끝나도 녹화 강의 계속해주세요”
  • 정민기
  • 승인 2021.05.25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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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불편한 장애 가진 학생들
온라인 녹화 강의가 훨씬 수월해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미국 스와트모어대에 다니는 시각장애인 빌 댕글러(3학년) 씨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대면 수업을 들을 때는 수업이 끝날 때마다 강의실을 옮겨 다니느라 고생이었다. 미국 대학은 캠퍼스가 넓고 복잡해서 자칫하면 길을 잃고 엉뚱한 건물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학교 지도를 항상 머릿속에 외워두고 다녀야 했다. 

그런데 온라인 비대면 수업에서는 클릭 몇 번이면 충분했다. 게다가 수업에 학생 몇 명이 들어와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화면에 나오는 글자를 읽어주는 ‘스크린 리딩’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수업 도중 질문을 하거나 답변을 하는 학생들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대면 수업에서는 불가능했던 일들이다. 

심한 난독증을 앓고 있는 첼리 바우어(워싱턴대 4학년) 씨도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시작된 이후로 학습권이 개선됐다. 바우어 씨는 더이상 강의실에 30분 씩 일찍 가서 맨 앞자리에 앉을 필요가 없다. 강의 내용을 따라잡기 위해 녹음을 해야 했는데,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항상 고음질로 녹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튜브 자막 프로그램을 적용하면 교수님의 말을 자막으로 읽을 수 있었다. 덕분에 강의를 녹화해서 자막과 함께 여러 번 돌려보며 공부할 수 있었다.

장애 대학생들에게 비대면 강의는 물리적 제한을 줄이고 학습에 도움이 되는 기능을 제공하는 유용한 도구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 장애 대학생들은 이 점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학교 측에 장애 대학생을 위한 원격 강의와 녹화 강의 운영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대학은 기술적 문제와 교수들의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는 이유를 들며 거절해왔다. 

코로나 이전에도 계속 요구해왔지만...

그러나 코로나19로 일반 대학생의 교육이 불가능해지자 하루아침에 전면 비대면 강의로 바뀌었다. 예일대 장애인인권엽합회 소속 조시 스튜어 인갈 씨(2학년)는 “장애 대학생이 요구했을 때 거절 당했던 조치들이 코로나19로 대다수의 학생이 필요한 상황에 처하자 즉각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이번 사태로 대학의 위선적인 면모가 분명히 드러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종식될 기미를 보이자 대학은 교육을 ‘정상’으로 되돌리겠다며 대면 교육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대학이 장애 대학생의 요구사항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장애에는 다양한 종류와 정도가 있기 때문에 온라인 수업이 보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가진 학생의 경우 온라인 수업은 집중력을 떨어트린다. 또한,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예를 들어 자막 시스템의 경우 전문 학술용어를 잘 파악하지 못해 엉뚱한 단어로 송출하는 경우가 많고 학교 시스템에 따라 아예 작동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온라인 수업으로 큰 도움을 받는 장애 대학생이 존재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제스민 해리스 캘리포니아대 교수(반차별법 전공)는 “‘정상(normal)’이라는 말은 어떤 사람들에게 평범·보통(normal)인 반면, 몇몇 사람들에게는 최악(terrible)의 상황을 뜻합니다”라고 했다. 해리스 교수는 “대학이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큰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장애 대학생은 차별받게 될 것”이라며 대학 교육의 정상화에 반문을 던졌다. 

정민기 기자 bonsens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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