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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베이징
아! 베이징
  • 김재호
  • 승인 2021.05.20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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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희 지음 | 학고방 | 256쪽
1920년대부터 40년대까지의 베이징의 풍물들이 당시 대표적인 문필가들의 손에 의해 생생하게 눈 앞에 펼쳐진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1910년대 말부터 1940년대 말까지의 베이징을 소묘한 것이다. 당시 문인들의 눈에 비춰진 베이징의 모습은 현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애초에는 베이징 성을 그대로 보존하고 그 외곽 지역에 새로운 도심을 만들려는 기획안이 제출되었으나, 공산당 지도부의 강력한 의지에 의해 베이징 성은 처참할 정도로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가장 먼저 성벽이 무너지고, 교통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성문이 철거되었다. 톈안먼天安門 앞은 모든 건물들이 사라지고 그저 텅 빈 광장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 광장에 서서 그 옛날 화려했던 제국의 위용을 상상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시간의 흐름 속에 베이징은 옛 모습을 잃고 예전과는 전혀 다른 도시가 되어버렸다. 웅장했던 성벽은 허물어져 자취를 찾을 길 없고, 도성의 성문들도 단 두 개만 남겨둔 채 모두 철거되었다. 중국인들이 세계 최대의 광장이라고 자랑하는 톈안먼天安門 광장은 예전에는 육조六曹의 관아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곳이었고, 마오쩌둥毛澤東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마오쩌둥기념관 자리에는 시대에 따라 다밍먼大明門, 다칭먼大淸門, 중화먼中華門으로 이름이 바뀌었던 ‘문’이 서 있었다. 이러한 베이징의 변화는 세월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러한 변화를 겪지 않고 원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시절에 베이징을 묘사한 글들은 묘한 향수와 함께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그 어떤 시점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이 공간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고 뒷짐 진 노인의 느릿한 걸음처럼 허공을 떠도는 듯하다. 분명 처음 온 곳인데 낯설지 않은 느낌. 그렇게 익숙한 기시감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 의해 쌓여진 기억으로 말미암은 것일까? 여기에 실린 글들은 약 100여 전 베이징 사람들이 남긴 기억의 편린이라 할 수 있다. 그 기억의 페이지를 들추어 베이징의 또 다른 면모를 만나는 길을 떠나보도록 하자.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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