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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으로의 초대] 5월의 화가 홍성담
[지면으로의 초대] 5월의 화가 홍성담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1.05.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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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17 13:12:29
꽃잎 피고 또 지고, 꽃자리 붉게 번져오는가 싶으면 어김없이 5월이다.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봄 한가운데 언제나처럼, 그곳 광주가 있다. 2001년 5월, 광주민중항쟁 21주년을 맞는 빛고을,5·18 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는 분주한 손길들 가운데서 낯익은 손 하나를 찾아낼 수 있다. 그 손은 안기부의 고문실에서도 꺾이지 않은 손, 붓과 조각칼을 쥐고 인간의 현장을 지켜온 손이다. 광주와 함께 한 화가 홍성담. 광주에는 항상 그가 있고, 그의 계절은 늘 5월이다.
“광주는 모든 이들에게 그랬듯 나에게도 역사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어떠한 곳인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또한 사람이 살아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인간의 죽음과 삶이 어떻게 존재하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역사에 개입하는지를, 한 인간의 변화는 바로 천지의 변화이며 온 우주의 변화라는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순박하기 그지없던 광주는 80년 5월 이후 한국 현대사의 모든 무게를 감당하면서 격랑의 시대를 거슬러가야 했다. 그도 역시 시대의 가파른 물살을 치열하게 헤엄치며 살아났다.
사람들이 외면하려 애쓰던 살육을 증언하려 광주항쟁 직후 연‘5월 진혼제를 위한 야외전’을 시작으로 87년 ‘反고문전’, ‘통일전’, 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전’, 95년 ‘전쟁과 미술전’ 등 그의 그림은 밝고 안락한 미술관을 떠나 인간의 삶과 역사의 현장에서 숨가쁘게 펄럭였다. 지난 해 제 3회 광주비엔날레 한국대표작가가 되기까지 빼곡한 그의 이력은 지난했던 그의 삶을 고스란히 말해준다.
그에게 그림은 고통 그 자체이다. 작업장 문을 통과하는 일이 ‘마치 지옥문을 들어서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 고통스러운 지옥문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갈 수밖에 없는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지옥을 통과해야만 다음 세상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옥의 불구덩이를 건너야 비로소 그가꿈꾸는‘인간’세상에 발을 디딜 수 있다. 한 무리의 인간들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미래가 어렴풋이보인다. 그가 고통의 지옥을 스스로 건너는 까닭은 바로 인간의 미래를 한 자락이라도 엿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치라도 저절로 다가오는 미래가 있을까. 그가 미래세상을 꿈꾸고 그린다는 것은 더욱 철저하게 현실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화가는 인식을 화폭에서 실현할 뿐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고문을 견디고 옥살이를 견딜 수 있었다. 예술가의 자유 영혼은 핍박받을수록 강해지는 것일까. 89년 ‘민족해방운동사’걸개그림 사건으로 구속되어 옥에 갇혀있던 3년 세월이 그의 그림을 더욱 깊고 넓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지독한역설이다. 20일간 계속되던 물고문의 악몽을 떨치고, 다시금 지옥 같은작업장으로 들어가 처음으로 형상화한 ‘욕조-어머니 고향의 푸른 바다가 보여요’(1996) 이후 ‘물속에서 스무 날’(1999) 연작들에는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물 세상’이 펼쳐진다. 어머니의 자궁이기도 하고, 인류가 태어난 바다이기도 하고, 물고문이 벌어지는 욕조이기도 한 물.
그는 소설가 서해성의 표현대로 ‘여전히 고문 기술자가 그를 누르고 있지만, 물을 매개로 경계를 무너뜨리고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 물고기와 어울려 춤을 추고 물고기 배에 고단한 몸을 누이고 급기야 한 마리 물고기가 되어 둥실둥실 ‘날으는’그림에 이르면 그가 증오와 분노를 비로소 벗고 자유로운 알몸으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세상과 마주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화해는 여전히 냉철한 현실 인식과 함께 한다.
그를 다시 태어나게 한 광주이지만, 또한 그가 벗어나야 할 한계이기도 하다. 화가 홍성담은 광주가 자신에게 지우는 한계를 누구보다도잘 알고 있다. 동아시아 화가들과 연대하는 자리를 꾸준히 마련해온 것도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이다. “제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사람이 모여 공동의 관심사를 해결해 가는 순간입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친화가 생기고, 함께 미래를 낙관하는 그 순간입니다.”그 행복한 순간을 바라며 그는 오늘도 고통의 지옥문을 지나 화폭 앞에 선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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