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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아닌 ‘놀이’로
공부가 아닌 ‘놀이’로
  • 성치경 동서대
  • 승인 2004.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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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성치경 교수(동서대·e-비즈니스학부)

학부 전공은 국어교육이었지만 중등학교에서는 국어 교사가 한문 과목을 가르치기도 했기 때문에 현직 교사로 있을 때부터 나는 국어와 한문을 가르쳤다. 대학에 자리를 잡은 후에도 교양 과목 중에서 국어 관련 과목과 한자를 가르치고 있다.

 

사실 대학생들이 재미있어 하는 과목은 아닌데, 그것 때문에 늘 고민이다. 되돌아보면 대학교 1학년 때 수강한 교양 중에서 한문과 국어 과목을 나 자신도 재밌게 공부하지 못했다. ‘재미’ 곧 매력성이 전부는 아니지만 학생이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능력이 중요시되면서 매력성은 다른 무엇보다 수업 설계에서 비중 있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시간강사로 한자 수업을 맡게 되었을 때, 소위 말하는 ‘수업 계획서’를 쓰면서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나도 재미없게 배운 내용인데,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니 멀쩡한 머리도 아프고, 교재를 봐도 해답이 안보였다. 그렇다고 내가 배웠던 수업처럼 진행하자니 그럴만한 인품이나 능력도 없다는 것이 또 다른 문제점으로 다가왔다. 수십 년 교직에 있던 분들이 진행하는 수업은 별다른 기교 없이도 특별한 양념이 배어 나오지만, 내게는 그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초보 선생도 가르칠 수 있고 재미있고 그러면서 배운 내용을 생활에서 활용하려면 어떻게 수업해야 할까, 중국 글자가 아니라 우리 국어 생활에서 필요한 한자 수업은 어떤 내용일까-이것이 처음 수업 계획을 세울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다.

내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입한 것이 컴퓨터와 인터넷이다. 멀티미디어 수업이 가능하도록 강의 환경이 개선되면서 컴퓨터와 인터넷은 참 매력적인 수업 매체로 등장했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배우거나 도움도 받으면서 수업에 사용하도록 그림을 스캔하고 수정했다. 수업 시간에 함께 볼 영화는 미리 보고나서 테이프로 복사하거나 동영상 파일로 변환도 했다. 수업 중 들을 노래는 인터넷으로 내가 먼저 들어보고, 수업 시간에 듣기 위해 준비했다. 재밌는 한자 수업을 위해 현재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이 사용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인터넷에서 여러 가지 자료를 검색해서 공부했다.

내 수업이 수월하지도 않지만 좀 다르다고 학생들이 말한다. 수업 시간에 영화를 보면서 한자숙어를 몇 개씩 찾아야 한다. 찾은 한자숙어를 신문 기사, 광고전단, 4컷 만화, 만평으로 표현할 때도 있다. 아주 드물게 팝송도 듣지만 보통은 우리 가요를 즐겁게 듣고 어울리는 한자숙어를 생각해야 한다. 또 선택한 교재에 이미 있는 것이지만 영역별 필수 한자어들로 만든 퍼즐을 완성해야 한다. 학생들이 책상 앞에 앉아서 점잖게 듣는 수업은 아니다. 개별로 다양할 수 있지만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도 보인다. 하지만 주제에 대해 학생들이 함께 고민하고 답을 스스로 찾고 발표 시간을 통해 그것들을 공유하면서 얻는 것들은 강단에서 선생이 혼자 전달하려는 것보다 훨씬 많고 오래 기억될 것이다.

학기가 끝나고 시간이 좀 흐른 뒤에 가끔 학생들의 메일이 온다. 지난 학기 한자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다. 이성 친구랑 데이트를 하면서 영화를 보았단다. 그런데 자신이 영화 장면에 어울리는 한자숙어가 뭘까 고민하고 그게 생각나면 소리 내서 친구에게 말하고 있었다고 했다. 집에서 가요 프로그램을 보면서 노래 가사가 자막으로 보이는데, 어떤 한자숙어가 괜찮을까 생각하는 학생도 있었다. 물론 가장 많은 내용은 신문을 보면서 이젠 제법 많은 한자를 읽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유치하지만 이런 메일을 받으면 그냥 기쁘다. 머리 아파하며 고민한 노력이 학생들에게 조금 통한 것 같아 그렇게 즐겁다.

어제도 특별한 주제로 조별 토론을 했는데, 다음 주에 발표 수업을 할 것이다. 이제부터 보고서를 검토하면서 혹 내 수업에 응용할만한 내용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한다. 나의 강의 시간은 나도 늘 새롭게 익히며 고민하고 숙제도 해야 하는 또 다른 배움의 장이 되고 있다. 내가 배우고 변화되지 않으면 내 강의를 ‘그냥 귀에 스치는 소리’ 정도로 흘려듣는 학생을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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