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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깊은 생각] 67
[짧은 글 깊은 생각] 67
  • 교수신문
  • 승인 2001.05.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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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17 13:12:54
이승하/ 중앙대·문예창작학과

최근 어느 문예지의 요청으로 좌담회 사회를 본 적이 있다. 문학평론가와 시인들이 모여 문학 교육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나는 평소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요즘 대학생들이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도무지 지키지 않을 뿐 아니라 기본적인 문장력도 갖추고 있지 않아 큰일이라고 개탄했더니, 문학평론가가 그것은 문학 창작 능력과는 별개가 아니냐고 반문을 하여 내심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국어 실력과 문학 창작 능력이 완전히 별개의 것일까.
대학에 오기 전 출판사 편집부와 기업체 사사편찬실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한 적이 있는 나로서는 원고에 오자가 있거나 띄어쓰기·맞춤법이 안 지켜져 있으면 반드시 빨간 펜으로 고쳐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학생들이 제출하는 모든 보고서를 반드시 교정·교열을 보아 돌려준다. 여간 고역이 아니지만 문예창작학과 졸업생이 사회에 나가 이 능력마저도 안 갖추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지겨운 편집부원 노릇을 계속하고 있다.
해마다 학생들의 국어 실력이 떨어지고 있다. 컴퓨터와 독서 부족 때문이 아닌가 한다. 컴퓨터는 현행 표기법에 어긋나게 문자를 작성하면 곧바로 빨간 줄을 그어 고치라고 명한다. 맞춤법과 띄어쓰기, 외래어 표기법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숙제도 컴퓨터 자료 검색을 통해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루 중 글씨를 쓰고 있는 시간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이 훨씬 많을 것이다. 게다가 세계명작이니 고전 같은 두꺼운 책을 읽고 있다간 시험성적이 떨어질 것은 당연한 일이고 보니 폭 넓은, 혹은 심도 있는 독서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한 <세계명작 읽기>류의 책이 수십 종 나와 있기도 해 이래저래 독서는 하지 않고 있다.
대학생에게 국어와 한자 교육을 다시 한다는 것은 때늦은 감이 있다. 어린아이 때부터 책을 많이 읽혀 책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아이의 손을 잡고 공공도서관이며 대형시점에 자주 가볼 일이며, 인터넷을 통해 책을 주문해 아이의 상상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게임기 대신 책을 선물해야 한다. 아이 생일날 친구들과 피자 가게에서 파티를 벌이라고 용돈을 주는 부모보다는 책을 선물하는 부모, 아이를 영어학원에 데려다주는 어머니보다는 동화책을 읽어주는 어머니가 훨씬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 어린이날 놀이공원에 갔다온 뒤에 위인전 한 권이라도 사주면 아이는 ‘노는 인생’보다는 ‘탐구하는 인생’이 값지다고 여길 것이다. 출판사마다 연간 반품되어 온 책을 수천, 수만 권씩 소각하고 있다고 한다. 인류의 유산인 책, 그 책은 다름 아닌 나무를 베어 만든 것이 아닌가.
저학년 중 상당수가 강의실 뒤에 앉아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다. 고학년은 토익 점수 올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학생들의 국어실력 저하가 전적으로 영어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영어 중시와 모국어 경시 풍조가 한몫 하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영어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이제는 좀 벗어났으면 좋겠다. 우리말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기본적인 맞춤법도 틀리는 형편에 미국인과 몇 마디 대화를 할 줄 안다는 것이 무어 그리 대단한 일인가. 영어가 꼭 필요한 직장이 아니라면 영어 실력으로 사람을 뽑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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