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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몸에 밴 권위적 태도…"책에서 벗어나고 싶다"
어느새 몸에 밴 권위적 태도…"책에서 벗어나고 싶다"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11.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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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기획_교수들이 말하는 ‘버리고 싶은 습관’

누구나 하나쯤 버리고 싶은 습관이 있다. 그것은 사회적 활동 속에서 생겨나고 고착되는 측면이 많다. 교수들은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공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생긴 버릇들을 갖고 있다. 어느새 몸에 배어 버린 습관들인데, 문득 그 안에 갇힌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많은 교수들이 공통으로 꼽은 습관은 ‘권위주의적인’ 행동이었다. 임규홍 경상대 교수(국문학)는 “가족들이나 남들을 학생 대하듯 대한다는 얘길 듣는다”라고 털어놓는다. 조승래 청주대 교수(영국사) 또한 “친구들과 술 마시며 토론할 때, 잘난 척 말라는 핀잔을 듣곤 한다”라며, 사실 정말로 ‘상대방은 나만큼 모른다’라는 고답적인 태도가 몸에 뱄다라고 고백한다. 친구들한테 지적당하니, 고치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다.


매사에 논리적이고 분석적이려는 태도 또한 문제가 된다. 김석수 경북대 교수(철학)에 따르면, “살다보면 논리로 되지 않는 일이 태반인데, 가족들에게나 남들에게 항상 분석적으로 따지려드는 습관이 나오곤 한다”라는 것. 이런 태도들은 때론 상대방에게 냉정한 사람으로 비춰져 괜히 앞의 사람을 어렵게 만들어 본인도 난처하다는 것.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려다보니 ‘단정적인 말투’가 일상생활에서도 툭툭 튀어나오는 교수들이 많았는데, “상대방에게 말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다”라며, 여러 교수들이 이를 고치고 싶은 습관으로 꼽았다. 

강의, 원고집필에서의 고질병


허동현 경희대 교수(한국사)는 ‘책’이란 공간에서 좀 벗어났으면 한다. 허 교수는 “연구만 하다보니 현실에서도 지나치게 이상적인 이론과 사상들을 추구하게 된다”라고 자기 思考의 습관을 털어놓는다. 상아탑 안에 갇힌 학자에서 탈피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이홍두 홍익대 교수(한국사)도 “나의 도덕, 윤리, 가치관 등이 일반 사회와 너무 다르고, 수업시간에 특히 괴리감이 느껴진다”라며, 가치관은 ‘확고해야 한다’라는 사고습관의 문제를 거론했다.


박삼열 관동대 교수(철학)가 버리고 싶은 건 철저하지 못한 시간관리. 두세 달 전에 청탁을 받아도 마감 며칠 남겨두고 글을 몰아서 쓰기에, 스트레스를 무척 받는다. 박 교수는 “상사가 없다보니, 일을 미루는 ‘나쁜’ 습관이 생겼다”라며, 예전부터 고치려 했는데 잘 안된다고 말한다. 이런 스트레스는 또 다른 피해자(?)를 낳기도 한다.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학)는 “일이 몰리다보면 스트레스를 받아 아내와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라며, 아무 관련 없는 가족들에게 화풀이하는 습관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교양수업을 맡은 교수에게도 독특한 습관 하나가 생겼다. 한 클래스에 적게는 2~3백명에서 많게는 5백명까지 수강생을 받았던 김기덕 건국대 교수(고려사)는 지각생을 무조건 결석처리 해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지각생이 50명 정도나 돼, ‘기껏 목청 높여 강의하고 또 이렇게 시간낭비해야 하나’ 싶어서 지각생 일체를 결석처리 한 것. 하지만 이건 매우 무정한 일이기도 하다. 좀 관대해지려 하지만 아직까지 지각생에게 썩 부드럽지 못한 습관이 남아있다. 동시에 이건 자기자신에게도 콤플렉스가 됐는데, ‘나도 절대로 시간을 어겨선 안된다’라는 강박관념이 생겼다고 한다. 이젠 이 강박에서 좀 벗어났으면 하고 바란다.

전공 때문에 생긴 강박증


기계공학을 전공한 양보석 부경대 교수는 “연구할 때의 주도면밀함이 일상생활에서도 드러나 좀 괴롭다”라고 말한다. 기계설계는 1㎜의 오류만 있어도 사고가 나니까 꼼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로 인해 학생들에게도 꼼꼼하고 정확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자기 스스로에게도 정확, 냉철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생긴 것. 하지만 이것이 일상생활까지 이어지니 무척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일상에선 좀 덜 치밀하고, 좀 더 여유로웠으면 한다.


사회복지법제가 전공인 윤찬영 전주대 교수도 전공과 관련된 좀 특이한 버릇이 있다. 남을 돕는 것이 전공이다 보니, 이젠 주위의 도움요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돼버렸다. 그런데 그는 이런 탁월한 성품을 버리고 싶어 한다. 시민단체나 학술단체 활동이나 원고청탁 등을 거절하지 못하고 다 받아들이다보니, 정작 자기 스스로의 연구는 전혀 손도 못대고 있는 것. 윤 교수는 “지금 하는 연구는 형식적인, 비본질적인 것에 머문 것들이 많다”라며, 남의 요구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 말한다.


인문학 전공 교수들 중 몇몇은 “인문학적 상상력을 잃어버린 형식적인 글쓰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라고 털어놓는다. 객관적인 자료검증이 중요하기에 그런 형식에 맞는 글쓰기를 하지만, 이 때문에 시적 상상력은 잃어버렸다는 것. 역사학 전공자들이 좀더 심했는데, “실증주의적 자료를 가장 중시하다보니, 살을 붙이는 일을 못 하겠다”라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홀로주의’가 만든 ‘의사소통’의 단절


시대가 만들어낸 특이한 습관도 있다. 이현석 경성대 교수(영문학)가 버리고 싶은 건 무조건 책을 사들이는 버릇. 1970~80년대 대학을 다녔던 그는 당시에 웬만한 책은 곧 판금서가 됐기에, 무조건 책을 사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시대가 변하고 판금서도 없어졌는데, 이 버릇만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 요즘도 평생 읽지도 않을 책들조차 우선 사고 본다. ‘돈낭비가 크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과연 ‘향후 이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에 무조건 사들인다. 연구실엔 보지 않는 책들이 지금도 쌓이고 있는데, 이것이 정말 버리고 싶은 ‘질병’이라는 게 이 교수의 고백이다. 그는 자신의 주변에서도 이런 사람이 꽤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 교수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어느덧 혼자 있는 게 가장 편해졌다. 그런데 이는 곧 연구실에서 벗어나는 건 잘 하지 못한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허동현 교수는 “학교하고 집만 오가고, 만나는 사람은 제한돼있다”라며, 이것이 인간관계를 맺는 일종의 습관이라 말한다. 문제는 연구실 밖을 벗어나면 ‘불안증’을 느낀다는 데 있다.


김석수 교수 역시 그런 케이스인데, 그는 “늘 불안감이 있다. 집에 가도 주말이 되도 책을 보지 않으면 불안하다”라고 털어놓는다. 집에서도 편히 쉬지 못하며, 예컨대 동창회모임 등이 있어도 연구, 강의준비 때문에 외부출입을 삼가는 버릇이 생겼다는 것.


이건 가족관계로 이어지면서 또 다른 문제를 낳기도 한다. 임규홍 교수는 “집에 가도 심심하고 좀 어색하다”라고 말한다. 즉 혼자 있는 것은 불안증과 의사소통 단절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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