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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도구적 공동체를 넘어서
학이사: 도구적 공동체를 넘어서
  • 권정호 인천대
  • 승인 2004.11.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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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호 / 인천대 정치사상

연구를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상적 업무의 여백에서 틈이 나는 대로 사회활동을 하곤 한다. 이 모든 활동을 관통하는 나의 변함없는 관심거리 중의 하나는 ‘공동체’다. 내가 가르치는 과목이 국민공동체 이론이고 학생들에게는 공동체를 사랑하는 지도자가 되라고 훈계하고 그리고 나 역시 공동체를 위해 작은 일이라도 기여해 볼 요량으로 분주히 살아간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공동체는 이제 아련한 추억의 뒤편으로 사라져가는 것만 같다. 우리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정착지와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한 농업시대의 지역공동체나 혈연공동체의 해체를 산업화라고 규정하면서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점점 거두고 있다. 공동체는 부정돼야 할 대상으로 치부돼 가고, ‘민족공동체’, ‘직업공동체’ 등의 용어들이 단순히 전략적인 성격으로 도배되어 이용되는 측면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근래 특별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공동체가 새로운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늘어나고 있고, 정보화시대를 맞아 정보매체를 통한 가상공동체의 창설이나 활동이 더욱 늘어나고 있는 뜻밖의 현상을 보게 된다. 

최근 윤리적 주제에 대한 관심은 개인적 차원의 도덕성뿐만이 아니라, 유네스코의 몇몇 업무처럼 21세기 신세계질서의 토대로서 ‘보편윤리’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고 있다. 공동의 가치규범에 대한 논의를 개인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차원에서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상적으로 풍부한 이러한 활동은 전체 사회의 측면에서는 다분히 공허한 몸짓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해체된 공동체를 다시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나, 새로운 공동체적 삶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매우 빈약하다. 그냥 유행처럼 다가오면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만다. 물론 뒤르켐이 사회를 도덕적 합의가 이뤄진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논했던 것이나, 막스 베버가 물질적 조건보다 정신적 가치를 사회의 기둥으로 삼았던 고전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부지불식간에 새로운 공동체가 우리 삶의 깊숙한 곳까지 자리 잡아가는 동안 우리는 공동체에 대한 향수와 공동체에 대한 거부감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사회문화적 맥락과 유리될 수 없으며 전통적으로 공유된 사회공동체적 토대에 기초하고 있다는 신공동체주의적(neo-communitarian) 가정과 산업사회의 개인적 이성과 자율성의 신성함 간의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걱정을 자아낸다.
이러한 시점에서 상실돼 가는 공동체 의식과 새로이 등장한 공동체의 주인이 되는 교육적 활동이 필요하다. 산업사회가 인간의 이성을 도구적 합리성에 주안점을 두고 전개한 결과 인간의 이성과 가치를 상실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비판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공동체도 도구적 관점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특별한 가치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 속에는 공동체를 도구나 수단으로 생각하는 측면이 너무 많다. 특별한 아이들을 위한 교육공동체나 특정 계층을 위한 생활공동체, 노인공동체 등 다양한 공동체가 탄생하고 있지만, 그 속에 인간적 연대감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존적 협력이 어느 정도나 지속될 지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지금 도구적 기술을 중심으로 한 교육이 한껏 기승을 부리지만, 이와 함께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존재하는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와 함께하는 보편적 규범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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